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중과 상연〉의 가장 열렬한 팬은 바로 배우 박지현이다. 지금까지도 수도 없이 〈은중과 상연〉을 본다는 박지현은 가장 먼저 드라마의 진가를 알아본 시청자이기도 하다. 공개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등극한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매 순간 서로를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며, 또 질투하고 미워하며 일생에 걸쳐 얽히고설킨 두 친구, 은중(김고은)과 상연(박지현)의 모든 시간들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은중과 상연〉은 은중의 시점으로 써 내려가는 상연의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다. 은중의 시선에서 본 상연은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을 것 같다가도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싶어 하고, 속내를 알 수 없다가도 잔인하리만치 솔직하기도 하고, 포장을 겹겹이 덧댄 것 같아 보이다가도 가장 날것인 인물이기도 하다.
박지현은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상연이라는 인물을 만나, 자신의 연기로 설득력을 부여했다. 상연의 결핍과 불안, 고독, 상실감은 박지현이 연기하는 상연의 얼굴과 태도, 말투, 호흡으로 가시화되었고, 결국 박지현의 상연은 “좋아할 수밖에 없어서 짜증 나”는 인물이 되어 은중이가 쓴 상연의 인생 이야기 속에서 버젓이 살아 숨 쉬게 되었다.
박지현은 지금까지도 매번 〈은중과 상연〉을 정주행할 때마다 감상이 달라진다고 했다. 박지현은 상연이라는 인물을 ‘끝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난 25일, 종로구 모처에서 배우 박지현을 만나 그에게 상연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물었다.

저는 아직 〈은중과 상연〉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 박지현 배우를 보면 상연이 같아요. 저는 아직 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박지현 배우는 어떠세요?
상연이처럼 인터뷰할까요? 20대, 30대, 40대 중에 어떤 걸 원하세요? (웃음) 저는 제가 지금까지, 역할과 저 자신을 잘 분리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은중과 상연〉 후에는 생각보다 역할과 분리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제가 인간 박지현임에는 틀림없지만, 상연이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은중과 상연〉을 찍고 나서는 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또, 작품을 촬영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사실 ‘죽음’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멀게, 함부로 꺼내면 안 되는 단어처럼 느껴지고 부정적으로만 생각을 했다면, 〈은중과 상연〉을 찍고 난 후에는 ‘죽음’이란, 우리가 한 번 태어나면 누구나 경험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지 않나 싶고,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됐어요.

보통은 외형으로만 시간의 변화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지현 배우의 상연이 놀라웠던 이유는 말투나 태도 등으로도 20대부터 40대의 상연을 표현해냈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저는 주변 인물들을 많이 관찰해요. 연기할 때, 사람들을 많이 참고하는데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재료라고 생각하거든요. 연기는 ‘그럴 연, 기술 기’로 그럴듯한 기술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럴듯한 기술’, 삶을 살아가는 그럴듯한 모습을 내려면 삶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소에 이어폰으로 귀를 잘 막지 않고 음악도 잘 듣지 않고, 세상 사람들 관찰하는 것을 되게 좋아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을 보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때가 많아요. 지금도 기자님을 관찰하고 있어요.(웃음) 그래서 사람들을 보면서 흥미롭고, 이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다행히도 주변에 40대가 많아서 그들을 관찰하고 연구했어요. 그리고 저는 평소에 제 인체, 몸에 관심이 많은데요. 건강, 다이어트, 몸매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제가 제 몸에 되게 예민한 사람인 것 같아서, 어떻게 호흡하느냐, 어떤 자세가 어떻게 만들어지냐를 스스로 탐구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상황별로 호흡을 어떻게 할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했어요. 40대 상연은 환자니까, 이 환자의 호흡은 어떨까. 그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자세, 표정, 화술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거든요.

