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어쩔수가없다〉 속 이병헌의 연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9월 24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과 이병헌이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무려 25년 만에 재회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만수 역을 맡아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는’ 가장의 무게를 표현했다. 고민에 찌든 얼굴로 언어유희, 슬랩스틱, 블랙코미디 등 ‘코미디 올인원’을 선보이는 이병헌은 영화의 정서를 관통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올 한 해 〈승부〉 〈케이팝 데몬 헌터스〉 〈킹 오브 킹스〉 〈오징어 게임〉을 선보이고 〈어쩔수가없다〉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 배우다운 행보에 선 이병헌. 영화 개봉 당일인 9월 24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그를 만나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찬욱 감독님과의 작업은 오랜만인데요, 이전과 달라지신 부분이 혹시 있으셨나요?
저랑 감독님은 작품 사이에도 인간관계에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친숙하고 익숙한 그런 관계였어요. 작업 자체는 오랜만인데 여전히 크게 다른 점은 없어요. 감독님이 대화하는 거에 늘 열려 계시고, 본인도 이런 얘기를 하세요. 스태프나 배우들과 대화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캐치할 때가 있다고. 그래서 그러신지 대화하는 걸 좋아하시고 그러면서 아이디어를 찾으시고 본인 생각한 것보다 좋은 아이디어라면 수용할 마음의 상태세요. 늘 한결같으십니다. 현장에서 온화하지만 고집스럽게 요구할 건 하시고 될 때까지 하시는 고집은 여전하세요.
시나리오 받았을 때 ‘웃겨도 되냐’고 그랬다고 하셨다던데 그런 질문을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웃겨도 되냐고 물은 게 제가 본 게 맞나 싶었어요. 저는 읽으면서 많이 웃었는데, 의도하고 쓰신 건지 나 혼자 잘못 읽어서 웃긴 건지 그걸 알고 싶었어요. 코미디나 블랙코미디, 유머가 있는 영화에서 (웃음을) 의도하면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많잖아요. 웃기려고 애쓰거나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연기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작정하고 달려든 적은 없었어요. 상황이 재밌다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박찬욱 감독님이 만족하신 장면이 있으신지.
아이디어는 여러 가지 있었어요. 많이 적용해서 저도 ‘감독님이 이렇게 내 아이디어를 다 받아주시던 분이 아닌데’(웃음) 하면서도 겁이 나기도 했어요. 내가 자꾸 장난처럼 이런 얘기를 하다가 모든 책임을 짊어질까 봐.(웃음) 개중 재밌었던 건 시조(차승원)를 묻으려고 삽질하다가 소파에서 드러누웠을 때 미리(손예진)가 와서 “경찰 왔어” 할 때 경찰 앞에 제가 두 손을 모아 내밀면서 서에 가서 말씀드리겠다, 이렇게 착각하는 장면은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감독님이 “그거 재밌다” (하셨어요). 많은 관객들이 웃어줘서 좋았고. 아라(염혜란)하고 범모(이성민)하고 음악실에서 싸우다가 장롱 밑에 총이 들어가는 부분. “총을 놓치면 어떨까요?”하고 아이디어를 내서 바뀌었고요.
본인의 삶과는 너무 다른 상황인데요, 그럼에도 만수의 불안감이 정말 잘 드러났어요.
배우가 직접 경험한 것들, 혹은 그런 감정의 경험을 해봐서 그것이 도움이 돼서 연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어요. 그렇게 따지면 귀마(이병헌이 연기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캐릭터)도 경험해봤게요?(일동 웃음) 하루에도 수백 가지 감정이 왔다갔다하는데, 또는 일이 있어서 감정적으로 크게 업다운이 되기도 하고. 이런 비슷한 감정들을 극대화하거나 축소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돼요. 예를 들어 총구를 맞닥뜨렸다면 그런 경험이 없지만 아주 비슷한 종류의 공포감을 느낀 적이 있을 거예요. 이런 비슷한 경험이 극대화하려고 애쓰는 것이 저에게는 방법인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서 달리거나 구르거나 그런 장면이 많았는데요, 부상은 없으셨는지요.
다행히 다친 적은 없어요. 촬영장 도착해서 동선 체크를 하고 리허설을 하면서 넘어지거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면 그때 긴장이 되긴 해요. 괜찮아야 할 텐데…. 제가 자칫하면 다칠 것 같거나 넘어질 것 같으면 가슴이나 엉덩이, 그런 부분에 패드를 좀 더 붙여달라고 해요. 안 그러면 배우가 그 액션을 하기 전에 주저하는 게 보일 수가 있어요. 그런 거 없이 순간적으로 닥친 사고처럼 보이려면 배우가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하고, 그러려면 제가 불안함이 없어야 해요. 그래서 그걸 없애기 위해 장치를 더 세심하게 하죠.

