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당도' 권용재 감독, 봉태규 배우 인터뷰 (1)

독립 장편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의기투합한 봉태규 배우와 감독 권용재를 만나 〈고당도〉를 함께 작업한 소회를 들었다.

봉태규 배우(왼), 권용재 감독 (사진제공=(주)트리플픽쳐스)

‘가짜 장례식 소동’. 뉴스에 나올 법한, 이건 참 각박하고 비정한 현실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아직 임종을 하기도 전, 자식들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다. 조금이라도 빨리 부의금을 거둘 목적이다. 사정이 딱하긴 하다. 간호사인 누나 선영(강말금)은 벌써 몇년 째 아버지 병간호를 떠맡고 있고, 남동생 일회(봉태규)는 사채업자에게 쫓겨 아내와 아들과 함께 전국을 도망다니고 연을 끊은 지 오래다. 가족이지만 이미 단란한 ‘정상가족’의 의미는 상실한 지 오래다. 아버지가 위독해 지면서 다시 모였고, 미리 쓴 부조 문자가 잘못 발송되면서 이들의 거짓말도 시작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버지 장례 하자. 마침 일회의 아들 동호의 의대입학금이 필요한 차. 절박한 마음을 핑계 삼아 이들의 거짓말은 증폭되고,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은 아버지의 가짜 장례식은 본격화 된다. 권용재 감독이 연출한 〈고당도〉는 선영의 말처럼 “태어나자 생기는 빚 같은” 가족 관계의 민낯을 치장 없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화다. 문자의 오발송이라는 블랙 코미디적인 톤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와해된 가족이 걸어 온 길과 현재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씁쓸한 현실 드라마로 치환된다.

〈고당도〉
〈고당도〉

참으로 뻔뻔하고, 대담하고 솔직한 가족해부 영화의 등장이다. 통찰의 정도도, 드라마의 농도도 꽤 짙은 솜씨로 만든 정통 드라마의 색깔을 갖춘 작품인데, 놀랍게도 데뷔작이다. 영화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여 줄 배우의 합이 절실히 필요한 이 작품에서 배우 봉태규는는 현재 집안의 수치스러움을 보여주는 중년의 가장 일회를 연기한다. 최근 라디오 DJ, 유튜브 채널 운영, 작가 등 친숙한 활동과 별개로, 영화 연기로 관객을 만나는 건 12년 만의 일이다. 영화 〈눈물〉(2000)로 데뷔 해 〈광식이 동생 광태〉 〈가족의 탄생〉 〈바람난 가족〉 등 스크린에서 늘 철 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치기 어린 모습으로 각인되었던 그가 〈고당도〉에서 보여주는 중년 가장의 민낯은 분명 서먹하다. 봉태규는 지금껏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극악한 현실에 처한 인물의 표정을 통해 25년 차 배우로, 노련한 연기를 새삼 확인 할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 낸다. 독립 장편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의기투합한 봉태규 배우와 감독 권용재를 만나 〈고당도〉를 함께 작업한 소회를 들었다.


〈고당도〉
〈고당도〉

봉태규 배우는 오랜만의 스크린 출연작인데요. 중년의 가장 역할이 의외이자, 세월의 변화가 더 실감나더라고요.

봉태규 솔직히 제안이 의외였죠. 장성한 아들이 있는 아버지 역할에 저를 떠올릴 것 같진 않거든요. 발상이 재밌었고 동시에 부담도 컸어요. 그런데 이 기회 아니면 안되겠다 과감하게 하자 했죠. 연기할 때는 “나쁜 짓을 하지만 나빠 보이지 않아야 되고, 그렇다고 선역도 아니고” 그 균형을 계속 얘기했어요. 진폭을 크게 가져가서, 예측이 안 되고 변수가 있는 사람처럼 말이죠. 마침 단편 감독들을 지원해 주는 ‘CJ 스토리업’ 심사를 하게 됐는데, 그 인연으로 오랜 만에 〈몬티 쥬베이의 삶과 죽음〉(2021)이라는 단편 작업을 하게 됐어요. 짧은 단편이지만 내 지금 모습을 보여주면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나를 더 좋게 보고 다음을 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계에 첫 발을 들인 것처럼 단편 부터 차근차근 작업해 〈고당도〉까지 이른 거예요.

