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묵의 친구' 포스터 [안다미로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4-01/2bac7ff7-3aa7-432b-a1f6-b1f8242e1b8c.jpg)
헝가리 출신의 감독 일디코 에네디의 신작 〈침묵의 친구〉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 이후 양조위 배우가 중화권 바깥에서 작업한 두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신경과학자 토니(양조위)가 독일의 대학에서 격리된 채 일하는 와중에 학교 식물원의 커다란 은행나무에 이끌리는 2020년을 중심으로 1908년 교내 첫 여대생이 된 그레테(루나 베들러)와 1972년 사랑과 식물을 키워나가는 한스(엔조 브룸)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작품이다. 간단하게 전할 수 있는 건 인간 중심의 시놉시스지만, 〈침묵의 친구〉가 품은 야심은 보다 거대하다. 양조위 배우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일디코 에네디 감독을 만났다.

〈침묵의 친구〉는 고요하지만, 한편으론 평소엔 정물 같아 보이는 나무와 꽃처럼 고요한 외형 가운데서 쉴새없이 역동하는 에너지를 품은 영화입니다.
식물이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마치 정물 같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그건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허상이죠. 우리는 인간의 시간을 기준으로 다른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이라는 것도 실은 정확히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1초에 30 프레임을 본다, 1분에 심박수가 60번 뛴다, 같은 것도 특정한 사람의 신체적인 컨디션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이고, 절대적이라는 건 없거든요. 레아 세두가 연기한 과학자 알리스가 설명하는 미모사 푸디카가 바로 그 예시입니다. 미모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반응한다, 라고 우리가 말하지만 굉장히 인간 중심적이에요. 식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우연히 만나는 접점이 생겨 우리 눈에 보이게 된 것뿐인데, 그걸 인간에게 반응한다고 말하게 되는 거죠.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마저도 포유류와 식물의 정의가 다를 테고요. 물론 인간의 여러 가지 조건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침묵의 친구〉를 볼 때만큼은 관객분들이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면 합니다.
2018년 인터뷰를 보면, 나무가 주인공인 〈침묵의 친구〉라는 작품을 차기작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언급하셨어요. 이 시기는 아직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데, 〈침묵의 친구〉는 팬데믹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나요?
구조 자체는 변함이 없었어요. 2020년 에피소드가 독일에 온 교수가 고립된다는 설정은 이미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집필할 당시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는 부분이어서 접어뒀어요. 그러다가 팬데믹이 오고 일상이 무너지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루틴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되돌아보는 상황을 겪고 나니 그 대목이 떠오른 거예요. 구조는 그대로 가져가되 처음부터 아예 다시 썼어요.

1908년은 실제로 마르부르크 대학에 처음 여성 학생이 입학한 해고, 2020년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1972년 에피소드는 왜 그 시기로 설정된 건가요? 감독님이 얼추 대학생이 되던 시기와 닿아 있고, 다른 전공을 하던 학생이 이미지의 세계에 눈을 뜬다는 점도 감독님의 개인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각 시대의 차이점이 제대로 드러날 거라는 생각에 같은 정원, 같은 산책로, 같은 도서관 등 공간 자체는 제한을 뒀어요. 1908년, 1972년, 2020년을 선택한 건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그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함이었죠. 유럽에선 팬데믹 시기에 화분 식물의 소비가 폭증했대요.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달까요. 68 학생 운동 이후 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는 청년들이 우리가 세상에서의 위치를 재정의 할 것이고, 인간과 비인간 간의 관계도 재정립 할 거라고 결정했어요. 삶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달라지는 어마어마한 시기였습니다. 그때 아주 많은 실험이 있었죠. 특히 감각의 경험들. 그게 싸이키델릭을 사용해서든 그저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또는 여행 중에 많은 문화를 접하면서 어쩌면 동물이나 인간이 아니라 식물도 의식이 있지 않을까, 식물도 그들끼리 소통을 할지도 몰라, 그들만의 세상이 있을지도 몰라, 제안하며 본격적인 실험이 일어났습니다. 영화 속에 본 실험들이 실제 70년대 초반에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 '침묵의 친구' 속 장면 [안다미로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4-01/443ba24e-9f09-476c-bc39-b602ee98e57c.jpg)
