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혜는 수능을 앞두고도 가금류를 돌보는데 진심을 쏟아 붓는 아이에요.
박혜진 사실 저도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인혜의 행동이 너무 공감이 됐어요. (웃음) 솔직히 수능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공부만 하겠어요. 공부 말고도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아이들도 있는 거고요. 인혜를 봤을 때는 친근감이 많이 들었어요.
유재욱 감독 인혜는 사실 제 모습을 좀 많이 담았는데요. 제가 좀 사람들 잘 따라다니고 누가 부탁하면 잘 하는 편이거든요. 영화 속 서희같은 멋있는 캐릭터를 보면 따라다니면서 같이 해보고 그런 모습도 저랑 비슷해요. 인혜가 사육장을 돌보는 것도, 처음 어쩌다 하게 되고서는 그냥 불만 없이 쭉 하는 것 같고요. 어리숙 하기도 한데 또 자기가 원하는 게 있을 때 는 되게 고집스럽게 나아가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후반부 남자친구한테 하는 행동도 엉뚱한데, 평소 제가 하고 싶었던 걸 인혜가 하게끔 했어요.
박혜진 인혜가 저랑도 많이 비슷한데요. (웃음) 배급사 시네마달에서 예고편 올린 걸 보고, 제 아는 선배님이 연락이 왔어요. ‘그냥 인혜가 너 아니야!’ 하더라고요. 말투나 행동,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실제 제 모습과 많이 비슷해서 더 친근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분석해서 나왔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표현 했어요. 제가 워낙 말도 느리게 하고, 혼잣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런 것도 비슷했어요.
유재욱 감독 오디션 때 첫 장면의 동물이랑 이야기하는 장면을 리딩을 했는데 그걸 보고 다 뒤로 넘어졌어요. 너무 웃겨서요. 마치 동물 한 마리가 더 있는 느낌이더라고요. 너드 하다고 하죠. 그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 거예요. 혜진 배우는 자기가 너드한 거를 몰라요. 시나리오 쓸때 머릿속에 있던 딱 그 모습을 만난 것 같았어요.

이 공감을 바탕으로, 두 분의 성장기도 마찬가지로 연결지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박혜진 전 연기를 9살 때부터 시작했는데, 물론 그 사이사이에 연기가 싫을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단편영화 〈컨테이너〉(2018)를 찍고 나서 변화가 왔어요. 그 작품으로 영화제도 많이 다니면서 연기에 흥미가 생겼고 입시에 뛰어들었어요. 감독님과 동국대 선후배 사이인데요. 학교 들어가기 까지 입시를 여러 번 봤는데 준비 하면서 제 진로에 대한 갈피를 잡아 간것 같아요. 이제 이 일이 저한테 없어서는 안될 것 같아졌어요.
유재욱 감독 전 처음에 저는 영화가 막 하고 싶은지도 몰랐어요. 고2때 쯤 〈라임 크라임〉을 같이 만든 친구 (이)승환이 영향이 컸죠. 그 친구가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과도 간다고 해서, 그게 뭔데 나도 영화관 가봐야겠다, 영화 만드는 것도 재밌겠다 이런 생각을하면서 진로를 잡아갔던 것 같아요. 대학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죠. 사실 장편 준비하면서 한번 엎어진 적도 있었는데 그땐 그게 내 인생의 오점같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지금은 조건이 안맞거나 준비가 안되서 그랬겠지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너무 연연하지는 않되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면서 살아야겠다 싶은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영화의 배경도 짚어 볼게요. 학교의 사육장과 캠핑장의 쉘터가 메인 배경인데요. 성장영화에 보면 꼭 등장하는 아지트라는 점에서 쉘터의 설정도 중요했어요.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유재욱 감독 도심 그린 벨트 같은 곳을 생각했어요. 어른들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자연이 많아 야생동물도 나올 것 같은 느낌이요. 저도 어렸을 때 그런 곳에서 많이 놀았거든요. 그런 곳에 소녀들의 아지트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쉘터가 경사가 많은 지형인데, 이 친구들이 좀 삐뚤삐뚤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니 공간과도 비슷한 느낌이겠구나 싶더라고요. 이 지형을 잘 살려보자 싶었어요.
박혜진 쉘터 생각하면 진짜 추웠던 기억이 나요. 10월 부터 촬영을 했는데 물에 들어가는 장면은 11월에 찍어서 더 추웠어요. 그래도 촬영 현장은 재밌었어요. 뭣보다 저희 배우들 넷이 호흡이 잘 맞았어요. 촬영장에서 과자도 많이 먹었고요. (웃음) 의상팀, 분장팀 언니들과도 많이 친해졌고 저희를 많이 챙겨주셨어요. 같이 사진도 많이 찍고 정말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감독님은 물론 현장에서 많이 바쁘셨고요. (웃음)
유재욱 감독 자연 환경을 최대한 보여주자 해서 나무를 많이 보이게 찍었는데, 또 동물들이 키가 작으니 이 둘을 한 화면에 담기 위해 화면비에도 신경을 썼어요. 2.35:1, 1.85:1 아니라 1.6:1로 아래 위 화면을 좀 더 높여 찍었어요. 그 결정이 친구들의 연기가 더 조화롭게 잘 보여진 것 같았어요.


