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의 여자 아이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그러고보니 이젠 벌써 어른이 되었겠지. 어디선가 분명 잘 살고 있기를. 그럼에도 여전히 길고양이를 돌보던 몽상가 태희(배두나)의 후예들은 반갑고 예쁘게도 어디선가 새롭게 태어나고 자라고 있다. 유재욱 감독의 〈산양들〉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여자 아이들의 마음과 고민과 길을 떠난 〈스탠 바이 미〉의 소년들의 모험담이 만난 것 같은 토종 성장영화다.

수능 200일을 앞둔 네 명의 소녀. 인혜(박혜진), 서희(이승연), 정애(박효은), 수민(최수인)은 대학입시 까지 한시적으로 마련된 면접반 학생이다. 수험 준비 만으로 바빠야 할때, 학교 사육장의 소동물들이 살처분된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동요한다. 〈산양들〉은 측은지심이 특히 강한 인혜의 주도로, 나머지 아이들이 하나 둘 모험에 동참하면서 벌어지는 소동물 구출 대작전이다. 교실을 나온 아이들은 근처 캠핑장에 동물들의 보호소 ‘쉘터’를 마련한다. ‘서식지를 잃은 산양들’이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비공식 구조 클립의 이름을 ‘산양즈’로 명명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고양이가 아닌, 산양즈의 보호대상은 오리 같은 가금류다. 아직은 혼란기, 자신의 진로를 확립하기 만도 바쁜 아이들이, 자신보다 약한 동물들을 구한다는 계획은 다소 엉뚱하다. 하지만 약한 동물들은 입시지옥에 ‘갇힌’ 아이들 눈에만 보이는 스스로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

〈산양들〉은 사회가 무용하다고 여기는 것에 선뜻 뛰어드는 사람들의 영화다. 앞뒤 재지 않는 무모한 도전, 삐걱거리는 모험담은 여기서 만큼은 가치를 찾게 된다. 명랑하고 웃기고 밝다. 심각하거나 무거운 주제에 직면한 이들이 지배하는 한국독립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빛깔의 에너지다. 전작 〈라임 크라임〉(2021)으로 힙합을 하는 소년들의 도전을 그렸던 유재욱 감독의 작품. 전작이 공동연출이었다면 이번엔 혼자, 또 한번 성장영화에 도전했다. 유재욱 감독과 함께 ‘산양즈’의 리더 인혜 역을 연기한 박혜진 배우를 만났다 .〈태어나길 잘했어〉 〈경아의 딸〉등 독립영화를 통해 눈에 익은 배우로, 영화의 모험과 서사가 이 배우의 매력과 촘촘하게 엮여 돌아간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화제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 수상작이다.

소녀들의 〈스탠 바이 미〉 같은 성장 모험담인데요. 이야기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유재욱 감독 어릴때 부터 친구들이랑 자연이 있는 곳에서 뭔가 하고 싶었어요. 어른 없이 독립하고 싶다, 〈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것처럼요. 어릴 때는 학교에서 다 공부만 하라고 하고 정작 하고 싶은 건 못하잖아요. 전작 〈라임 크라임〉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박혜진 생각해 보면 저도 고3 때는 친구들이랑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었어요. 영화에 저 같은 시기를 보낸 십대들의 마음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교실을 나와 캠핑장에 아지트를 만든 십대 소녀들의 설정이 독특한데요.
유재욱 감독 제 아내가 같이 시나리오를 썼는데 아내가 당시에 생존주의에 꽤 푹 빠져 있었어요. 나이프 칼, 나침반도 갖고 다니더라고요. 그 세계가 되게 넓어요. 아내를 보면서 어떤 여자가 자연에서 생존주의를 꿈꿔본다면, 거기에는 무슨 얘기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으로 접근을 해 봤어요.

