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망생의 0.1퍼센트만이 데뷔하고, 그중 0.001퍼센트만이 성공할 수 있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 연습생이 되는 순간을 꿈의 도착지로 여겼던 환희는 오래가지 않는다. 기획사의 조건에 맞추기 위해 각자의 색깔을 지운 채, ‘한국식 트레이닝’ 시스템 속에서 아티스트의 개성은 빠르게 소진된다. 마치 ‘로봇’이 된 것 같은 감각 속에서, 음악을 시작할 때 품었던 기대도 흐려진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팝의 고공행진에 따른 빛의 이면이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소통하는 길은 하나뿐일까? 정해진 공식에서 벗어난 도전과 질문을 가지고 자신들의 음악으로 답을 찾은 밴드가 있다. ‘더 로즈’는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 스타〉 출신 김우성, 홍대 거리에서 버스킹으로 실력을 다져온 박도준·이하준, 아이돌 연습생 출신 이태겸이 만나 2017년 결성한 4인조 밴드다. 시스템도 지원도 없이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북미 최고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 무대에 오르며 글로벌 뮤지션이 되기까지 이들의 출발은, 케이팝 성공 공식을 기준으로 본다면 ‘미운 오리 새끼’에 가까웠다.
누구의 기대도 받지 못했던 시절, “누가 듣건 말든, 내가 좋아하는 걸 부르자”던 이들을 먼저 알아본 건 유럽과 미국, 국경을 넘은 해외 팬들이었다. 탄탄한 연주와 가창력, 무대 위 퍼포먼스는 물론, 감각적인 이미지가 글로벌 벽을 허물었다. 무엇보다 상처와 회복, 연대의 감각을 담아낸 이들의 음악은 ‘치유’라는 키워드로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더 로즈〉의 ‘Definition of Ugly Is’의 가사처럼, “다르다는 게, 특별한 게” 틀린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멤버들의 믿음은 “모두가 미워해도 it’s alright, I really don’t belong”이라는 태도가 되었고, 네비게이션에도 없는 자신만의 경로를 개척해왔다.
길을 벗어난 밴드의 여정이 마치 영화 〈원스〉의 버스킹 장면과 〈비긴 어게인〉이 그려온 데뷔 루트와도 맞닿아 있다. 실력이 있다면 시스템 바깥에서 자신의 음악으로 세계와 만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더 로즈는, 분명 지금 이 시대가 길러낸 새로운 유형의 글로벌 밴드의 모습이다. 데뷔 8년 차를 맞은 이들은 매년 초,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싱 스트리트〉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한다. “음악을 하다 보면 머릿속으로는 늘 화려한 장면을 상상하지만 쉽게 이뤄지지는 않아요. 안 되는 순간이 대부분이지만 포기하지 않아요. 〈더 로즈〉의 서사도 그랬어요.” 밴드 리더 김우성의 말이다.

〈더 로즈: 컴 백 투 미〉는 데뷔 8년 차 밴드 더 로즈의 현재진행형 도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밴드의 결성과 위기, 그리고 현재의 성공을 멤버들의 진솔한 인터뷰로 담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더 로즈가 도달한 지금의 성공을 단순히 ‘극복 서사’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K-팝의 외연 확장을 향한 찬사에 앞서, 그 구조 안에서 아티스트 본연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했는지 묻는다. 더 로즈에서 출발한 영화가 결국 오늘날 음악 산업의 점검으로 또, 청년 세대의 고민과 감각으로 확장되는 이유다.
억울하게 살인죄로 기소된 한인 이민자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2023)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이성민 감독의 차기작으로, 영화는 더 로즈의 팬뿐 아니라 밴드를 처음 접하는 관객, 그리고 제2의 더 로즈를 꿈꾸는 아티스트들에게까지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작년 미국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어 호응을 얻은 〈더 로즈: 컴 백 투 미〉는, CJ 4DPLEX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개봉을 앞두고 있다. 2월 14일 국내 개봉에 앞서, 더 로즈 멤버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스크린 공개를 앞둔 긴장과 기대를 전하는 멤버들에게서는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또 다른 매력이 엿보였던 인터뷰. 〈더 로즈〉를 몰랐어도 다큐멘터리를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어지는 밴드, 〈더 로즈〉의 음악과 그들이 걸어 온 행보를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촬영에 2년~3년이 걸렸는데요. 무대가 아닌 카메라 앞에 생활을 노출한다는 데 따른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생겼을 것 같은데요.
