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두어선 안 될 시간을 다시 꺼내들다, '내 이름은'과 같이 보면 좋을 영화들

영화 '내 이름은' 속 한 장면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
영화 '내 이름은' 속 한 장면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

덮어두려고 하지만, 그래선 안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꼭 다시 끄집어내 대중의 기억을 다시 환기하는 감독이 있다. 4월 15일 개봉하는 〈내 이름은〉의 정지영 감독이다. 정지영 감독은 그동안 빨치산(〈남부군〉), 베트남 참전용사의 PTSD(〈하얀 전쟁〉), 독재 정권 치하의 강압수사(〈남영동1985〉) 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감하게 여기는 지점을 과감하게 작품에 녹여냈다. 이번 작품 〈내 이름은〉 역시 엄마와 아들, 모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국 현대사에서 거듭 재발굴되고 재조명되고 있는 사건을 끄집어낸다. 〈내 이름은〉을 만나기 전후에 같이 보면 좋을 영화 3편을 함께 소개한다.


〈지슬〉

〈지슬〉
〈지슬〉

만약의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서두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 이름은〉이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제주 4.3 사건을 얘기할 때 이 작품이 빠질 수 없다. 오멸 감독의 〈지슬〉은 영화계에서 거의 외면하고 있는 이 사건을 다룬 것은 물론이고, 한국영화 최초로 해외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월드 시네마 극영화 경쟁 부문)을 받아 독립영화로선 상상도 못할 주목을 받았다.

〈지슬〉
〈지슬〉

제주도라는 지역성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해당 사건을 그린 것이 〈지슬〉의 핵심이다. 실제 제주도 출신인 오멸 감독은 제주도 방언을 쓸 수 있는 배우들을 기용해 당시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냈다. 감자를 이르는 제주 방언 ‘지슬’이란 낯선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만큼, 영화 전반에 제주도민으로서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단순한 사건의 묘사나 재현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영화의 엔딩도 인상적이다. 물론 일각에선 4.3 사건의 전후 맥락이 없어 오해할 요소가 많다는 반응도 보였지만 당시 현대사에서 거의 조명 받지 못한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부터가 영화의 힘을 보여준다.


〈한란〉

〈한란〉
〈한란〉

어떻게 보면 〈한란〉은 〈지슬〉과 〈내 이름은〉의 중간 지점에 있는 영화다. 〈지슬〉이 영화적 형식을 빌린 위령제로 당시의 넋을 달래고, 〈내 이름은〉이 모자의 이야기로 시대를 초월한 폭력을 현재에까지 확장한다면, 〈한란〉은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아진(김향기)과 딸 해생(김민채)이 제주 토벌 작전 한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 보낸 시간을 다룬 〈한란〉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시각도 담는다. 국군 토벌대에서도 고통스러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이상에 매몰된 채 같은 처지의 피난민까지 협박하는 산부대도 등장한다. 그렇게 〈한란〉은 편향성을 최대한 덜어내고 아무것도 모른 채 휘둘리고 말았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한란〉
〈한란〉

각본과 연출을 맡은 하명미 감독은 제주도 출신은 아니지만 10년 넘게 제주도에서 거주하면서 제주 4.3 사건을 영화화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었기에 당시 자료들을 뒤지고 뒤져 실제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카메라에 담고 기록에 남은 언어를 대사에 넣기도 했다. 옛 제주 방언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언어 고문만 10명을 기용했다. 그 결과 시사회에 참석한 제주도민들조차 ‘완벽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작은 연못〉

〈작은 연못〉
〈작은 연못〉

〈작은 연못〉은 제주 4.3 사건을 다루진 않지만,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이란 전쟁의 폭력을 다룬다는 점에서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있었던 ‘노근리 사건’을 영화로 옮겼다. 〈작은 연못〉 제작 당시 가장 화제를 모은 건 연극연출가 이상우가 영화 연출에 도전한다는 점, 그리고 그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수많은 연극배우와 연극무대 출신 배우들이 단 몇 초를 위해서라도 촬영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정작 영화는 이 주민들과 얼굴을 맞댔던 미군 병사들은 명령에 복종한 것뿐이란 관점을 유지했으나) 애당초 맹우 미군이 벌인 사건이기에 재정적 지원이나 투자를 받기 어려웠던 영화는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공개될 수 있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를 지향한 작품인 만큼, 일상적인 풍경을 지나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비극의 충격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계절감은, 다른 외국 영화와는 다른 우리나라 우리시대의 이야기란 점을 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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