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0년 만의 흥행 신화, 다시 오리라 믿었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야스다 준이치 감독 ①

300만엔(2천8백50만원)의 제작비로 무려 30억엔(284억원)의 흥행 수익을 거두며 일본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

야스다 준이치 감독 (사진=이화정)
야스다 준이치 감독 (사진=이화정)

다시 봐도 놀랍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 흥행 사례 말이다. 300만엔(2천8백50만원)의 적은 제작비, 워크숍 작품으로 만들어 2개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이 영화는, 무려 30억엔(284억원)의 흥행 수익을 거두며 일본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본인도 ‘카멈’의 후속작들로 전작의 기록을 깨진 못했다. 그만큼 넘사벽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기록은 깨지라고 존재하는 지 모른다. 카멈의 신화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나, 교토의 시대극 촬영소에서 실현됐다. 야스다 준이치 감독이 연출한 타임슬립물 〈사무라이 타임슬리퍼〉(2025)는 2,600만엔(2억 5천만원) 제작비 10억엔(90억원) 기록적 수익을 올리며 일본 자주영화(독립영화)의 힘을 또 한번 입증했다. 도쿄 이케부쿠로의 한 상영관에서 상영한 영화는 관객들의 SNS와 블로그의 호평과 함께 38개 관으로 확장 상영됐다. 영화팬들에게 이 작품은 ‘카멈의 재림’으로 불린다. 수익 규모는 카멈의 ⅓ 정도지만 영화의 제작방식, 흥행 패턴은 카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작년 말, 일본 아카데미에서 〈사무라이 타임슬리퍼〉는 〈정체〉 〈라스트 마일〉 〈킹덤 4〉같은 규모가 큰 화제작들을 제치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조명상, 편집상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말그대로 ‘싹쓰리’ 수상이었다. 총 10명의 스탭. 현장 차량 운전까지 1인 다역의 역을 한 ‘야스다 준이치’ 감독의 이름은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무려 13번 등장한다. 제작비가 모자라 아끼던 자동차를 팔아 완성한 말그대로 가장 진짜의 자주영화 정신에 부합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사례를 벤치마킹 했다는 그는 “한 번 일어난 기적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관객에게 면밀히 다가갔다고 말한다.

에도시대 거리에서 현대, 시대극 촬영장으로 ‘착륙’한 사무라이 코사카(야마구치 마키아베). 현대로 온 그는 ‘화려하게 베어 죽는 역할’을 전문으로 하는 보조출연자가 되어, 그들의 고충을 경험한다. ‘진짜’ 사무라이가 ‘가짜’ 사무라이를 연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좌충우돌 웃음 한가운데 평범한 사람들을 주목하는 휴머니즘 가득한 시선. 교토에서 농사를 지으며 영화를 만드는 야스다 감독은 농부로 지내 온 자신의 선조들을 보며, 역사의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힘에 주목했다.

영화의 한국 개봉에 앞서 야스다 준이치 감독이 짧은 일정으로 서울을 찾았다. 현재 〈사무라이 타임슬리퍼〉의 후속작으로 6부작 스핀오프 시리즈를 만든다는 그에게 자주영화를 만들어 온 긴 시간, 영화를 향한 그의 열정을 기록했다.


1박 2일 바쁜 일정으로 한국에 방문하셨는데요. 요즘 농사일로 바쁘시다고 들었거든요.

네, 제가 교토에서 벼농사를 해서요. 물론 농업에 바쁜 것도 맞습니다만, 사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에 나오는 ‘걱정 없는 방랑객’ 으로 스핀오프 드라마를 찍고 있거든요. 한창 촬영을 하고 지금은 편집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한국 관객과 만나셨는데요.

