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에서 계속

원작 소설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는 출간된 지 약 30년이 되어가는데요. 원작 소설은 90년대 후반의 정리해고 바람이 불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박찬욱 감독님은 이를 2025년의 상황에 맞게 현대적으로 각색하셨어요. 마지막 장면에 AI라는 소재를 넣으신 것도 그렇고요.
마지막에 등장하는 AI라는 소재는 제작 과정에서 맨 마지막에 도입된 요소고, 계속 수정되고 추가됐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만수가 면접을 볼 때, 면접관들은 “‘시험 가동’을 관리해 주셔야 한다”라고 말하죠. 그러면 시험 가동의 기간은 언제까지냐,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는 않고 정말 몇 달 만에 끝날 수도 있으니까, 또 그런 문제가 있죠. 또, 면접에서는 ‘소등 시스템’이라는 것을 언급하는데, AI에게는 불이 불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만수는 공장에 들어섰을 때, 자신이 하나씩 불을 인위적으로 켜고, 마치 ‘인간이 왔다, 내가 너희를 통제할 거야’라고 하는 듯 환호성을 지르죠. 그러면서 만수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감각만 한 게 없지 뭐’라며 스틱으로 종이를 두드리지만, 머리 위에서는 기계가 이미 두드리고 있으니 무의미한 행동이죠. 그 로봇들은 VFX로 다 그려 넣은 것이고요. 제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아이디어가 만수가 퇴장할 때 멀리서 불이 하나씩 꺼진다는 거였어요. 그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는 한밤중에 전화해서 ‘이거 되냐, 이거 꼭 해야 한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베니스영화제에 심사용으로 보낸 영화에는 그 장면이 없었어요. (불이 꺼지는 장면은) AI의 판단에 의해, ‘사람은 할 일을 다 했으니 가라’라고 하는 거죠. 텅 빈 공간을 채운 암흑이 사람을 밀어내는 겁니다. 인간은 이제 꺼지라는 거죠.
그런데, 원작에서처럼, 〈어쩔수가없다〉에서도 ‘제지 공장’ 설정을 유지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지 업계에서 벗어나 볼 생각도 했어요. 제지 공장들은 기계를 멈추지 않고 돌려서, 촬영 허가를 받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결국 이것만 한 것을 못 찾았어요. 종이는 우리 생활에 밀접하다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와 상관없는 화학, 석유, 군수 산업 등은 우리가 직접 만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종이는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종이를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는 생각을 해보지 않고, 또 종이는 하찮게 여겨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음식을 음미하듯 손으로 촉감을 음미하기도 하고. 또, 종이가 디지털 시대의 사양 산업인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고 하더라고요. 포장, 배달이 많아 박스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잘 나기도 하고. 또, 시조(차승원)가 ‘우리처럼 흰 종이 뜨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것처럼 고급 특수지를 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만의 자부심이 있기도 해요.
기자간담회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만수의 살인은 자기 자신을 파괴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희생자들은 모두 집이라는 공간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요.
만수의 희생자들은 모두 각기 다른 면에서 만수와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는 분신과 같은 존재예요. 그래서 만수의 분신이라는 의미에서, 만수와 선출(박희순)은 모두 집에 집착하죠. 범모는 장인의 집에 살기 때문에 집에 그렇게까지 집착을 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애착을 가진 음악 감상실이 있고요. 그는 종이 전문가답게, 흡음재도 골판지 등으로 붙였다는 것도 봐주시면 고맙겠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만수의 희생자들은 모두 전원주택에 사는데요. 그 때문에, 이 작품에는 유난히도 자연환경이 아름답게 담겼어요. 인물들을 모두 주택에 사는 것으로 설정하신 이유는요.
류성희 감독이 이 작품에 합류하고 제일 먼저 한 말이 “이 작품은 단풍을 담아야만 한다”였어요. 그래서 영화의 시각적인 면의 핵심을, 자연환경, 계절의 변화로 삼았고요. 그래서 영화는 가장 잎이 무성한 여름의 절정에서 시작해,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겨울을 예고하면서 끝이 나게 되는 것이죠. 그런 계절의 변화를 계속해서 느끼게 하고 싶었고, 그래서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집을 찍고 싶었어요. 한국 영화니까,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있어야 할 텐데, 실제로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희생자도 계획했는데, 만수가 3명 죽이는 것과 4명을 죽이는 것은 느낌이 달라서, 정말 관객들이 만수에게 아예 정을 못 줄 것 같아서 한 명을 줄였어요. 그래서 아파트 거주자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어쩔수가없다〉의 비주얼 테마는 자연환경, 그리고 분재인데요. 특히 분재라는 소재를 사용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제가 ‘식물인간’ ‘온실’ ‘정원’ 같은 것을 각본에 썼는데, 류성희 미술감독이 ‘분재’를 테마로 가져오자는 제안을 했어요. 제가 ‘그러면 너무 일본스럽지 않을까요’라고 했더니 기가 막히다는 듯이 분재는 전혀 일본만의 문화가 아니라고 해서, 분재의 세계를 알아봤어요. 정말 기기묘묘하고, 제가 분재가 정말 좋았던 건 분재가 하나의 우주의 축소판이라는 거예요. 분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폭력, 즉 인위적으로 구부려서 원하는 조형을 만드는 작업,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작업이 필요한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냥 버려져서 죽을 수도 있는 식물을 바꾸면서 영양을 제공하고, 오래 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 양면성을 가졌다는 것이 참 좋았고, 그러다 보니 고시조의 시체를 처리할 때도 분재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나오는데, 저는 그걸 포스터로 만들고 싶었어요. 전기톱으로 써는 것보다 얼마나 좋아요. 어차피 처리해야 할 시체인데. 류성희 씨는 언제나 이렇게 영감을 주는 스태프입니다.
만수는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자신의 이빨을 뽑습니다. 만수가 이빨을 뽑는 것은 마치 썩은 나무를 뿌리째 뽑는 것, 그리고 희생자를 제거하는 것과도 연결되는 모티프인데요. 만수의 이빨에 대해, 특별히 의도하신 점은요.
여러 가지 근원이 있는데, 유현목 감독님의 〈오발탄〉(1960)이 있기도 하고요. 출발은 ‘만수의 고지식한 똥고집’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만수를 형성하는 몇 가지 특징, 예를 들면 잘 작동하지 않는 농담을 항상 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어리석은 고집 등이 있는데,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마지막에 이를 뽑기 전, 어쩔 수 없이 폭탄주를 마신다는 것은 만수에게 어떤 감정일까, ‘나는 이제 망했다’일 수도 있고, ‘행복하다’일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어마어마한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의 해방감을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서, 바로크풍의 격렬한 음악과 함께 이를 무식하게 뽑고, 보드카로 입안을 헹구고. 마치, 병든 나무를 뿌리째 뽑는 것 같은 것이죠. 무당벌레가 대나무 잎을 갉아 먹을 때, 만수의 얼굴과 디졸브 되기도 하고, 리원(최소율)이가 마지막에 ‘벌레가 들어서 다 죽어가더라’하는 말과도 연결되고요.

