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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는 여전히 직장인의 고충이 무섭다…'직장상사 길들이기', 그리고 '드래그 미 투 헬'

〈드래그 미 투 헬〉 촬영장의 샘 레이미 감독
〈드래그 미 투 헬〉 촬영장의 샘 레이미 감독

B급 시장에서 출발한 감독이 블록버스터 메가폰을 잡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거기서 실패하지 않고 꽤 걸출한 작품을 세 편이나 내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샘 레이미는, 날고 긴다 하는 영화감독이 즐비한 할리우드에서도 그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는 신기한 감독이다. 〈이블 데드〉라는 저렴한 B급영화가 나왔을 당시 누가 이 감독이 스파이더맨을 스크린에 옮기는 영예의 영화감독이 될지 장담했으랴. 심지어 그 작품이 대성공을 거두며 '슈퍼히어로 실사영화' 붐의 포문을 열리라곤 아마 감독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고로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2000년대 들어 대형 프랜차이즈에 몸을 맡긴 샘 레이미의 오리지널리티가 간만에 한껏 묻어나는 작품이라 반갑다. 영화 기준으로 그는 〈스파이더맨〉 삼부작을 완성하고 〈드래그 미 투 헬〉로 잠시 숨 돌리기를 한 후 오즈의 세계로 넘어가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을 연출했다. 사실상 실패에 가까웠던 오즈로의 여행 후 그가 다시 대형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제작 과정이 밝혀진 지금은 샘 레이미였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완성했다는 것이 중론이나) 개봉 당시 샘 레이미스럽다는 반응과 샘 레이미의 슈퍼히어로 영화로선 실망스럽다는 후기가 엇갈렸다. 그리고 그가 여기서 〈직장상사 길들이기〉를 발표했으니, 〈드래그 미 투 헬〉의 향수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드래그 미 투 헬〉과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큰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영화를 이끄는 주인공이 여성, 그것도 직장인이란 점이다. 이런 흔한 설정이 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대형영화를 마친 영화감독이 본인의 ‘감’을 찾는 이야기에서 같은 소재를 공유한다는 건 좀 더 유심히 살펴볼 만한 요소다.

물론 두 여성 주인공, 〈드래그 미 투 헬〉의 크리스틴(알리슨 로먼)과 〈직장상사 길들이기〉의 린다(레이첼 맥아담스)는 ‘직장에 찌든 여성 주인공’이란 점만 같을 뿐 영화에서 처하는 상황이나 입지는 다르다. 크리스틴은 대출 연장을 해달라는 할머니를 딱 한 번 매몰차게 거절했다가 저주에 걸린다. 그는 가해자였다가 피해자가 된다. 린다는 반대로 새로 CEO에 부임한 브래들리(딜런 오브라이언)에게 승진 취소와 각종 모욕을 당하다가 무인도에 둘만 남겨진 후 그를 성심성의껏 ‘외조’한다. 그는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된다.

〈드래그 미 투 헬〉
〈직장상사 길들이기〉
〈드래그 미 투 헬〉의 크리스틴(왼), 〈직장상사 길들이기〉 린다

이 과정에서 두 주인공의 공통점. 승진이다. 사실 크리스틴은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승진 심사가 코앞에 있었기에, 할머니의 심정을 알면서도 더욱 매정하게 거절한다. 크리스틴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했을 뿐이다. 오히려 대출 연장이 어려운 걸 알면서도 상사에게 확인해볼 정도로 심성이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그저 승진을 하고 싶다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을 만한 욕망을 가졌다는 이유로 영화 내내 온갖 불운에 시달린다. 반면 린다는 사망한 전 대표가 다음 임원으로 콕 짚었을 정도로 유능하다. 그의 문제는 업무가 아니다. 바로 옆자리 직원도 피할 정도로 눈치와 사회성이 떨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나쁜 사람인가? 전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능한 직원은 무엇보다 귀하다. 그럼에도 그는 단지 대표의 변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된다.

〈직장상사 길들이기〉
〈드래그 미 투 헬〉
〈직장상사 길들이기〉 린다(왼), 〈드래그 미 투 헬〉의 크리스틴

이렇게 크리스틴과 린다는 권력 전복 서사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반면 근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직장인’, ‘여성’이란 테두리에서 그들이 받는 암묵적 폭력이 공유되고 있다는 점은 샘 레이미 감독에겐 그것이 여전히 화두이자 흥밋거리로 보인다. 한편으론 두 여성이 이처럼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연속에서 자신만의 생존법을 터득하고 다시금 진짜 ‘삶’을 쟁취하려는 고군분투가 묘사되는 것은 여성의 야성적인 에너지를 포착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다.

〈직장상사 길들이기〉
〈직장상사 길들이기〉

물론 두 영화를 완벽한 짝패라곤 볼 수 없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샘 레이미가 썼지만,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데미안 섀넌(Damian Shannon)과 마크 스위프트(Mark Swift) 작가가 쓴 것이니까. 그럼에도 샘 레이미 감독이 2000년대 들어 대형 IP가 아닌 오리지널리티를 발산한 작품에서 이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샘 레이미의 세계에서 여전히 직장인(특히 여성)은 녹록지 않다고 보는 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모쪼록 이 작품을 본다면, 반대로 〈드래그 미 투 헬〉을 봤다면 이 다음 작품으로 이 영혼의 파트너를 관람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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