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듣는 노래인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고. 처음 보는 무대인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 6월 3일 개봉한 〈와일드 씽〉을 본 관객이라면 아마도 느꼈을 것이다. 20년 전 예상치 못한 사고로 헤어진 그룹 ‘트라이앵글’이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와일드 씽〉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 가요 시장의 감성을 고스란히 재현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단순히 형식만 빌런 것이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 또한 보고 나면 추억의 가수, 추억의 명곡을 떠올리게 하는 〈와일드 씽〉. 〈와일드 씽〉을 보며 씨네플레이 기자들은 어떤 가수와 곡을 떠올렸는지 각자의 추억 여행을 글로 옮겼다. 독자들 또한 영화를 보며 떠오른 것이 있다면 댓글로 함께 공유해주길 바란다.
주성철 - 영턱스클럽의 ‘정’
“다른 여자 생긴 거라면, 혼자 있고 싶어서라면,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 거야, 우리 사랑을 위해...” 〈와일드 씽〉을 보며 떠오른 그때 그 시절 노래는 영턱스클럽의 ‘정’이다. 최승민(랩), 박성현(보컬), 한현남(보컬, 랩), 송진아(보컬, 랩), 임성은(보컬)으로 이뤄진 혼성 그룹 영턱스클럽은 ‘젊은 개구쟁이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출신인 이주노가 프로듀싱하며 1996년 7월 9일 1집 앨범 ‘정’으로 데뷔했다. 모두 이주노가 발굴한 비보이, 비걸 출신으로 이른바 브레이크 댄스 ‘나이기 춤’을 구사하는 등 군무와 무대 장악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정’은 트로트식 멜로디를 결합해 따라 부르기 좋은 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H.O.T.의 ‘전사의 후예’를 누르고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디즈니+ 시리즈 〈파인〉 등 영화와 시리즈 음악감독으로도 맹활약하고 있는 히트곡 제조기 윤일상 작곡가의 곡이다.

세월이 흘러 임성은이 한 다큐 방송에 출연해 ‘소속사 실장이 정산을 제대로 안 해준 것에 항의하다가 탈퇴를 요구받았다’고 밝혔는데, 결국 반강제 탈퇴 후 솔로 1집만 내고 소속사를 옮겼다. 그런데 탈퇴 이후에도 2집에 참여해 가사를 쓰고 노래도 불렀으며, 피처링을 해주는 것은 물론 연말 특집 방송에 영턱스클럽 이름으로 무대를 함께하는 등 전 멤버들과 사이가 좋은 것 같아 의아하기도 했다. 다시 세월이 흘러 2018년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2〉에 출연한 임성은 ‘본인은 정산을 다 받았으나 다른 멤버들이 정산을 잘 받지 못해서, 맏언니인 자신이 직접 멤버들과 소속사 사이의 정산 문제를 해결해 보려다가 돈을 밝힌다는 악성 루머가 생겨서 자진 하차를 하게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모든 사연이 ‘와일드 씽스러워’ 영턱스클럽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덕분에 떠올랐다고 하는 게 맞겠다. 문득 황동만(구교환)의 과거가 보고 싶어 OTT에서 이옥섭 감독, 김꽃비, 구교환 주연의 단편 〈4학년 보경이〉(2014)를 오랜만에 다시 감상하게 된 것. 동양화과 졸업반 보경(김꽃비)은 덕우(구교환)와 4년째 연애 중이나 백선배(백수장)가 좋다. 선배의 집에 다녀온 보경은 연일 덕우를 시켜 버려진 소파와 중고 선풍기를 작업실로 들여놓는다. 그렇게 보경과 덕우는 이별 직전에 다다르게 되는데, 우연히 창밖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춤 연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게 된다. 그때 길게 흐르는 노래가 바로 영턱스클럽의 ‘정’이다. 아직 헤어질 결심을 머뭇거리는 두 연인의 내면이 그렇게 들려온다. “정말 나를 사랑했다고, 나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하늘처럼 믿었었는데, 이제 와 헤어지자니, 남은 사랑 어떡하라고, 추억들은 어떡하라고, 보고 싶어 눈물이 나면, 정말 나 어떻게 해, 아니 이건 꿈일 거야, 믿을 수 없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이럴 순 없어~”
김지연 - 거북이의 ‘비행기’
사람은 10대 때 들은 노래를 평생 흥얼거린다고 했다. 그 관점으로 보자면 나의 시절은 소위 ‘혼성그룹 잔혹사’가 펼쳐진 시기였다. 지금이야 ‘올데이 프로젝트’가 잘나가고 있지만, 나의 시절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혼성그룹은 ‘트러블메이커’(현아&장현승) 정도가 전부였다. 소위 ‘케이팝 덕후’ 사이에서나 알려진 ‘남녀공학’(가수 최예나의 친오빠인 ‘알찬성민’이 속한 그룹), ‘트리플 H’(현아와 던, 후이가 속한 그룹), ‘네스티네스티’(나인뮤지스의 경리와 소진, 그리고 제국의아이들 케빈이 속한 그룹) 등은 멤버 간의 교제, 심지어는 범죄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이유로 인해 해체를 맞았더랬다.