시놉시스를 봤을 때는 언뜻 3개의 단편이 묶인 옴니버스 영화의 형식을 띌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2020년을 중심으로 두고 그 은행나무가 내려다본 과거의 두 이야기가 함께 교차되는 방식입니다. 이런 구조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대별로 이렇게 갔다가 저렇게 가야지 의도하며 구조를 짠 건 아닙니다. 다만 시대를 옮겨가야 하는 지점이 인간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졌습니다. 나무의 시간 감각을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편집했고, 그래서 아주 감각적이고 음악적이었죠. 대학 캠퍼스나 식물원처럼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공간에 공교롭게도 혼자가 되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시간이 열리면서 과거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경과학자 토니 역은 양조위 배우를 상정하고 쓰셨죠. 영화에서 유일하게 배우의 이름(Tony Leung)과 배역 명이 같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 같습니다. 양조위의 어떤 영화에서 그의 힘을 크게 느꼈나요?
연기력뿐만 아니라 존재감 자체가 다릅니다. 액션이나 대사 같은 장치 없는 단순함 속에서도 충분히 빛나는 배우입니다. 양조위 배우의 작품은 아트하우스 영화뿐만 아니라 액션물까지 모두 봤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셨기에 특정 영화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네요. 저는 다작하는 감독이 아닙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풀려도 3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역량 있는 배우와 일하는 것만큼이나 좋은 팀으로서 함께 하는 게 중요하죠. 인간 양조위가 이미 제 이야기의 핵심이나 철학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양조위 배우가 딱 맞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있었는데, 첫 번째 줌 미팅을 하면서 내 생각이 맞았다고 확인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영화 속 토니는 유독 ‘먹는 존재’로서 자주 비춰집니다. 물론 그가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혼자 있을 때의 다른 공기를 보여주기 위함이란 것도 알지만, 그게 하필 먹는 행위와 엮인다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양조위가 대만 감독 허우샤오셴과 작업한 영화 〈비정성시〉(1989)와 〈해상화〉(1998)가 모두 ‘밥상’을 중요하게 찍은 영화라는 점도 문득 떠올랐습니다.
의도를 갖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부분이라 기자님 의견에 굉장히 감사 드립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이방인이에요. 그레테는 남자만 가득한 학교에서 혼자 여자고, 하네스는 농장에서 대학으로 왔고, 토니는 저 먼 아시아에서 왔죠. 토니에게 이 독일 도시가 굉장히 이국적이라 음식을 통해서 고향을 느낄 겁니다. 저는 트란실바니아에서 영화 연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먼곳에서 온 친구들은 제대로 뭘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해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먹는 동안에는 본래 있던 곳에 다녀오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니, 먹는 신들을 넣은 게 어쩌면 제 본능인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학교 경비원이 처음에는 아주 멀게 느껴졌던 토니에게 무언가 요리를 해서 준다는 건 말이 없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문득 제 개인적인 경험도 떠올라요. 제 남편이 독일 사람인데, 네덜란드와 닿아 있는 아주 작은 농장에서 자랐어요. 연애할 때 미래의 시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아주 맛있지만 너무 더부룩한 농장 음식을 해주셨는데 제가 그걸 먹고 배탈이 났어요. 그런데 그분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니 그 음식마저도 좋아지더라고요. 그때 음식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침묵의 친구〉로 GV를 했는데, 독일인 관객분께서 음식 이야기를 하시며 독일 음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만천하에 공개돼서 너무 좋다면서 토니는 분명 독일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향수병에 걸린다고 말씀하셨어요.(웃음)