〈어쩔수가없다〉를 보면, 감독님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80년대 음악을 삽입곡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범모를 LP, 타자기 등에 애정을 가진 인물로 설정하신 점도 그렇고요. 특별히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으신 건가요.
저는 영화도 필름으로 찍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필름 테스트를 다 했는데, 현상소의 안정성 문제로 그렇게는 못 했지만, 큰 도움을 받았어요. 똑같은 조명에, 똑같은 피사체를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로 찍어서 비교를 해봤어요. 그래서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필름 룩’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영화를 디지털로 촬영을 했어도 DI 과정에서 조금 더 필름 룩에 가깝게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누가 정보 없이 보면, 착각하리라고 믿어요.
〈어쩔수가없다〉는 할리우드에서 제작 예정이었는데요. 만약,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었다면, 만수는 어떤 배우가 되었을까요?
그때, 스튜디오 사람들이 저에게 물었을 때, 저는 살아있는 사람과 죽어있는 사람을 통틀어서 아무나 캐스팅할 수 있다면 저의 이상적인 하워드(〈어쩔수가없다〉의 만수)는 잭 레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병헌에게도 그런 특질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를 연출·제작한) 가브라스 부부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미싱〉(1982, 국내에는 〈의문의 실종〉으로도 소개됐다)인데, 거기서 주인공이 잭 레먼이기도 하고요.

〈어쩔수가없다〉를 찍으면서, 정말 ‘어쩔 수가 없다’라고 느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쩔수가없다〉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으니까, 충분히 고통스러웠죠. 원래는 캐나다, 뉴잉글랜드 지방 등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다 했었어요. 무수한 제지 공장, 주택을 방문했고, 스토리보드도 처음부터 다 만들었어요. 그런데 무산되고, 한 작품 끝나면 〈어쩔수가없다〉 만지고. 그런 식으로 십몇 년을 보낸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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