생각해 보면 〈와일드 씽〉의 ‘트라이앵글’ 역시 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체를 맞았으니, ‘혼성그룹 잔혹사’의 길을 걸었다고나 말해야 할까. 〈와일드 씽〉은 정확한 시간적 배경을 설정하고 있지 않지만, 영화 속 ‘트라이앵글’과 ‘최성곤’이 왕성히 활동했던 시기는 대략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와일드 씽〉의 ‘트라이앵글’을 보며, 소위 〈무한도전〉의 ‘토토가’, 그리고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등으로부터 촉발된 복고 붐, 그리고 90년대 가수들을 재소환하는 프로그램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와일드 씽〉도 그런 복고의 향수에 기대는 영화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와일드 씽〉은 복고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선사하는 ‘쉬운 길’ 대신, 예측 불가능한 로드무비와 소동극으로, 게으르지 않은 ‘야생의 길’을 택했다.
〈와일드 씽〉의 영화적 리듬과 정서를 딱 그 시절의 한 곡으로만 압축해보자면, 거북이의 ‘비행기’가 적합하지 않을까. “파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겠죠. 어려서 꿈꾸었던 비행기 타고”라는 가사와 멜로디가 참 잘 어울리는 〈와일드 씽〉은 철없을 적 내 기억 속에 비행기, 아니 지프차를 타고 가는 영화다. 과거의 영광을 다시 소환하기 위해 모인 ‘트라이앵글’ 멤버들은 “어려서 꿈꿔왔던 비행기”와 같은 존재인 ‘무대’를 위해 질주한다. 그들은 “모든 준비 다 끝났어 곱게 차려 입고 나선 바깥 풍경마저 들뜬 기분 때가 왔어 하늘 위로 나는 순간이야 조금은 두려워도 애써 내색할 순 없어 이번이 처음이지만 전에 자주 비행했었잖아”라던 ‘비행기’의 가사처럼, 설렘과 긴장감을 지닌 채로 공연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가는 길은 참으로 와일드하다. 어쩌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차는 고물이 되고, 재기를 꿈꾸던 멤버들은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사실 거북이 ‘비행기’ 가사는 곱씹을수록 슬프다. “수많은 사람들 속을 지나쳐 마지막 게이트야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 하고 있어 이럴 땐 침착해 좀 자연스럽게”라는 대목처럼, 화자는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꿈의 마지막 관문 앞에서 멈칫한다. 그러나 ‘비행기’에 담긴 웃음으로 눈물 닦기와 같은 한국인의 정서가 케이팝의 근간을 이루는 ‘아련 청량’ 아니겠는가. 〈와일드 씽〉 역시, 웃기는데 슬프고, 신나는데 어딘가 서글픈, ‘아련 청량’한 케이팝의 정서를 진하게 풍기고 있다.
성찬얼 - UP의 ‘바다’
처음 ‘트라이앵글’을 봤을 때 내가 떠올린 그룹은 H.O.T.였다. 어쩌다 이렇게 풋풋한 혼성 그룹을 보고 남성 그룹을 떠올렸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원류를 되짚어본다면 현우(강동원)의 헤어스타일 때문이었으리라. 앞머리를 잔뜩 늘려놓은 것 같은 헤어스타일이나 반다나를 머리에 매어 장발을 가리는 스타일은 내게 곧 H.O.T.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뽑는다면 내 인생 최초의 아이돌이 H.O.T.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 기억 저편엔 H.O.T. 이전에 활동한 쟁쟁한 가수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돌 그룹이란 점에서, 그리고 내가 실제로 노래가 아닌 멤버 하나하나를 기억한 최초의 가수라는 점에서 H.O.T.를 조건반사처럼 떠올리게 된 거다. ‘트라이앵글’이 두 번째로 선보인 콘셉트 역시 H.O.T.가 2집 앨범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스타일을 떠올리게 했고.

그러다가 과연 혼성 그룹은 누가 있을까 했는데, 두 팀이 떠올랐다. 하나는 진정한 의미로 ‘국민 가수’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쿨(COOL)인데 이쪽이야 지금도 그 명곡 하나하나가 여름이면 한 번씩 들려오니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이어서 떠오른 그룹이 바로 유피(UP)였다. 이걸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 업인지 뭔지 헷갈렸던 시기에 이들이 발표한 ‘뿌요뿌요’와 ‘바다’는 90년대 등장한 신선한 사운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얼핏 듣기엔 여러 효과음을 혼합시킨 듯한 비트 위로 각 멤버들의 특색 있는 음색과 서사와 유머를 동시에 담아낸 가사는 여름에 필요한 상쾌함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리드미컬한 노래에 비해 꽤 단순해서 누구든 따라 할 수 있을 법한 포인트 안무는 레크레이션을 하기에도 충분해서 그 생명력이 오래 지속됐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난 김에 오랜만에 듣고 있자니 그동안 잊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로 몸이 둠칫둠칫하고 만다. 〈와일드 씽〉의 기운을 받아 한 번쯤 전설의 혼성그룹 갈라쇼라도 열렸으면, 그런 작은 바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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