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CJ ENM·모호필름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5-09-08/27084290-5483-47ad-91d5-abb702369133.jpg)
이토록 ‘대놓고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일 줄이야.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보기 전까지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과 비슷한 결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웬걸,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본격적인 코미디 영화’로 극장가를 찾았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은 장르영화에 약간의 코미디가 가미된 형태였다면, 〈어쩔수가없다〉는 장르가 ‘코미디’다. 박찬욱 감독은 전작의 은근한 유머 대신 노골적인 유머를 배치하며 과장된 상황 속의 아이러니를 작품 전반의 정서로 잡았다. 가족을 지키려고 하는 행동이 결국 가족을 붕괴한다는 역설을 토대로, 〈어쩔수가없다〉는 무거운 주제를 해학으로 풀어냈다.
박찬욱 감독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몰락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모던 타임즈〉(1936)를 떠오르게 하는 아이러니와 몸개그로 재해석했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 속 소외되어 가는 공장 노동자를 다룬 〈모던 타임즈〉처럼, 〈어쩔수가없다〉는 사양산업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지난 23일 오후, 씨네플레이는 종로구 모처에서 박찬욱 감독을 만나 〈어쩔수가없다〉의 뒷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조금 전에 손예진 배우를 만나고 왔는데요. 손예진 배우가 박찬욱 감독님을 두곤 ‘평온하다’라고 말했어요. 감독님은 원체 감정의 ‘업 앤 다운’이 없으시다고요.
저는 천성이 그런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잘 긴장도 하지 않고, 좀 덤덤하죠.
그렇게 덤덤하신 분이 〈어쩔수가없다〉와 같은 ‘대놓고’ 웃긴 영화를 만드셨네요. (웃음)
인물들을 놓고 상상을 할 때는 저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는 것이고, 저는 그래서 제 영화의 인물들과 제가 연결성이 적은 감독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스토리텔러 중, 캐릭터들에 자신을 많이 투영하지 않는 그런 타입의 감독이죠.

그래서 일상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유머들을 과감하게 시도하신 거군요. 감독님의 전작에서는 은근한 유머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노골적인 방식의 유머를 전면에 배치하셨어요. 그렇게 유머의 방식을 바꾸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러게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계획을 세운 건 아니고, 인물을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예를 들면, ‘고추잠자리’ 시퀀스에서는 시작이 ‘음악을 크게 튼다’ 였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대화를 하려면 고함을 칠 수밖에 없고, 고양되고 흥분된 상태에서 시작을 하면 과장되고, 강렬해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찰리 채플린 시대가 생각이 나고, 그런 엎치락뒤치락 몸개그를 쓰는 그런 코미디가 되어 가더라고요. 저도 각본을 쓰면서 느낀 게, 인물들이 점점 다들 미쳐가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돼 버렸어요. 범모(이성민) 집의 뒷산에 갔을 때, 만수(이병헌)가 비탈길에서 쭉 미끄러지는 건 그 장소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갔다가 여기서 만수가 미끄러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자꾸 찰리 채플린의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어쩔수가없다〉가 사회 시스템 속에서 망가지는 노동자의 얘기를 하다 보니까 〈모던 타임즈〉의 생각이 나서 그런 것 같아요. 또 병헌 배우가 진지하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기는 걸 잘 해요. 그래서 제가 점점 더 그런 모습에 재미를 본 것 같아요. 댄스파티 장면에서도 병헌 씨가 그런 식으로 연기를 할 줄은 몰랐어요. 저희 영화 만든 사람들끼리는 이 영화에서 제일 많이 웃은 장면이에요.

그럼 처음부터 과장된 코미디를 할 계획은 없으셨던 거네요.
전혀요. 쓰다 보면 이렇게 되는 거죠. 다만, 원작 「도끼」(출간명 「액스」) 읽을 때, 원작보다 더 웃길 가능성을 보았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꼭 하고 싶었고, 공동 각본가들에게도 원작보다 더욱 웃기게 하자는 말을 가장 먼저 하긴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피지컬 코미디로 발전하게 될 줄은 처음에는 몰랐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이병헌 배우도 시나리오를 읽고 제일 먼저 한 말이 ‘웃겨도 되냐’는 말이었고, 본인은 읽으면서 웃겼는데, 자신이 엉뚱하게 읽은 건지 하는 걱정이 됐나 봐요. 그래서 저는 ‘정확하게 읽었다. 웃길수록 좋다’라고 답을 했죠.

〈어쩔수가없다〉는 블랙 코미디이지만, 사실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은 전작에서도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 속, 불쑥불쑥 예상치 못한 유머를 넣는 것을 즐기시는 편이었는데요. 특히나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슬픈 얘기지만, 계속 슬픈 분위기로만 만들면 재미없고, 마치 〈모던 타임즈〉처럼 코미디를 해야 더욱 슬프다고 생각했어요. 불쌍한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렇게 웃겨도 되냐는 비판이 나온다면, 그건 되게 단선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인생을 총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유머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근데 그 유머는 연민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지 자칫 잘못해서 냉소주의로 빠지면 안 된다, 그리고 냉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원작 소설에서 가장 많이 바꾼 부분은 어디인가요.
가족이 범행을 알게 된다는 점이죠. 원작과 근본적인 차이를 만드는 변화예요. 만수가 자기 가족을 지키려고 한 행동 때문에 가정이 붕괴된다는 것, 그 거대한 패러독스가 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는 초반부터 살인이 시작됩니다. 반면, 〈어쩔수가없다〉에서는 첫 번째 범행이 시작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데요. 이런 접근 방식을 따른 이유가 있다면요.
저는 관객이 만수를 따라가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행복의 절정에서 시작하고, 실직하고 고통받다가 어떤 결심을 하고, 계획하고. 이 모든 것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관객이 차분하게 이 사람을 관찰하고, 공감하고, 어떤 때는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그렇게 관객과 만수와의 관계가 계속 변하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원래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눈만 봐도 설득되는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어느 배우보다도 그 호소력이 가장 강한 배우 같아요. 그래서 이병헌에게 관객이 순간순간 넘어가서 어떨 때는 응원하고 싶어지고, 실수하거나 어리바리한 행동을 하면 안타까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거리를 두고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느 순간 살인을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관객 자신이 감정을 투자한 이 만수라는 인물이 더 이상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계속 들었으면 좋겠고, 가족이 알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면 좋겠고요. 만수가 범모에게 “돈을 못 벌면, 집이라도 팔아. 마트 가서 짐이라도 날라”라고 하는 말이, 사실은 관객이 만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거든요. 근데 만수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관객은 만수 자신도 그걸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러는 너는 왜 그러는데, 왜 살인을 셋씩이나 하는데?’라고. 그래서 만수에 대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서, 관객이 도덕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한편, 만수를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며 관객이 혼란스럽게 영화를 보시기를 바랐습니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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