김우성 감독님한테 제일 자극적인 걸 골라서 내자고 했어요. 세상에 콘텐츠가 얼마나 많아요. 굳이 우리를 봐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겠다 했다. 최악의 모습이어도 되니까 다 찍어달라고 했어요.
이하준 멋있게 포장한 모습 말고 찌질한 모습도 다 보여주자. 가령 곡 쓰면서 막 하루 이틀 안씻고 그런 모습도 궁금해 하실거야 했는데, 그런 건 다 빠져 있더라고요. (웃음)
김우성 처음 편집본을 보고 그래서 감독님께 막 항의를 했죠. (웃음) 감독님께서, 그런 것까지 보이는 건 위험하다.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박도준 스크린에 나오니까 살짝 걱정이 겹쳐지더라고요.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 오해없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감독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이하준 음악으로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무대에서 자유롭게 보여주는 것과,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상으로 내 모습을 끄집어내는 건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김우성 음악을 할때도 많은 전문가들과 작업을 하면서 저희의 방향성을 만들어 가는데요. 영화 작업도 그런점에서 마찬가지구나 생각했어요. 최종본을 보고 말씀 드렸죠. ‘감독님, 감사합니다.”
이태겸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저희가 무대 위에서는 안그래 보이는데 은근 부끄러움이 많아요. 속마음을 잘 털어놓은 적이 없죠. 이번 작업으로 저희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냈어요. 특히 영화를 통해 해외가 아닌 한국에서 저희 밴드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거죠.

인터뷰 경험은 어땠나요.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도 모르게 나온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태겸 감독님께서 속마음을 말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해 주시더라고요. 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울 일인가 싶었는데, 질문 하나로 제가 더 깊은 곳까지 빠져들었다 나왔어요. 저도 몰랐던 부분이 해소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제가 우는 장면을 보고 결국 또 제가 울고 있더라고요. (웃음)
이하준 재밌었던 건 저희가 인터뷰를 다 각자 따로 했거든요. 한 명당 거의 4시간 넘게 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 다들 각자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처럼 살고 있었구나 깨닫게 됐어요.
김우성 〈오션스 일레븐〉을 보면 각 파트의 전문가들이 모여 최고의 팀이 되잖아요. 저희 딴에는 넷이 모였을 때 이런 저런 각자의 사연들이 많았는데, ‘더 로즈’로 하나의 밴드가 된거죠. 그래서 ‘우리 완전 어벤져스다’ 라고 했죠. (웃음) 한창 패기 넘칠 때 저희가 가졌던 마음이 합쳐져서 하나의 밴드가 되는 과정이 작품 안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멤버 각각의 히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K-팝 시스템, 오디션 프로그램의 매커니즘 등을 향한 비판의 지점도 엿보게 되는데요.
김우성 저희가 좋아하는 곡이 〈Definition of Ugly Is〉예요. 아웃사이더로 미운오리새끼처럼 살았던 우리의 마음이 그 곡에 자연스럽게 들어 가 있어요. 지난 7~8년의 동안 이런 시스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우리에 맞게 헤쳐 나갈 지 고민을 많이 해왔어요. 지금도 자유롭게 음악을 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요. 그 마음이 반영된 것 같아요.
박도준 한국사회는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시스템이 너무 확실하죠. 이걸 깨고 간다는 건 ‘이제 부터 힘든 삶을 살겠다’라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어쩔 때는 차라리 그냥 시스템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K-팝은 이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안정적으로 노래를 창작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고, 아티스트가 무대에 온전히 신경쓰고 집중할 수 있다는 데서 분명 강점이 있죠. 저희는 그럼에도 ‘반항’ 정신으로 출발해 여기까지 왔어요.

김우성 K-팝이 닦아 놓은 길은 이미 확고하고 대단하죠. 저 역시 이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시스템 안에서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누가 저희한테 ‘이 노래 해’라고 하면 절대 못해요. 그런 점에서 넷이 뜻이 통했어요. 누가 뭐라해도 하기 싫은 건 하기 싫다고, 못한다고 말했죠. 그걸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건 혼자가 아니라 넷이라서 아닐까. 믿고 갈 사람들이 있으니까 서로 잡아주면서 올 수 있었어요.
