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어이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50일째인 3월 25일(수), 1,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600만, 아니 그 이상도 충분히 가시권이다.
바야흐로 ‘항준적 사고’의 시대다. 그를 두고 많은 네티즌은 ‘눈물자국 없는 말티즈’라고 말한다. 솔직하고 가감이 없으며, 자신을 그럴듯하게 꾸미지 않는다. 장 감독은 자격지심이나 허세 대신, 그 자리를 유쾌함과 낙천성으로 채웠다.
장항준 감독 특유의 사고방식을 일컬어 ‘항준적 사고’라고 한다. 그러나 ‘항준적 사고’가 완성되기까지, 장항준은 수많은 굴곡과 기다림을 통과해 냈다. 대중에게 그는 늘 유쾌하고 운이 좋은 긍정의 아이콘으로 통하지만, 1,500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까지 그가 견뎌온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지난 2023년, 그러니까 〈왕과 사는 남자〉가 기획 단계이고 〈리바운드〉가 개봉한 지 몇 달이 됐을 무렵, 씨네플레이는 ‘한국영화, 감독’ 인터뷰 프로젝트로 장항준 감독을 만났다. 이날 장항준은 자신의 ‘데뷔의 순간’부터, 슬럼프와 적응의 시간, 그리고 영화와 삶을 대하는 진솔한 태도를 털어놓았다. 이날 장항준 감독이 전한 ‘항준적 사고’가 담긴 어록을 모아봤다.
*인터뷰의 풀 영상은 하단에서 볼 수 있다. “숏폼 장항준만 보다 롱폼 장항준을 보다니. 롱폼이 진짜 장항준 느낌이다”라는 어느 네티즌의 댓글이 달린 만큼, 풀 영상으로 장항준 감독의 매력을 느껴보길 권한다.

“나는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길로 가도 인생을 조질 놈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도 인생을 조질 놈이니, 기왕이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인생을 조지자”
장항준 감독의 ‘항준적 사고’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됐을까. 그 중심에는 하고 싶은 일과 안전한 길 사이를 두고 고민 끝에 찾은 그만의 답이 있다. 장항준 감독은 자신이 ‘안정지향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임을 일찍부터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그는 영화를 하게 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고등학교 때, 그는 ‘허리우드 극장’에 가서 〈썸머 스토리〉(1988)라는 영화를 보고 자신도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보며, ‘이 중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그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길로 가도 인생을 조질 놈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도 인생을 조질 놈이니, 기왕이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인생을 조지자, 그렇게 결론을 냈다”라고. 그때 본 〈썸머 스토리〉 티켓은 아직도 집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야구로 치면, 지금 이 순간이 나의 9회인지, 5회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끊임없이 더 노력해서 지금이 중반전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9회는 아직 저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타석에 들어선다.”
장항준은 자신의 인생을 야구 경기에 비유했다. 장항준은 “내가 언제까지 이 직업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면서 “야구로 치면, 지금 이 순간이 나의 9회인지, 5회인지 알 수가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장항준은 “그래서 나는 지금이 중반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9회는 아직 저 뒤에 있다. 그러다보니까, 내가 끊임없이 이제는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터질 때까지”라고 덧붙였다. 결국, 〈왕과 사는 남자〉로 흥행의 만루홈런을 쳐냈으니, 그의 역전은 이제 시작된 듯싶다.

"신이 내게 2년의 기회를 줬는데, 노력하지 않으면 내 인생에 너무 미안하다"
〈왕과 사는 남자〉의 폭발적인 흥행은 단순히 장항준의 ‘운’으로만 일궈낸 것이 아니다. 마냥 해맑게만 보이는 장항준의 얼굴 뒤에는 치열한 노력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서울예대 연극과 시절, 장항준은 ‘바쁜 항준’이었다. 연극과임에도 불구하고, 장항준은 영화를 하고 싶어 시나리오 작법, 영화 연출, 제작 실습까지 듣느라 거의 매일 아침 9시에 학교에 가서 밤 10시 반이 되어야 수업을 마쳤다. 장항준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힘들게 합격했고, 신이 내게 2년의 기회를 줬는데,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내 인생에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장항준은 당시 어쩌다 시간이 나면, 학교 영상자료실, 학교 건너편의 영화진흥공사에 가서 영화를 봤다고 한다.