수능을 불과 200일 앞두고 대학입시를 위한 특별관리반 학생들이 모험의 주인공인데요. 실제 학교에서 이렇게 특별관리반 같은 것이 운용되나요.
유재욱 감독 제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때 면접반을 꾸려서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학교에서는 어떻게든 대학을 가게 해야 되는 미션이 있어요. 좋은 의미로는 학생들을 포기를 하지 않은 거고 좀 나쁘게 봤을 때는 어떤 식으로든 대학으로 밀어 넣는 거죠. 학생이 가고 싶은 학과 보다는 면접으로 어떻게든 가게 하는 거죠.
성장영화에서 주를 이뤘던 소년이 아닌, 모험의 주체가 ‘소녀들’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유재욱 감독 전작 〈라임 크라임〉으로 소년물을 해봐서 소녀들로 가보자는 마음이 컸고요. 그땐 자전적인 이야기였고 이번에는 타인의 이야기라는 점도 작용했어요. 다양한 소녀들에게 제 아내의 이야기, 또 모르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들어갔어요. 십대 소녀들에 대해서 시나리오 쓰면서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는 것도 저한테는 흥미롭더라고요.

성장물은 워낙 계보도가 많은데요. 방향성을 잡으며 참고했던 작품이나 좋아했던 작품이 있다면요.
유재욱 감독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2004)나 〈스탠 바이 미〉(1986)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레이디 버드〉(2017)나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2011)도 많이 보고 좋아하는 영화고요. 이 작품들 공통점이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엉뚱함인 것 같아요. 압박 속에서도 이 아이들은 뭐든지 또 자기네 방식대로 돌파하고 그걸 끌어 나가거든요. 그런 모습이 유쾌하게 표현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박혜진 영화제 상영 후 댓글을 봤는데 “맨날 어둡거나 사람 죽이는 그런 작품들 그만 나오고 이렇게 조금 푸릇푸릇하고 이 소녀들 이야기를 좀 많이 보여줘라.” 이런 댓글이 있더라고요. 우리 영화가 가진 에너지를 알아봐 주셨구나 싶어서 마음에 와닿았어요.
유재욱 감독 좀 밝은 영화를 하고 싶었었어요. 물론 무거운 주제 의식 같은 것들은 존재하죠. 그런데 저는 비극적인 걸 희극적으로 표현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농담도 좋아하고요. 그래야 사는 데 에너지를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한국 독립영화 같은 큰 개념으로 확장해서 생각한 건 아니고, 좀 다양한 영화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저도 그런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어요. 앞으로도 좀 어두워도 밝은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박혜진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역할들을 보면, 우울한 역할이 많았어요. 부모님 없고 할머니 돌아가시고 혼자 살고 이런 외톨이 같은 역할이요. 그런 역할도 흥미롭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던 차에 〈사냥들〉 대본을 받게 됐어요. 너무 좋은 기회였죠. 또 제 또래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했다는 것도 너무 큰 추억이라 두고두고 이 영화가 그리울 것 같아요. 촬영 때 21살이었는데요. 이런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 시기는 한정적이잖아요.

살처분 되는 동물들을 구하는 게 영화의 큰 플롯입니다. 입시 외에 다른 걸 신경 쓰면 안된다는 압박에도 환경과 동물권을 우선시 하는 마음을 조명했는데요.
유재욱 감독 제가 어렸을 때 그 시골에 살았거든요. 그래서 집에 닭이랑 소 같은 동물이 많았어요. 그 이미지가 저한테는 굉장히 자유로움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을 ‘닭장에 있다’ 이런 비유를 하잖아요. 비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 닭장이 나오면 좋겠다 했어요. 어릴때는 학교에 있던 사육장을 떠올렸고, 동물을 구출을 하거나 보호하는 이야기를 구상했어요.
워낙 엉뚱하고 무모한 행동이기도 한데요. 시나리오 개발 과정에서는 우려나 지적도 없지 않았을 것 같아요.
유재욱 감독 쓴소리가 많았어요. 동물을 케어하는 게 힘들다, 예산도 이 정도로 가능하지 않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조류독감 같은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도덕적인 행동인가에 대한 지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닭이나 오리들도 다 생명체잖아요. 아무리 식용으로 길러진다고 하더라도 생명이죠. 사실 살처분 과정을 보면 무차별 무분별적이거든요.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비용이 적게 들고 편리하다 생각도 깔려 있다고 생각해요. 백신을 놓으면 또 그걸 찝집하다 생각하는 거죠. 아 그리고, 수능이 코앞인데 딴짓 하는게 이해 안된다는 말도 많았어요. 사실 고3 이라고 백이면 백 다 수능을 준비하는 건 아니거든요.
▶ 〈산양들〉 유재욱 감독, 박혜진 배우와의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