이하준 음악을 할 때 만큼은 저희는 힘든 시기를 모두 공유해 왔어요. 어떤 시스템이든 그냥 그 마음 잘 맞는 사람끼리 하면 거기서 오는 시너지는 분명 있어요. 저희가 경험한 것도 그 부분이고요.

또 다른 〈더 로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어요.
김우성 시작부터 저희는 안 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밴드를, 합을 맞춰 보지도 않은 멤버들과 하는 게 누가봐도 말이 안되는 거였죠. 같이 한 첫 회사도 저희를 믿지 않았고, 친구들도 ‘굳이 밴드를 해야하냐 지금 상황에서.’ 솔로를 하라고 충고했어요. 그런데 처음 같이 합주를 했을 때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데뷔곡 〈Sorry〉를 썼을 때 그 느낌들이 나중에 지금 돌아보면 다 맞았거든요. “그냥 너는 가야 해, 이 길을 가야 돼.” 하는 깨달음이었어요. 저희가 온 이 길이 희망이 되어 그분들이 저희보다도 더 멋있는 별이 된다면 좋겠어요. 그러나 추천은 못한다. 각오는 해야한다 말하고 싶어요. (웃음)
박도준 지난 시간을 돌아 보면 좋았던 적도 많지만 슬프고 힘든 일도 진짜 많았어요. 이것만 탁! 하고 터지면 될 것 같은 느낌을 심어주는데 살짝 맛만 보여주고 또 안돼요. 될랑말랑 이 세월이 계속 돼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그 기분으로 몇년을 쭉 포기하지 않고 버텨 왔어요. 다행히 지금은 서른 넘어서까지도 음악을 하고, 뮤지션이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해외 팬들의 호응과 함께 코첼라 무대에 선 순간은 〈더 로즈〉의 파워를 보여주는 공연이었죠. 그 당시 기분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이하준 2024년에 코첼라 무대에 섰는데, 그땐 르세라핌, 에이티즈, 페기 구 등과 같이 포스터에 올라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아무 관심을 못받았어요. 저희가 한국 팀인지도 대부분 모르셨어요. 기사가 2천 개 나가면 저희가 언급된 건 하나 정도였죠.
김우성 저희 한국에서 시작했는데. 정말 슬프죠. (웃음) 사실 코첼라까지 정말 조금씩, 천천히 갔어요. 우리가 목표한 게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목표한 순간이 왔을 때는 오히려 신기하지 않았어요. 천천히 가는 만큼 오히려 그동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다행이었고. 자신 있었지만, 코첼라라는 이름에 맞게 잘 보여줘야겠다는 부담감에 힘도 많이 들어가 있었어요. 옷도 무거웠고. 그래서 옷을 벗었잖아! (웃음)
이하준 그렇지. 나는 벗었지. (웃음) 첫날은 진짜 좀 잘 보여줘야겠다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고 둘째 날엔 말 그대로 그냥 편하게, 재미있게 하자 그 마음이 커졌어요. 의상도 즉흥적으로 바꾸고 그렇게 자유롭게 했던 것 같아요.
이태겸 맞아요. 코첼라 서기 전에 저희가 페스티벌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다들 떨림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전에 심장이 빨리 뛰더라고요. 그런데 첫 곡을 시작하고 떨림이 다 사라졌어요. 그 순간부터 그 무대를 좀 더 즐기게 됐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박도준 저희가 무대 서기 전 1년 전에 코첼라에 놀라 갔었어요. 언젠가 이 무대에 서면 정말 잘 해보자. 그렇게 막연한 꿈이 현실이 되었는데 크게 놀라지 않았어요. 그동안 계속 하나하나 우리를 희망고문 하면서, 어떤 환경에서도 노래할 수 있게 준비를 해왔어요. 기회가 올 때 주어진 기회를 열심히, 잘 잡자고 생각했죠.

