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에서 계속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적이에요. 상연이는 자신의 죽음을 위해, 주저하지 않고 밸브를 여는데요. 그 순간, 상연이는 정말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을까요?
기다려왔던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상연은 “나처럼 이렇게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기도 했듯이,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계속 원해왔기 때문에 주저하는 마음이 없었을 것 같고요. 배우 박지현은 주저했겠죠.(웃음) 저는 너무 슬펐어요. 고은 언니의 바스트샷을 찍을 때, 저는 누워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되는데, 눈물이 계속 나는 거예요. 고은 언니가 거기서 “상연아, 고생했어. 상연아, 사랑해” 이랬거든요. “사랑해”까지는 할 줄 몰랐지. 대본에는 그런 게 없었고, 작품에도 “사랑해”까지는 안 나왔는데.
마지막 장면뿐만 아니라, 20, 30대의 상연이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잘 울지 않다가, 혼자 있을 때 코가 빨개지도록 폭발적으로 울곤 하잖아요. 혼자서 우는 캐릭터다 보니, 배우로서도 해갈되지 않는 감정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대본을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객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저는 대본을 상연이 입장에서 해석해야 하니까, 계속 상연이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문득 생각나는 신은, 20대 때, 상연이가 은중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하는 신이 있거든요. 은중이가 “너 상학 선배 좋아했니?”라고 하니까, 기타리스트를 좋아했다고 거짓말하는 장면이요. 그때 은중이의 모습이 너무 순수한 거예요. 상연이가 거짓말했는데, 은중이는 자기가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그러고. 촬영할 때, 화면에 담기지는 않았는데 저는 은중이가 나가고 펑펑 울었어요. 나에게 큰 신뢰를 보여주는 친구에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상연이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모진 말을 내뱉고 나서, 은중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울고. 못된 짓을 해놓고, 은중이 엄마에게 가서 ‘저 안아주세요’라며 울었던 것처럼, 남몰래 뒤에서 울었던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비주얼적으로도 20대, 30대, 40대 상연이의 모습이 다른데요. 20대 상연은 무채색의 옷을 주로 입었다면, 30대 상연이는 붉은 머리를 하고 등장하고요. 혹시, 30대 상연이가 붉은 컬러를 즐겨 사용하는 것도 의도였나요.
그걸 알아봐 주셨네요. 20대 상연에게 남긴 김상학의 메시지 중에, “너를 태워버리지 마”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다른 게 다 불탔어도, 나는 남아 있다는 표현을 하고 싶어서 붉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20대 상연이는 어두운 머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둠에서부터 점점 밝아지는 느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박지현 배우 본인의 옷과 소품을 촬영에 많이 활용하셨다고 들었어요.
40대 대부분의 옷과 소품들은 대부분 제 것이고요. 제가 어떤 캐릭터를 맡게 되면, 그 캐릭터에 맞는 옷들을 쇼핑하는 게 취미예요. 〈재벌집 막내아들〉의 현민이도 제가 빈티지 의류를 사서 입기도 했었고요. 상연이는 돈이 많이 들었죠.(웃음) 액세서리부터 선글라스, 가방까지.

〈은중과 상연〉은 관계에 대해 말하는 작품인 만큼,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관계에 대한 관점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현재 박지현 배우는 관계에 대해, 그리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는 그 당사자가 직접 돼보지 않고서야, 그 사람을 100% 이해하기란 불가능의 영역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어떤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을 100% 이해해야만 관계가 이어지나요?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그렇구나라고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주고 곁에 있어주는 것이 그냥 관계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사람, 나는 이렇지 않은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저도 예전에는 친구라는 관계가 ‘100% 신뢰하고, 100% 나를 이해하고 100% 나랑 같아야 돼’라고 생각을 했어서 ‘나는 친구가 없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생각해 보면, 난 나조차도 이해를 못 하는데, 본인 스스로를 100%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난 나조차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며칠 전이랑 지금도 내 생각이 다르고 몇 시간 몇 분 전이랑 지금도 달라지는데, 어떻게 남을 내가 이해하려고 할까. 그래서 그냥 관계 속에서 그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거, 그 사람 말을 들어주는 거 그것만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은중과 상연〉은 조력 사망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작품에 참여하기 전후로 조력 사망에 대한 견해가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박지현 배우는 조력 사망에 대해서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민감한 소재를 다뤄야 하는 작품이고, 제가 그 당사자이다 보니까 이 작품을 접하는 시청자분들 중에서 이것 때문에 불쾌감을 느끼거나, 기분이 상하시는 분들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도,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제 생각을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아직 극 중 역할과의 분리가 완전하게 되지는 못해서 상연이의 입장이 어느 정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인간은 본인의 선택으로 태어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적어도 고통의 끝에 계신 분들한테는 적어도 본인이 태어난 걸 선택하진 못했어도 본인의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자유로운 끝맺음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조력 사망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도 이 조력 사망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고, 법적으로도 정말 문제가 많은 걸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무지해서, ‘합법화돼야 한다’ 혹은 ‘안 된다‘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긴 연휴가 시작되니, 아직 〈은중과 상연〉을 안 보신 분들이 정주행하기에 좋은 타이밍이에요. 아무래도 15부작 드라마라, 아직 선뜻 시작을 못 한 분들도 있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은중과 상연〉을 아직 못 보신 분들에게 한 마디를 건네주신다면요.
누구의 인생이든, 〈은중과 상연〉은 인생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길지만,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제 작품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저도 〈은중과 상연〉이 공식적으로 오픈되기 전에만 네 번을 봤고요. 공개되고 나서도 셀 수 없이 많이 봤어요. 그만큼 볼 때마다 새롭고, 느끼는 점이 달라지고, 인생의 가르침을 배우기도 하고, 대사 하나하나가 정말 좋고. 안 보신 분들은 후회하실 정도예요. 〈은중과 상연〉을 보기 전후로,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보고 나서 후회하실 분은 없을 거라는 자신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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