콧수염 등 그런 콘셉트가 인상적인데요.
어떤 모양새인지 결정 안 됐을 때 카메라테스트하면서 두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스티브 맥퀸, 하나는 매즈 미켈슨. 둘은 완전히 다른 헤어스타일이었어요. 매즈 미켈슨은 앞머리가 내려온 생머리고, 맥퀸이야 짧으면서 곱슬이라 머리에 바짝 붙는. 맥퀸 버전으로 결정이 났어요. 거기서 콧수염을 붙이고 오프닝 바비큐 파티 때의 하와이안 셔츠를 입었는데 그 사진을 보니까 남미 카르텔 같아 보였어요.(일동 웃음) 남미 마약왕 같은. 저는 혼란스러웠어요. 해보지도 않은 스타일인데 너무 강력해서 이야기에 집중이 안 될 것 같을까 봐요. 염려도 됐는데 그렇게 결정하고 (촬영하니) 베니스에서 이런 리뷰가 있었어요. 〈모던 타임즈〉 찰리 채플린이 연상이 되는 장면이 많았다, 그 이야기와 이 이야기의 한 부분과 맞닿아있는 것을 느꼈다. 〈모던 타임즈〉의 획일화된 공장에서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는 느낌과 〈어쩔수가없다〉 마지막 장면에 AI화된 시스템에 적응 못하고 갈 길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의 만수가 겹쳐져 보이더라. 그런 얘기를 듣고 감독님이 이렇게 분장시킨 것도 그런 거였나 했는데 여쭤보니 그건 아니라셨어요.(웃음)

오프닝 장면의 대사들이 문어체에 가까운데도 이병헌 배우의 입을 거치니 편안하게 들렸어요. 그 부분을 찍을 때는 어떠셨나요?
후반 작업을 거치면서 더 인위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색감과 그런 구도와 환경처럼 보이게 됐어요. 동화적인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처음 보는 관객이면 그런 생각을 하겠구나 싶을 정도로. 대사의 뉘앙스도 만수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이전에, 선출(박희순)이 가진 느끼함처럼, 이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의 자기과시 혹은 느끼함, 자기만족, 마초적인 느낌.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다 이뤘다는 말이 공감 가기도 하고. 한편으론 누군가는 권선징악이 적용되야지 왜 밑도 안 닦은 것 같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굉장한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개개인의 영혼은 다 이미 망가진 것이니까. 첫 대사는 '다 이뤘다'지만 마지막 만수의 말은 실제로 그렇게 말하진 않지만 '다 잃었다'가 아닐까 싶어요. 감독님이 그렇게 얘기하지 않으셨지만 그런 느낌을 충분히 주지 않으셨나 싶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웃긴 장면을 뽑는다면?
촬영장에서 정말 많이 웃은 장면은 만수가 처음 면접 볼 때. 장면은 지문상으로 요구하는 것도 너무 많았고. 햇빛이 빌딩에 비추니까 불편해서 옆으로 피하면서 충치의 고통이 오고, 머리에 손을 쓱 올렸다가 다리도 떨려오는데 멈춰지지 않고. 이런 지문이 한꺼번에 다 있는데 대사는 계속해야 하지, 저로서는 숙제였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막상 하니까 생각보다 쉽게 두 테이크 만에 끝냈어요. 그 (만수의) 모양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데 면접관들에게 유머 있게 잘 말하려는 만수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면서도 웃겼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또 아라에게 쫓겨 내려오다가 차를 타고 막 혼자서 소리 지르고 그러는 장면이 정말 며칠간 웃었어요. 현장 편집하는 스태프에게 다시 보여달라고 하고.(일동 웃음) 저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나면 저 소리가 절로 나올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웃겼던 거 같아요.
박찬욱 감독이라 하고 싶다는 배우들이 많았는데, 그것 말고도 이 영화에 끌린 부분이 있으셨는지.
〈콘크리트 유토피아〉 때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를 선호해요. 사람들이 유머가 있고 실소가 터지든 큰 웃음이 터지든 그 가운데 중요하고 무거운 주제가 이면에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싱글 라이더〉나 〈달콤한 인생〉처럼 한 사람의 심리와 생각을 좇아가는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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