어려운 과정도 겪어야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환경은 한국 무대 뿐만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어필할 수 있는 시대인데요. 영어 가사를 쓰고, 영어로 팬들과 소통하는 점도 그룹의 확장을 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우성 도준이와 저는 미국에서 자랐고 영어는 자연스러웠어요. 사실 밴드는 홍대에서 시작했거든요. 첫 공연을 한 홍대 롤링홀에서 했는데요. 길에서 사탕을 나눠주면서 사람들을 모았어요. 200명 정도 들어올 수 있는 공연장인데 15명이 왔고 그 중 10명이 친구들이었어요. 그땐 이 공연장을 반은 채우자, 멜론 100위에 들자는 게 목표였지, 우리가 해외를 간다, 이런 건 상상도 못했어요. 그러다 해외 팬의 호응을 얻고 투어를 하게 되고 유럽, 미국도 가게됐죠. 전 미국에 살면서 뉴욕도 한번 안가 봤었거든요 그때까진.
박도준 데뷔 초에 인터뷰를 하면서 멜론 100에 들고 싶다, 그럼 빌보드도 꿈을 꿔봐야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꿈이었죠. 그런데 정말 저희가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 외국에서 먼저 반응이 었었어요.
김우성 ‘먼저’가 아니라 외국에서만 호응이 있었습니다. (웃음) 제가 가사를 많이 담당하고 있는데, 한국어로는 풍부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있는데 그게 영어로는 번역이 안되서 답답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저희 노래를 외국분들이 더 많이 들어주시니 그렇다면 처음부터 영어로 정확하게 전달 해야겠다 싶었어요. 지금은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해서 쓰는데, 그것도 저희 색깔이 되었고 팬분들도 받아들여 주세요.
박도준 2018년도에 저희가 유럽 5개 투어를 가게 되었어요. 첫 곡 나오고 한 두달 만에 갔는데, 관객들이 〈Sorry〉를 따라 부르시는 거예요. 한국어를 모르시는 분들이 한국말로 저희 노래를 정확히 1부터 100을 다 부르시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그때 느꼈던 거죠. 음악에는 결국 언어의 한계는 없구나.
이태겸 사실 저희와 같은 길을 걸어 온 밴드가 거의 없다보니 주변에서도 어떤 방식으로 했냐는 말을 많이 물어 보세요. 그런데 방법은 없었어요. 영어를 하자, 미국 시장을 노리자 이런 것도 없었고요. 그냥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어요. 형들은 원래 영어를 했고, 자연스럽게 지금은 외국 회사와 일을 하고 있으니 하준이와 저도 영어로 하는 게 자연스럽게 된 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 지금의 시스템이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더 로즈〉의 곡의 정체성이라 할 ‘치유’의 음악이 언어와 국경을 넘어 소통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김우성 지금도 앨범을 작업하고 있어요. 이번 앨범은 조금 저희의 얘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박도준 요즘은 정말 시대가 변한 걸 느껴요. AI라는 거대한 변화가 있고, 영화 방송 모든 분야가 대 역변의 시대다 보니까 저희들도 같이 역변하는 중이에요. 코어는 안 바뀌겠지만 결국에는 상황에 맞게 저희도 변하겠죠. 지금까지 희망고문을 많이 당해서 그런 지,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지치기도 하고, 아쉬운 부분도 많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조금 통달했다고 해야 하나. (웃음) 지금까지 열심히 잘 달려왔으니 하루하루 또 그렇게 하자. 물 흐르듯이 살아보자.
이하준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또 이렇게 안 될 수도 있고 막힐 수도 있죠. 저희가 정한다고 해서 100%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대비책에 대해서도 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태겸 지금까지 〈더 로즈〉는 앞을 보면서 달려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뒤도 한번 돌아볼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함께한 시간도 한번 생각해 보고요. 뭣보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좋은 곡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당장은 영화 개봉에 대한 기대도 클 것 같은데요. 흥행 기대치수는요?
이태겸 저희가 음악을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숨기고 있었던 것들을 표현하게 하는데요. 만약 영화를 보고, 딱 한분이라도 저희처럼 ‘이렇게 하면 오히려 더 편할 수 있겠구나’ ‘내가 이렇게 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한 분이라도 들면 이번 다큐멘터리로 저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부 전했다고 생각해요.
이하준 저희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영화를 통해서도 이제 모든 보시는 관객분들과 팬분들이 힐링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공감해 주시면 한국에서도 팬분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김우성 억지로 하지 말자.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려고 해요. 흥행은? 수치가 얼마나 되야 하는 지 몰라요. 이 영화를 배급하는 CJ가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럼 흥행 한거죠?(웃음)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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