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금 홍콩영화는 ‘사자산 정신’이 필요하다” '스턴트맨' 양관요, 양관순 감독

동생 양관순(왼), 형 양관요 감독. (사진제공=HKIFFS(홍콩국제영화제협회))
동생 양관순(왼), 형 양관요 감독. (사진제공=HKIFFS(홍콩국제영화제협회))

홍콩의 예술 및 문화를 소개하는 ‘홍콩위크 2025@서울’의 일환으로, ‘메이킹 웨이브즈-홍콩영화의 새로운 물결’ 영화제가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렸다. 개막작인 정이건, 나탈리 쉬 주연 음악영화 〈라스트 송 포 유〉를 시작으로 지난해 홍콩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갈아치운 〈라스트 댄스: 안식의 의식〉,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유청운), 여우주연상(곡조림), 신인연기상(소문주)을 휩쓴 〈파파〉 등 최신 홍콩영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상영작 중 양관요, 양관순 감독의 〈스턴트맨〉은 과거 홍콩 액션영화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를 회상하며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스타일로 시작하는 패기 넘치는 액션영화였다.

〈스턴트맨〉
〈스턴트맨〉

1980년대 홍콩 액션영화의 황금기에 활동했던 무술감독 아삼(동위)은 비극적인 스턴트 사고 이후 30년간 업계를 떠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친구인 노장 감독이 자신의 마지막 연출작이 될 작품에 무술감독으로 그를 불러오려 한다. 하지만 30년 동안 영화계를 떠나 맨션 경비원 등 다른 일을 하며 지냈고, 딸 체리(채사운)와의 사이도 좋지 않은 그는 용기를 내기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영화의 주연이 바로 과거 자신의 스턴트팀에 있었던 웨이(오윤룡)여서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설득 끝에 무술감독직을 수락한 그는 웨이와 매번 부딪히게 되고, 현장의 젊고 야심찬 스턴트맨 세룡(류준겸)은 조심스레 그들을 지켜본다. 결국 영화의 성공을 위해 뭉친 그들은 오랜 앙금도 풀면서 촬영을 이어간다. 하지만 아삼의 고집으로 공식 허가 없이 급하게 강도 장면과 시가지 총격전을 찍던 중 시민들이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아삼은 해고당할 위기에 놓인다. 언제나 그를 지지해주던 세룡 역시 마음이 돌아선다.

〈스턴트맨〉
〈스턴트맨〉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홍콩영화계의 과거와 현재를 보듬으며 ‘홍콩의 정신’을 되돌아본다. ‘〈영웅본색〉의 무술감독’ 혹은 〈열혈남아〉 〈아비정전〉 〈2046〉 등을 작업하며 ‘왕가위의 무술감독’으로 유명한 동위(董瑋, Stephen Tung Wai)가 직접 주연을 맡았다. 〈용쟁호투〉(1973), 〈충렬도〉(1975), 〈사대문파〉(1977), 〈홍희관〉(1977) 등 수십 편의 영화에서 스턴트맨 및 배우로도 활약한 그는 〈영웅본색〉(1986)을 시작으로 〈오호장〉(1991), 〈신상해탄〉(1996), 〈환영특공〉(1998), 〈쌍웅〉(2003), 〈무극〉(2005), 〈비스트 스토커〉(2008), 〈8인: 최후의 결사단〉(2009) 등 역시 수십 편의 무술감독을 맡았다. 그가 주인공이자 한편으로는 ‘빌런’처럼 출연해 홍콩영화계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더불어 〈구룡성채: 무법지대〉로 주목받은 류준겸, 채사운, 오윤룡 배우가 모두 출연해 화제가 된 영화 〈스턴트맨〉을 연출한 쌍둥이 형제 감독 양관요, 양관순을 만났다.


〈스턴트맨〉 포스터
〈스턴트맨〉 포스터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스턴트맨〉을 연출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다.