긴장이 되더라고요. 일본의 사무라이에 대해서 한국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 지. 기존에 생각하는 사무라이가 항상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영화에서는 그런 무사 사무라이와는 좀 다른 평범하고 좋은 사무라이를 그려서요. 혹시 거부감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다행히 관객들이 재밌게 봐주셔서 안심이 됐어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약 2,600만엔(한화 약 2억 5천만원) 제작비로 10억엔(약 90억원)의 수익을 올렸는데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의 재림 이라 불릴 정도로 기록적인 성과입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는 일본 영화 역사에서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적인데요. 자주영화로 30억엔의 수익을 얻는 걸 목격하고 ‘나도 영화를 다르게 만들어야겠다’ ‘조금 더 재밌어야겠구나’ 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 일어난 기적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프로모션 방법을 연구했어요. 수익 규모는 ‘카멈’의 ⅓ 이지만 수상기록을 볼때는 자주영화로 일부 더 높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경쟁 의식도 조금 보이는데요. (웃음) 두 작품의 성공사례가 워낙 고무적입니다. 일본에서는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과 대담을 했는데 거의 5시간을 대화하셨다고 들었어요.

경쟁의식은 없어요. (웃음) 정말 리스펙합니다. 사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던 성과거든요. 우에다 감독님을 만났을 때 ‘제가 감독님을 따라 해서 기적을 다시 한 번 재현했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자신있게 말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감독님께서 “저 역시 굉장히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고 행운이 따라준 결과였어요. 그게 없이는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가 없죠.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요. 그러니 앞으로 당당하게 말씀해 주세요.”라고 해주셨어요. 그 말이 정말 기뻤어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말그대로 인디 방식의 자주영화 제작 방식으로 제작비를 충당하셨는데요. 자동차 까지 팔아 후반작업을 한 일화로 화제가 됐는데요.

지금은 제가 팔았던 자동차와 똑같은 자동차를 샀어요. 그런데 살 때보다 3배 비싸게 샀어요.

3배가 올랐다니 차종을 여쭤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클래식 카를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 짐작이 가는데요. (웃음)

혼다NX 라는 스포츠카 인데요. 농사를 지을 때는 경트럭과 봉고차를 쓰는데 혼다는 오로지 저의 취미를 위해서 산 차였어요. 차를 타고 산길을 달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1992년에 이 차를 살 당시 중고로 300만엔에 샀는데요, 개조도 하고 애지중지 관리를 해왔던 차예요. 560만 엔에 팔았는데, 지금은 인기가 많아져 1500만 엔이 됐어요. 매뉴얼은 너무 비싸져서 다시 살때는 오토매틱으로 샀습니다. 영화 엔딩크레딧 보시면 제 이름이 12번 정도 나와요. 제가 차량 운전까지 다했거든요. 영화 끝날 때쯤 제 은행계좌를 보니 잔고가 6천500엔 정도 있더라고요. 좀 위험했죠. (웃음) 큰 수익을 얻어서 앞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겠구나 안심이 됩니다. 비록 세금을 60% 정도 냈지만, 기꺼이 냈고요. 이 차만큼은, 내가 나한테 선물하는 하나로 정했습니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코로나로 원래 준비하던 현대 배경의 작품을 접고 이 작품을 만드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사무라이와 시대극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부터 왔나요.

일본 감독들은 언젠가 한 번은 시대극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예산이 현대물의 3배~5배 정도니 선뜻 엄두를 못냈는데, 코로나로 한가해진 교토 촬영소분들이 정말 많이 협력을 해주셔서 가능했어요. ‘찬바라(전통 시대극)’ 영화가 최근 들어서는 굉장히 만화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는데 저는 어릴때 봐왔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님의 작품 같은 정통 시대극,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는 시대극을 만들고 싶은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시대극의 전성기에 작품을 본 시청자이자, 관객이기도 한데요. 감독님이 보는 시대극의 매력이 무엇이었나요.

