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찬받은 영화 '햄넷' 좋긴 한데… 이것만은 좀 걸리는 부분

〈햄넷〉 포스터
〈햄넷〉 포스터


클로이 자오의 영화 〈햄넷〉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영화의 예술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으로 상찬받았다. 특히 제시 버클리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면서 이러한 반응은 더욱 굳혀졌다. 난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그의 아내를 둘러싼 기존의 남성적 해석을 뒤엎고 그들의 관계를 새롭게 재해석한 원작의 주제 의식을 잘 끌고 온 점, 개인의 슬픔을 공동체의 슬픔으로 확장하며 지금의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풀어낸 치유서사로서의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이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 글에서 〈햄넷〉을 상찬하기만 할 수 없는 몇 가지 부분을 짚어 보았다.


도식화된 여성 아녜스

〈햄넷〉 스틸컷
〈햄넷〉 스틸컷


〈햄넷〉은 울창한 숲, 대자연의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 숲의 한가운데에서 여인 아녜스(제시 버클리)가 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서 있다. 이처럼 아녜스는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자연 친화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녜스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자연적 영성과 타인의 미래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같은 여성이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그녀의 모습은 이내 시대의 낡은 정신에 갇힌 사람들에 의해 ‘숲의 마녀’로 몰린다. 가이아와 마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아녜스의 양면성은 인물 설정에 풍부함을 더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같은 설정은 이미 여성을 다룬 작품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온 낡은 도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이에 더해 가정에 헌신적인 어머니상까지 포개지며, 아녜스의 캐릭터성은 더욱 납작해진다. 반복되는 아녜스의 출산 장면 또한 여성의 몸을 생명을 탄생하는 이상적·신화적 공간으로 재현하며, 고결한 이미지로 추앙한다. 그렇게 아녜스는 자연과 신비, 모성의 매개체라는 도상에 갇힌 채 도식화되었다.

시대의 한계를 그대로 투영한 닫힌 여성 서사

〈햄넷〉 스틸컷
〈햄넷〉 스틸컷


영화의 중반부 이후에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받아들이는 아녜스와 윌리엄(폴 메스칼)의 각기 다른 방식이 그려진다. 아녜스는 슬픔을 온몸으로 절규하고, 잃어버린 존재와 과거의 기억을 일상에 붙든다. 윌리엄은 가족과 오랜 시간 슬픔을 공유하지 않고 자기 작품을 위해 런던으로 돌아간다. 둘의 상반된 방식은 상실을 마주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보여주며 감정적 설득력을 지닌다. 동시에 이 과정은 여성의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이성을 잃는 과잉된 감정, 남성의 감정 억압과 도피라는 기존의 작품에서 반복되어 온 패턴을 그대로 가져가며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으로 이 중간 과정은 영화의 마지막 장으로 향하기 위한 표지판과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햄넷〉 스틸컷
〈햄넷〉 스틸컷

런던에서 홀로 슬픔을 감내하던 윌리엄은 자신의 상실감을 연극에 투영한다. 윌이 연극에 아들의 죽음을 다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녜스는 그의 연극을 보러 간다. 윌이 직접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아녜스와 관객이 그의 연극을 관람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정선의 절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동시에 이 장면은 이 이야기가 관객에게 최종적으로 건네고 싶은 말을 담고 있다. 클로이 자오는 예술이 슬픔과 상실을 온전히 치유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고 언어화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아녜스와 윌의 개인적 슬픔은 그들의 이야기가 극화되고, 극 중 인물에게 아녜스와 관객이 손을 뻗은 순간 공동체의 슬픔으로 확장된다. 애초에 〈햄넷〉은 당시 유행하는 전염병으로 COVID-19 팬데믹을 은유하며, 그들 개인의 슬픔을 공동체의 슬픔으로 그려낸다. 이처럼 〈햄넷〉은 인류가 겪은 상실에 형태를 부여하고 공적 영역 속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치유서사로 기능한다.

〈햄넷〉 스틸컷
〈햄넷〉 스틸컷

하지만 〈햄넷〉의 마지막 결말은 아녜스가 여전히 자신의 상실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윌리엄은 슬픔과 상실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지만, 여성 예술가는 사실상 전무하고, 활동에 제약이 있는 당대의 여성인 아녜스는 그저 슬픔을 가슴에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는 비극을 예술로 승화하며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지만, 아녜스는 집과 가족 안에 묶인 채, 자신의 상실을 구조적으로 전복할 수 있는 언어와 공간을 갖지 못했다. 시대의 패러다임과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없는 것은 시대의 한계가 작품에 투영된 한계이다. 그러나 〈햄넷〉의 결말은 아녜스의 내적 성장마저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며, 여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성장과 환경 변화의 가시적 성취를 모두 보여주지 못한다. 끝내 나는 슬픔을 그저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 하는 아녜스처럼 해소되지 못한 답답함을 품고 극장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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