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 거목 안성기 별세, 69년 연기 여정 막 내리다

1957년 아역 데뷔부터 천만 배우까지, 혈액암 투병 6년 만에 향년 74세로 영면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서울=연합뉴스) 지난 2008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서 레드카펫 인사를 하는 안성기.[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서울=연합뉴스) 지난 2008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서 레드카펫 인사를 하는 안성기.[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영화사의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던 배우 안성기가 5일 오전 9시경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7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안성기 배우 장례위원회는 이날 그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는 사고로 쓰러진 후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며, 6일간의 사투 끝에 결국 세상과 작별했다. 2019년부터 혈액암과 싸워온 그는 최근까지도 회복에 전념하며 스크린 복귀를 준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일단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재발이 확인되면서 다시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 혈액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으며, 2023년에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건강이 크게 호전됐다며 새 작품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2015년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참석한 안성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5년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참석한 안성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안성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서 탁월한 연기력과 모범적인 품행으로 존경받아왔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 씨의 인연으로 김기영 감독의 작품 〈황혼열차〉(1957)에 아역배우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59년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다. 동성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잠시 연기를 멈추기 전까지 10년간 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후, 전공을 살려 해외 취업을 모색했으나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그가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는 계기가 됐다.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가운데) 출연작 〈바람 불어 좋은 날〉의 한 장면. 이 작품으로 안성기는 1980년 제1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가운데) 출연작 〈바람 불어 좋은 날〉의 한 장면. 이 작품으로 안성기는 1980년 제1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10년 만에 성인 배우로 복귀한 그의 첫 작품은 김기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1977)이었다. 이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배우로서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1980년대에는 〈만다라〉(1981, 임권택 감독), 〈꼬방동네 사람들〉(1982, 배창호 감독), 〈고래사냥〉(1984, 배창호 감독), 〈칠수와 만수〉(1988, 박광수 감독) 등 굵직한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산업자본을 만나며 대변혁을 겪는 시기, 그는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남부군(1990, 정지영 감독)을 시작으로 하얀전쟁(1992), 투캅스(1993), 그대 안의 블루(1992·이현승), 태백산맥(1994), 퇴마록(1998·박광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 출연작마다 관객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왼쪽) 출연작 〈하얀전쟁〉의 한 장면. 2026.1.5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왼쪽) 출연작 〈하얀전쟁〉의 한 장면. 2026.1.5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2000년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영화계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무사〉(2001)로 첫 남우조연상을 받았으며, 한국 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 〈실미도〉(2003), 〈라디오스타〉(2006) 등 호평받은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했다.

2010년대 이후에도 〈부러진 화살〉(2012, 정지영 감독), 〈화장〉(2015, 임권택 감독) 등 베테랑 배우로서의 진가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작품은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맡았다.

아역 시절부터 현재까지 69년간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왔다. 2017년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가 특별전을 개최하며 그의 공로를 기렸다.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 출연작 〈투캅스〉의 한 장면. 왼쪽은 배우 박중훈. 2026.1.5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 출연작 〈투캅스〉의 한 장면. 왼쪽은 배우 박중훈. 2026.1.5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고인은 오랜 배우 생활만큼 수많은 영예를 안았다. 1980년 〈바람불어 좋은날〉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이래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을 40여 차례 수상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모든 시대에 걸쳐 주연상을 받은 유일무이한 배우다.

〈기쁜 우리 젊은날〉(1987)과 〈하얀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2013년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 앞장섰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책임도 다했다.

1984년 개봉한 영화 〈고래사냥〉에서 거지 '민우'를 연기한 안성기(오른쪽) [영상자료원 제공]
1984년 개봉한 영화 〈고래사냥〉에서 거지 '민우'를 연기한 안성기(오른쪽) [영상자료원 제공]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1983년부터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맥심의 최장수 모델로도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친숙한 존재였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아들 다빈·필립 씨가 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을,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배창호 감독·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는 장례위원회가 구성돼 국민 배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후 소감을 밝히고 있는 안성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후 소감을 밝히고 있는 안성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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