양관요 우리 둘 다 스턴트맨으로 시작했다. 여러 사정으로 10년 정도 업계를 떠났다가 대선배인 전가락 배우의 도움으로 다시 스턴트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동생은 이후 TV 프로덕션 등에서 일하다가 이번 영화로 만나게 됐다. 오래전 스턴트맨으로 일한 첫 번째 영화는 〈스턴트맨〉의 무술감독이기도 한 강도해 감독님이 연출과 무술감독까지 맡았던 〈쌍자신투〉(2007)다. 당시 홍금보, 오경, 원화 등이 출연해 화제가 된 영화였는데 첫 출근 날부터 원화와 싸워야 한다고 해서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웃음)

양관순 형과 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일을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내게 홍금보는 아이돌과도 같은 우상이었다.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고, 하루는 〈동방독응〉(1987) DVD를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았다. 보자마자 웃으시며 “이젠 이런 영화 못 찍어” 그러시더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홍콩영화계가 이제 인재도 없고 자원도 없고, 무엇보다 당시의 열정이나 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때 그 말씀이 세월이 흘러 스턴트맨을 소재로 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왼쪽부터) 오윤룡, 동위 배우
(왼쪽부터) 오윤룡, 동위 배우

홍콩 액션영화의 레전드라 할 수 있는 동위 무술감독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인연이 있었나.

양관순 우리의 멘토라 할 수 있는 강도해 무술감독님이 동위 무술감독님과 무척 친해 소개받은 적 있다. 이후 한 결혼식장에서 동위 감독님을 만나 홍콩영화 전성기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영화를 구상 중이라며 조언을 구한 적 있다.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직접 출연까지 하시게 됐는데, 홍콩 액션영화의 가장 거대한 아이콘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소룡 아닌가. 동위 감독님은 〈용쟁호투〉(1973)에도 출연하셨던 분이다. 뭔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상징성 같은 걸 느꼈고,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동생 양관순(왼), 형 양관요 감독. (사진제공=HKIFFS(홍콩국제영화제협회))
동생 양관순(왼), 형 양관요 감독. (사진제공=HKIFFS(홍콩국제영화제협회))

최근 홍콩 박스오피스를 뒤흔든 〈구룡성채: 무법지대〉(2024)를 통해 인기를 얻은 류준겸 배우가 이소룡을 패러디한 이름인 것 같은 ‘이세룡’으로 출연한 것이 흥미롭다.

양관요 원래 과거의 연이 있던 아삼과 웨이의 이야기로만 구상했는데,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싶어 류준겸을 추가로 캐스팅했다. 〈구룡성채: 무법지대〉에 출연도 하면서 그의 액션 연기 지도도 맡았는데, 연기도 잘할 뿐만 아니라 액션 연기에 대한 재능도 뛰어나서 꼭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었다. 말하자면 지금처럼 대스타가 되기 전이었다.(웃음) 아무래도 현재 홍콩 젊은 영화인의 시선이 필요했고, 젊은 관객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동위, 오윤룡, 류준겸 배우가 각각 홍콩영화계의 베이비부머 1세대, 밀레니얼 2세대, Z 3세대를 대표하며 그렇게 3세대가 공존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게다가 아삼의 딸 체리를 연기한 채사운과 류준겸이 실제 연인인데, 얼마 전 10월 16일 결혼했다. 홍콩에서 그 둘의 인기가 엄청나서 이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됐다.

〈스턴트맨〉 홍보를 함께 하고 있는 채사운(왼), 류준겸 배우
〈스턴트맨〉 홍보를 함께 하고 있는 채사운(왼), 류준겸 배우

홍콩 여행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에 있는 이소룡 동상이 등장한다.

양관순 이소룡은 홍콩영화를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의 존재를 영화에 담고 싶었고, 〈용쟁호투〉에 출연한 동위 배우가 그 앞에 있는 모습도 담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 대사로, “스타의 거리 외진 곳에 동상이 있어서 나무들이 동상을 가린다”는 얘기도 하는데, 실제로 주변 호텔 재건축으로 인해 스타의 거리 정중앙에서 구석으로 밀려났다.

딸과의 소원한 관계를 비롯해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 등 영화 속 이야기들은 혹시 동위 무술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반영된 것인가.

양관순 〈스턴트맨〉을 위해 과거 왕성하게 활동했던 여러 영화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녹여냈다고 보면 된다. 형이나 나나 스턴트맨으로 일할 때면, 대기 시간이 꽤 길었다. 그럴 때 성룡의 성가반(成家班, 성룡의 스턴트 팀)에서 활약했던 대선배님들을 만날 일이 많았는데, 딸과의 결혼식 에피소드도 그때 들었던 내용이다.