봉태규 배우 (사진제공=(주)트리플픽쳐스)
봉태규 배우 (사진제공=(주)트리플픽쳐스)

말씀처럼 선뜻 떠올리기 쉽지 않은 캐스팅인데요.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요.

권용재 봉태규 선배님이 출연한 단편 〈어느 날 아들이 새우가 되었다〉(감독 권지애, 2025)에서 제가 조연출로 함께 했는데, 그 현장이 정말 좋았어요. 선배님이 제겐 큰 연예인이는데, 너무 소탈해서 같이 작업할 수도 있겠다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일회라는 캐릭터가 못된 짓을 해야 되는데, ‘못되기만 하면’ 안 되고 악역 같지 않게 이면이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그 역할을 선배님이 해주실 거라 생각했고요. 또 그간 보여주셨던 것과 다른 모습을 꺼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어요.

〈고당도〉
〈고당도〉

​장편 데뷔작 〈눈물〉(2001)의 비행 청소년 부터 〈가족의 탄생〉 〈광식이 동생 광태〉 등 영화 속 봉태규의 모습은 주로 치기 어린 ‘동생’의 모습으로 읽혀 졌는데요. 그 모습이 강점이자 한편으로는 한정적 이미지로 작용하기도 했죠. 강한 남성성을 요구하던 액션, 스릴러 위주의 영화 시장에서 요구하는 역할과는 결이 달랐는데요.

봉태규 한국영화에서 성인 남성 캐릭터의 캐스팅은 일정 부분 정해져 있는게 아닐까, 나는 거기서 벗어나 있구나. 데뷔 때부터 “참 불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때는 “확 늙어야 되나” 생각도 했어요. 솔직히 자격지심이 있었던 적도 있었죠. 그런데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어차피 연기를 할거니까 잘 버텨야겠다 마음을 먹게 됐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모습을 캐스팅해주는 분이 있을 수 있으니 그때까지 잘 버티자. “봉태규도 저런 걸 할 수 있구나” 한두 명이라도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자 했죠. 그렇게 애쓸 때 나를 알아봐 준 감독님이 준 작품이라 이 작품이 더 소중해요.

권용재 현장에서 그런 내색을 전혀 안 하셨어요. 저는 선배님이 하신 작품들을 보면서 감독의 꿈을 키워 왔어요. 그런 배우님이 저와 같이 작업을 하신다는 게 저에게는 부담이자 감사한 마음도 컸어요. 그래서 연출적으로 제가 생각한 건, ‘배우 봉태규’의 첫 등장을 지연시키고 싶었어요. 차 먼저 보여주고 차문 열리고, 뒷모습부터 보여줬어요. 최대한 늦게 이 사람을 스크린에 등장시키자. 관객들에게도 일정 정도, 이렇게 세월이 흐른 봉태규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자. 약간의 충격과 환기를 주고 싶었어요.

봉태규 그 의도는 오늘 처음 들었네요. 다만 저 역시 “다른 얼굴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계속 했어요. 연기 변신이라기보다, 그냥 봉태규에게도 “다른 모습이 있네” 이걸 보여주자. 일회가 집도 없이 떠도는 상황이라 햇볕에 타고 바깥을 떠돌아 고생한 분장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촬영 때는 안 피우던 담배도 피웠어요. 피곤하고 텁텁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일회가 입는 옷도 미리 받아서, 집에서 입고, 집 세탁기로 빨고 그렇게 제 몸에 최대한 익숙하게 만들었어요.

〈고당도〉
〈고당도〉

영화를 기획하게 된 배경도 궁금한데요. 장례 절차를 이용한, 가족들의 사기 공모잖아요. 윤리적인 면에서 끝까지 밀어붙인 이야기인데요.

권용재 아이의 탄생이나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서 비즈니스가 끼어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가족들이 돈 얘기할 때 눈물이 싹 사라지죠. 윤리성이 도마 위에 올라야 되는 상황에도, 밑에는 빙하처럼 비즈니스, 현실이 깔려 있는 거죠. 그런 아이러니를 보면서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솔직히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의 죽음을 비즈니스 삼는다는 건. 창작자로서 윤리적인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게 만들거든요. 그럼에도 이건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는 이야기라서 과감하게 쓰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대신 방향성은 건강해야 한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인터뷰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두번째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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