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폭죽에 불을 붙인다. 폭죽이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큰 소리에 놀란 아사코(카라타 에리카)는 몸을 피한다. 이때 음악이 흘러나오고, 도시의 몽타주와 어우러져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음악으로 변모한 도시의 평범한 일상은 모종의 비밀을 숨긴 듯 알 수 없는 얼굴을 한다. 그 모습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속내를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던 아사코의 얼굴과 닮아 있다.
현대 일본 전자음악의 대표주자

영화 〈아사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해 긴장감을 자아낸 이 음악은 현대 일본 전자음악의 대표주자 tofubeats(토푸비츠)의 ‘netemo sametemo’(네테모 사메테모)다. ‘네테모 사메테모’는 자신의 음악 세계에 미니멀리즘을 접합한 그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음악이다. 토푸비츠는 힙합과 일렉트로닉, 댄스 팝이 결합된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는 뮤지션이자 일본의 클럽에서 플레이하는 DJ다. 그는 주로 8비트 사운드,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화려한 음향이 특징인 전자음악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 특히 오토튠을 적극 활용해 자신의 보컬을 하나의 악기처럼 변형한 음악을 선보인다. 〈아사코〉에서 아사코와 료헤이가 강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엔딩크레딧에 이어지는 곡 ‘RIVER’(리버)도 그가 직접 보컬을 맡았고, 오토튠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변형했다. 이처럼 토푸비츠는 전자 음향을 이용한 현대적인 감각의 음악을 선보여 왔다.

엄밀히 말해서 ‘네테모 사메테모’는 토푸비츠의 음악 세계보다는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의 세계에 맞는 곡이다. 소리가 그리는 선이 선명하고, 곡이 주는 느낌이 분명한 토푸비츠의 기존 곡과 달리 몽환적이면서도 모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단순한 선율과 음형을 반복, 변주하는 곡의 미니멀리즘적인 특징에서 기인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음형은 최면적 몰입감과 함께 현실에서 벗어나 무한한 순환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시간 왜곡의 초월적 감각을 심어준다. 동시에 음악에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가미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전매특허인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전자 음향이 제 몫을 한다.
집착적인 사랑

‘네테모 사메테모’는 〈아사코〉의 일본어 원제와 같은 이름을 갖는다. 원제 ‘寝ても覚めても’(‘잠들어서도 깨어나서도’)는 일본의 일상에서 쓰이는 관용어로 ‘자나 깨나 떨쳐낼 수 없는 집착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곡 ‘네테모 사메테모’도 아사코가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만나는 오프닝과 후반부의 둘의 도피 장면에서만 등장하면서, 바쿠를 향한 그녀의 마음과 감정을 표현해 준다. 동시에 아사코의 집착적인 사랑에 대한 경고를 울리기도 한다.

한편, 원제 ‘네테모 사메테모’는 아사코의 꿈과 현실에 얽힌 반복·변주된 두 장면을 불러온다. 이 두 장면은 바쿠와 함께 도피하던 아사코가 다시 그를 떠나서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 1인 2역)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 그녀의 변심에 대한 일말의 단서를 갖고 있다. 첫 장면은 자원봉사를 마친 아사코와 료헤이가 센다이에서 도쿄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다. 잠에 들었던 아사코는 운전하는 료헤이의 옆에서 깨어난다. 이 장면은 아사코와 바쿠가 도피할 때, 오사카에서 센다이로 향하는 길에서 다시 반복된다.

첫 장면은 료헤이와 함께한 일상이 잠과 각성의 중간 단계, 꿈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장면에서 아사코는 낮에 잠들어서 밤에 깨어난다. 창밖의 어둠은 그녀가 꿈속 상태에 있음을 일러준다. 아사코가 료헤이와 함께한 일상은 전 연인 바쿠의 잔상이 계속 남아 있었다. 료헤이와 함께하면서도 바쿠에게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시간은 그녀가 이별 이후 여전히 성장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이는 아사코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아사코는 함께 도피하고 있는 바쿠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 마치 꿈꾸고 있는 것 같아. 아니 지금까지의 시간이 긴 꿈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엄청 행복한 꿈이었지. 내가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나는 전혀 변한 게 없어”.

두 번째 장면에서 아사코는 밤에 잠이 들어 아침에 깨어난다. 이는 아사코가 긴 잠에서 깨어나 현실을 자각했음을 의미한다. 비로소 바쿠에 대한 집착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돌아가는 선택을 내린다.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 아사코의 변심은 각성한 그녀의 선택이다. 또한 아사코의 이름에서 ‘아사’는 아침이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어로 그녀가 가장 자기다운 선택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아사코의 변심이 3.11 동일본 대지진의 큰 피해를 본 지역 센다이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아사코의 선택은 재난 이후 일본인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는 감정과 생각, 태도와도 얽혀 있다. 영화 속에서 바쿠는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사라진다. 그런 그를 향한 아사코의 마음은 재난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같다. 반면, 료헤이에게 돌아가기로 내린 선택은 벌어진 재난을 마주하고 일상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영화의 세계에서 음악 ‘네테모 사메테모’는 재난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일상을 넘나드는 영화의 몽환성을 안정적으로 떠받친다.
*****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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