〈은중과 상연〉은 친구 은중과 상연의 10대부터 40대까지 오랜 시간 질투와 동경을 오갔던 시간을 따라가는 이야기인데요. 은중과 상연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하고 연기하셨나요.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관계라고 생각해요. 사실 ‘친구’라는 단어도 어떻게 스스로 주관적으로 정의 내리냐에 따라서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고, ‘가족’도 그렇고 ‘연인’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상연은 외로움을 자처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은중이라는 사람은 상연이한테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상연이의 가족도 다 떠났고, 은중이는 상연이를 온전히, 끝내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상연이에게 은중이는 엄마 같은 존재일 수도, 가족 같은 존재일 수도, 절친한 친구일 수도, 우정을 넘어선 사랑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고요. 우정도 사랑의 한 종류니까요.
상연이는 말기 암 환자가 된 후, 인연을 끊었던 은중에게 찾아가 자신의 죽음을 함께해 달라고 말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은중이를 찾아간 만큼, 상연이가 은중이에게만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상연이가 은중이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상연이가 오롯이 정말 솔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은중이의 엄마(장혜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상연이의 오빠인 천상학(김재원)이 사랑을 줬든, 상연의 엄마인 윤현숙 선생님(서정연)이 사랑을 줬든, 안 줬든, 상연이가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런데 상연이를 조금이나마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은중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대 은중이가 상연이에게 “너는 끝까지 도둑년으로 남아” “누가 널 끝내 받아줄 수 있을까”라는 분노의 말을 하잖아요. 그런데 분노도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연이도 그 순간 모멸감을 느꼈다고 생각하고, 그 말을 반증하기 위해서 남편을 찾게 되고, 그걸 다 겪고 난 뒤에야 ‘은중이라는 존재가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구나, 그걸 내가 놓쳤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거 같아요. 그제야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 해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상연은 쉬이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상연이의 선택들이 자칫 ‘이기적이다’라고 비칠 수도 있는데요.
제가 상연이를 연기해서 그를 변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상연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상연이가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상황, 타이밍이 그랬던 거고, 상연이는 살아남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한 거고.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서, 상연이의 행동이 무조건 이기적이라고 단편적으로 서술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상연이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없었어요. 저는 〈은중과 상연〉이 은중이가 화자고, 은중이의 시점에서 상연이를 바라본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일들은 다 각자의 사연이 있잖아요. 은중이의 시점에서 상연이를 본 거니까, 상연이의 시점에서 본 은중이는 또 다를 수 있다는 거죠. 마지막에 상연이가 은중이에게 자신이 쓴 다이어리 파일을 전달하잖아요. 저는 〈은중과 상연〉이 그 파일을 받은 은중이가 결국 써 내려간 소설책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은중이의 주관이 개입된 상연의 이야기인 거죠. 만약 〈은중과 상연〉 시즌 2가 나온다면, 상연이의 시점으로 은중이를 바라보는 이야기라면 어떨까요.
〈은중과 상연〉이 공개된 후, 박지현 배우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줄을 잇고 있어요. 연기 호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조차도 시청자로서 그런 작품들에 흥미를 많이 느끼고, 자극에 노출된 상황에서, 이런 대본을 받았을 때 이 작품을 정말 잘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어요. 저뿐만 아니라 감독님, 함께한 배우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고요. 연기적으로는 제가 현장에서는 날 것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것을 (감독님이) 잘 다듬어 주셨고, (김)고은 언니도 너무 잘 받아주었고요. 그래서 저는 호평이 정말 감사하지만, 이 모든 호평은 사실 제가 아닌 고은 언니나 감독님께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감독님은 제가 못한 부분을 잘 가려주시고, 언니가 제가 할 수 있게 편안한 환경을 잘 만들어 주고.

박지현 배우는 외적으로도 죽음을 앞둔 암 환자의 모습을 구현하셨는데요. 외형적으로는 어떻게 변화를 시도하셨나요.
말씀드렸다시피, 호흡이 무너져 내려가니까 몸, 자세가 같이 무너져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내가 최단기간에 느낄 수 있는 죽음과 가까운 느낌이 뭘까, 생각하다 막연하게 단식을 3주 정도 해봤는데, 그때 몸은 마르면서 얼굴은 붓고 누렇게 뜨더라고요. 그래서 촬영할 때 몸은 마르고, 얼굴은 굳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촬영 전에 몇 시간씩 울고 갔고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제가 미성숙한 배우여서 덤덤하고 초연해야 하는 신에서도 눈물을 참지 못해서, 제 바스트를 제일 마지막에 찍다 보니까 이미 많이 퉁퉁 부은 얼굴이라 외적으로는 더 아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스위스에서의 장면들을 촬영할 때는 감정적으로 소모가 컸을 것 같아요.
제가 연기적으로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초연해야 했고 덤덤해야 하는 장면인데 너무 슬픈 거예요. 시간적인 제약이 있는데, 제가 계속 울었어요. 그래서 고은 선배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고은 언니는 거의 울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정말 많이 미안했어요. 사실 저희 둘 다 인간으로서는 어린 나이인데, 이 젊은 나이에 그런 (죽음과 관련된)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촬영이 끝나고 나서 언니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고은 언니랑 얘기를 하면서 당시의 감정을 들었는데, 언니도 그 역할이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듣는 순간, 언니는 나를 많이 이끌어줬고, 언니는 현장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현장에서 다 무너져 내렸고, 울어 젖혔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구나. 그런데 고은 언니는 그걸 다 참아냈구나. 현장을 지키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고은 언니가 저랑 같이 무너져 내렸으면 그런 연기가 나오기 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제 연기 호평을 들을 때마다 이건 내가 아니라 고은 언니가 잘한 건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그 때문이에요.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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