〈스턴트맨〉
〈스턴트맨〉

백화점에서 촬영된 오프닝 액션 장면은 액션 스타일과 공간 활용 등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1985)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백화점 바깥의 육교 등 실제 과거 촬영지에서 그대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양관요 정확하게 봤다. 이소룡 다음은 성룡 아닌가.(웃음) 1980년대, 스턴트맨들이 중심이 되는 홍콩 액션영화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또 하나의 아이콘이다. 액션 동작부터 공간 등 직접적으로 〈폴리스 스토리〉를 연상할 수 있게끔 연출했고, 실제로 〈폴리스 스토리〉 클라이맥스 장면을 촬영한 침사추이 이스트 지역의 윙온 플라자에서 촬영하고 싶었다. 성룡과 장만옥이 함께 서 있던 육교는 아직 그대로 있어서 촬영할 수 있었으나, 윙온 플라자가 폐업하여 촬영할 수 없어서 옆 옆 건물로 가서 촬영했다. 우리도 신났지만 강도해 무술감독님이 예전 스타일을 재현한다는 걸 즐거워하셨고, 워낙 경험도 많으셔서 하루 만에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스턴트맨〉 포스터
〈스턴트맨〉 포스터

영화에서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은, 아삼의 고집으로 시내에서 촬영 허가를 받지 않고 촬영을 강행하다가 큰 사고가 나는 장면이다. 과거 홍콩영화계에서 종종 있었던 일들로 알고 있는데, 그 장면을 넣은 의도가 궁금하다.

양관요 먼저 여러 명의 도둑들이 금은방을 털고 달아나는 시가지 장면은 〈성항기병〉(1984)에 오마주를 바치는 장면이다. 그리고 강도해, 동위 감독님 두 분이 함께 무술감독을 맡았던 영화가 바로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1988)인데, 실제로 그렇게 허가받지 않고 찍은 장면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열혈남아〉를 보면 장학우 배우가 몽콕에서 패거리들에게 쫓기는 장면을 찍을 때, 거리의 사람들이 구경하듯 다 쳐다보고 있다. 그런 식으로 몰래 촬영하다가 경찰이 오면 프로덕션 매니저가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가 대신 체포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요즘에는 절대 통하지 않는 방법이고 몰래 찍는 건 불가능하다.

〈스턴트맨〉 류준겸(왼), 동위 배우
〈스턴트맨〉 류준겸(왼), 동위 배우

영화는 ‘홍콩의 정신’에 대해 여러 번 얘기한다. 두 분이 생각하는 ‘홍콩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양관요 포기를 모르는 정신이랄까, 옛날 홍콩 액션영화는 CG나 특수효과 없이 거의 모든 걸 시도하고 이뤄냈다. 바꿔 말해, 홍콩 사람들이 언제나 홍콩의 대표적인 산인 사자산을 떠올리며 얘기하는 ‘사자산 정신’(獅子山精神, Lion Rock Spirit)과도 맞닿아 있다.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역경에 맞서 삶을 개척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은 집단의식이다. 〈스턴트맨〉을 통해 그것이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지금 홍콩영화계에 필요하다 싶었다.

양관순 스턴트맨으로 영화 일을 시작해서 한동안 업계를 떠나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오피스 생활을 했다. 안정적 수입이 있었지만 다시 영화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출근하면서 퇴근을 기다리는 생활’이 아니라 ‘퇴근하면서 출근을 기다리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영화 속 세룡의 경우처럼 다시 영화계로 돌아간다면 분명 리스크가 큰 일상이 다시 시작되겠지만,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과 꿈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홍콩의 정신일 것이다.

동생 양관순(왼), 형 양관요 감독. (사진제공=HKIFFS(홍콩국제영화제협회))
동생 양관순(왼), 형 양관요 감독. (사진제공=HKIFFS(홍콩국제영화제협회))

끝으로, 각자 가장 좋아하는 홍콩 액션영화를 꼽아준다면.

양관순 앞서 얘기한 〈동방독응〉을 제외하면 역시 이소룡의 〈정무문〉(1972)이다. 성룡과 홍금보의 영화를 보면서 자란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정무문〉을 보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해봤던 것 같다. 영화 속 진진(이소룡)이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며 우리 정신을 이야기하던 모습이 ‘홍콩의 정신’과도 이어졌던 것 같다.

양관순 홍금보와 원표가 출연한 영화들을 정말 좋아했다. 나 역시 〈동방독응〉에 빠져 있었고, 원표의 주연작들 중 〈패가자〉(1981)를 가장 좋아한다. 이연걸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영화 중에서는 〈무인 곽원갑〉(2006)을 가장 좋아한다. 아무튼 그 엄청난 역사에서 한두 명, 한두 편 뽑는 게 정말 힘들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국 관객분들도 그런 홍콩영화의 향수를 느끼시는 걸 보면서, 다음에 한국에서 개봉하면 꼭 다시 찾고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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