![영화 '침묵의 친구' 속 장면 [안다미로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4-01/0b74ab7f-81e1-4cfa-b4de-c9c246991576.jpg)
개인적으로 〈침묵의 친구〉는 루나 배들러라는 배우를 발견한 영화였습니다. 사진관 장면에서 빛과 이미지의 세계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얼굴의 위력이 실로 굉장했습니다. 전작 〈내 아내 이야기〉(2021)에 이어 〈침묵의 친구〉에서도 루나 배들러의 캐릭터에 그레테라는 같은 이름을 주신 것에서도 특별한 애정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내 아내 이야기〉를 작업할 때도 나이는 어렸지만 재능과 지성을 겸비한 탁월한 배우라고 감탄했습니다. 일부러 테이크를 많이 가서 배우를 피곤하게 만들어 자연스러움이 나오게끔 하는 감독들도 있는데, 저는 좀 반대예요. 프리 프로덕션을 많이 해서 실제로 촬영할 때는 준비된 상태에서 즉흥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게 끌어내는 타입이죠. 이번 영화도 보통 두세 테이크밖에 가지 않았어요. 베들러는 테이크마다 일관적으로 가는 게 있으면서도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생생한 반응을 전달하는 데에 탁월한 배우였어요. 아, 그레테는 아까 말한 제 시어머니 이름이에요!
〈침묵의 친구〉 속 세 개의 이야기 모두 섹슈얼한 텐션을 보여줍니다. 청춘을 그린 20세기의 두 이야기는 물론이고, 2020년 이야기 속 학교 경비원 안톤이 토니의 행동을 감시하는 시선에도 분명 관음적인 뉘앙스가 있죠. 심지어 레아 세두가 연기한 알리스보다 안톤과의 텐션이 훨씬 강력합니다. 그 관능을 만들어내는 감독님의 솜씨에 탄복하는 한편, 보다 인상적인 건 그 텐션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없애버리고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시선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가 일어나고 중간에 사라지곤 하죠. 시나리오 쓸 때도, 촬영을 할 때도, 편집할 때도 마찬가지로 관객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면서 그들을 가둬놓을 수 있는 게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서 특별한 무언가를 선사해야 하는 밸런스를 맞추는 게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인간은 스토리텔러예요.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관념적인 걸 이해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관객들을 끌어가기 위해서 인간의 이야기를 넣어야만 관념적인 나무의 영혼을 볼 수 있는 거죠. 〈침묵의 친구〉에서 제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식물의 관능성이에요. 식물도 에로틱 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충만하게 느끼고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관객분들이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실제 시나리오 초고엔 토니와 경비원 사이에 관능적인 신도 있었어요.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안 되기 때문에 들어내고, 토니와 경비원이 힘을 합쳐서 은행나무가 화분을 수정시키는 관능적인 환희를 도와주는 식으로 다시 썼습니다. 씨앗이 발화하는 첫 장면의 끈적끈적한 사운드도 식물의 섹슈얼한 힘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해서 디자인한 것입니다.
![영화 '침묵의 친구' 속 장면 [안다미로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4-01/dd2267c4-e953-41c8-a80e-515314e7fea8.jpg)
감독님의 데뷔작 〈나의 20세기〉(1989) 제목 때문인지, 영화 속 유일한 21세기인 2020년의 존재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영화 속에서 2020년은 팬데믹의 시기라면, 벌써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돌아보면 감독님에게 21세기는 어떤 시기인가요?
제가 젊었을 때 21세기를 생각하면 정말 먼 미래인 것만 같았어요. 천 년의 숫자가 바뀐다는 밀레니엄만의 압도적인 느낌, 그때는 정말 희망이 충만했습니다. 세계의 긴장감이 사라질 것만 같았고, 그럴 만한 근거도 있었죠. 그런데 그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 것 같아요.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70년대 학생들이 그랬듯 지금 학생들도 다시 세상을 변혁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어른들이 망쳐놨지만 젊은 세대들이 지혜롭게 싸움으로 가득 찬 세계를 헤쳐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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