“거친 땅일수록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방송작가로 잘나가던 시절, 그는 돈이 되는 일을 접고 영화감독 데뷔작 집필에만 매달리는 ‘절필 선언’을 했다. 장항준은 “케이블TV라는 게 막 생겼을 때였다. 회의만 하고 가도 한 달에 얼마를 주겠다는 제안도 꽤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영화가 압도적으로 좋았다”며 방송작가가 아닌, 영화의 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 전했다. 그러면서도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저 멀리 푸른 벌판이 보이는데 그보다는 거친 땅일수록 석유가 나올 가성이 높다”고. 영화로 완전히 전향한 직후에는 수입이 ‘0원’이 됐다.

“사계절과 몬순, 아열대와 혹한, 남극과 적도에서도 달릴 수 있는 내구성이 필요하다”
데뷔작과 두 번째 장편을 연출한 이후, 장항준은 약 15년간 영화감독으로서 연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장항준은 〈기억의 밤〉(2017)을 내놓기 전까지 굉장한 슬럼프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편영화 연출 공백기 동안, 영화 〈끝까지 간다〉(2014) 각색과 드라마 〈싸인〉(2011) 집필 등, 영화 연출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다. 장항준 감독은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었던 방법으로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늘 영화만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드라마에도 도전해 보는 적응력이 필요한 것 같다. 어찌 보면 기후로 치자면 사계절과 몬순, 아열대와 혹한 그런 것들을 다 포괄하는 내구성이랄까. 성능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남극에서도 달릴 수 있고 적도에서도 달릴 수 있는 그런 쓰임새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 번 사는 100년 중 몇 년은 자기 의지대로 살아야 한다. 그게 수십억 정자들의 대표자로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들의 책무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장항준은 이렇게 말한다. “남의 일이라 쉽게 말하는 거지만, 나는 진정으로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정된 길이 어디 있나. 대기업 직원들도 언제 잘릴지 모르고, 부서가 없어지고 통폐합되고, 합병하면 정리해고당하는 이 세상에서, ‘이 길은 안정됐다’ ‘이 길은 행복한 길이다’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그러면서도 “어차피 지금은 정글이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100년을 사는 동안에 5년은 해봐야 한다. 5년이 지나도 열정이 남아 있다면, 5년을 더 하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고,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길을 선택하고 남의 의지대로 사는 게 습관이 돼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녹슨 기계가 될 것이다”
빙하기를 지나고 있는 영화계를 향해서도 당부했다. 장 감독은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것만 해도 위대한 업적이자, 영화인으로서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라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 녹슨 기계가 될 것이다. 우리 영화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하는 걸 보여주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장항준은 “우리는 안 가본 숲길을 가보고 싶다. 그래서 이 직업을 선택한 건데, 안전하고 확실한 곳이라면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샛길을 탐색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여기 멋진 나무가 있다!’ ‘여기 죽여주는 샘이 있다!’라고 말하는 게, 우리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하며 영화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돈과 명예는 다 수단이다. 내가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수단 때문에,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잊을 때가 많다”
장항준 감독은 왜 구김살이 없이 보일까. 아마도 그는, 인생의 부수적인 것과 궁극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기 때문일 터다. 장항준은 이렇게 말한다. “행복이란 게 진짜 중요하다. 돈과 명예는 수단일 뿐이고 내가 편하고 행복해야 내 가족과 친구들 모두 편하고 행복해진다”고. 그러면서 장항준은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아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순간에도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잊지 말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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