제가 어릴때는 텔레비전을 보면 거의 매일 시대극이 했어요. 사무라이도 주요 등장인물인데 ‘무사’의 모습 뿐만 아니라, 생선 장사, 농부 같은 서민들이 등장했어요. 야마다 요지 감독의 작품 등을 보면 1엔의 이익도 없어도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 그려졌는데요.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라인이 있지만, 이런 따뜻한 세계관을 공존하는 게 시대극의 매력이라고 생각했고 제 영화도 그 마음을 담은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사무라이 타임슬리퍼〉는 사카모토 료마 같은 잘 알려진 무사, 영웅이 아닌 무명의 무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요. 엔딩에 쓴 ‘세이조 후쿠모토를 기리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후쿠모토 세이조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알그랜 대위의 호위 역으로 알려진 배우로, 일본 사무라이 시대극에서 칼로 베어 죽는 역할을 오래 하며 시대극에서 ‘칼로 베어 죽는 역할’을 뜻하는 ‘키라레야쿠 (斬られ役)’ 라는 개념을 서구권에 알린 배우다.)

역사상 유명한 사무라이들이 굉장히 많지만 그들을 주인공으로 해버리게 되면 관객에게는 너무 먼 사람으로 느껴질 것 같았어요. 무명의 인물을 주목하자. 주인공 코사카 신자이몬 캐릭터에 제가 그리고 싶었던 사무라이 상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는 무사 계급들이 만들어 왔다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고향을 지킨 거는 이런 농부들, 백성이라고 생각했어요. 할아버지 때부터 저희 집이 쌀 농사를 짓고 있고 아버지께서는 공무원으로 일을 하셨거든요. 그분들께 선조들의 96%가 그런 분들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나머지 4%가 사무라이, 성공한 무사였는데요. 일본에서 좀 미화 되었지만 할복 문화 같은 사무라이의 안 좋은 측면도 있었죠. 영화 속에서 코사카 신자이몬 같은 경우는 타임 슬립을 하면서 그러한 사무라이의 나쁜 측면들과는 전혀 떨어진 정말 좋은 면만 남은 사무라이가 됩니다.

타임슬립물 장치를 활용한 이유는 어떤 것이었나요.

타임 슬립하는 사극은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많이 만들어지는 인기 장르인데요. 이렇게 촬영장에 떨어진다라는 설정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직관적으로 재밌겠다, 코미디 요소가 강해지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바로 주인공의 목적인데요. 보통 타임슬립물에서는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는 게 목표라면, 저는 이 인물이 현대에 와서,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 다시 인생을 되찾고 살아갈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농부 감독 야스다 준이치와의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영화인

[인터뷰] “100년 만의 흥행 신화, 다시 오리라 믿었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야스다 준이치 감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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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1.

[인터뷰] “100년 만의 흥행 신화, 다시 오리라 믿었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야스다 준이치 감독 ②

에도 시대 말과 현대 시대극 촬영 현장이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전자는 메이지 유신을 앞두고 막부가 쇠퇴하던 시대이자, 후자는 70-80년대 시대극 전성기를 지나 제작이 어려워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 두 시기를 겹쳐놓았다는 게 흥미로왔는데요. ​이 영화의 ‘현재’는 2007년 설정인데요. 지금은 시대극이 거의 사라졌고 당시 이미 TV 시대극이 사극이 도태되고 한 두편 제작되고 있었던 때죠. TV에서도 ‘이제 시대극은 사라질 것이다. ’ 이런 이야기들을 했고요. 농부로서 볼때 농사도 정부 정책 등의 변화로 어려운 시기였어요. 사람들이 우리 ‘이러다 우리 모두 빵만 먹게될거야’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영화도 마찬가지죠. 디지털 전환이 되고 OTT 시대가 오면서 사라질 것들이 눈에 보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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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놀랍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2017) 흥행 사례 말이다. 300만엔(2천8백50만원)의 적은 제작비, 워크숍 작품으로 만들어 2개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이 영화는, 무려 30억엔(284억원)의 흥행 수익을 거두며 일본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본인도 ‘카멈’의 후속작들로 전작의 기록을 깨진 못했다. 그만큼 넘사벽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기록은 깨지라고 존재하는 지 모른다. 카멈의 신화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나, 교토의 시대극 촬영소에서 실현됐다. 야스다 준이치 감독이 연출한 타임슬립물 〈사무라이 타임슬리퍼〉(2025)는 2,600만엔(2억 5천만원) 제작비 10억엔(90억원) 기록적 수익을 올리며 일본 자주영화 의 힘을 또 한번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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