사람 배우 만큼이나 동물 배우들의 역할이 큰 작품인데요. 컨트롤이 잘 됐나요.
유재욱 감독 랭글러 팀이라고 전문 동물 연기 전문 소속이예요. 그런데 오리, 닭들은 개나 고양이 처럼 조련, 훈련이 되지는 않아서 그냥 그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배우들이 진지한 연기를 하고 있을 때 오리가 꽥꽥 울어서 NG가 많이 났죠.
박혜진 오리가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 명이 울면 또 한 명이 따라 울어요. 서로를 찾는 그런 느낌이에요. 비하인드 영상 보면 테이크가 넘어갈 때마다 스태프 분들 주변에 장비가 점점 더 많아지는데요. 대기하고 있다가 잡아야 해서요.
유재욱 감독 정말 오리 잡으러 많이 다녔죠. (웃음) 울타리에 넣어두면 다 탈출을 해서.

명랑한 모험담처럼 진행되던 이야기 뒤로 가정 폭력 문제, 살처분 문제 등 심각한 문제들도 물론 존재하는데요. 특히 실제 살처분 화면의 등장에서 오는 충격도 컸어요. 톤앤매너에서 크게 벗어나는 장면이기도 했는데요.
유재욱 감독 영화에 그런 사실적인 푸티지에 넣는 걸 좀 좋아해요. 분명 보기 불편한 영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관객들에게 일부러 불편한 걸 보여주고 싶었었어요. 조류 독감이나 구제역 같은 것들을 우리는 그냥 말로만 듣지 보는 건 쉽지 않아요. 일부러 보려 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이들 만큼은 내가 그 시간을 빌어 잠깐이라도 보여주고 싶다. 그걸 보고 몇이라도 내가 이 동물들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좀 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결국 성장영화는 모험과 여정 끝에 자신의 변화를 맞게 되는데요. 남자친구에게 위치추적을 당하던 인혜도 자신의 길을 찾아 가게 되는데요.
박혜진 초반 찬영이한테 휘둘리는 인혜를 보면서 저도 답답했죠. (웃음) 그런데 이해는 가요. 그땐 친구들이 없었죠. 유일한 친구가 찬영이라고 생각했고, 의지하고 기대게 됐죠. 나한테 좀 뭐라해도 가스라이팅을 해도 넘어갔던 거고요. 그런데 쉘터를 만들면서 세 친구를 만났고 나름의 세계관이 정립됐어요. 그 과정에서 인혜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올바른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들이 있어서 찬형이 한테도 제대로 용기를 내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유재욱 감독 이 영화를 만들면서 캐릭터들이 각양각색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동물을 구하지만 각자 이유가 달랐으면 좋겠다. 좀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출발하자 했어요. 시작은 소녀들이 자기를 구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게 남을 구하는 걸로 치환되고 결국은 자기의 안식처를 구하면 좋겠다는 흐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갔어요.

〈산양들〉로 관객들과 만나는 소회도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유재욱 감독 이제 기자시사를 막 하고나니 이제 긴 여정이 끝난 것 같아요. 공동연출을 하다, 홀로 서기를 하다보니 외로울 때도 있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또 자유로운 작업이어서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어요. 〈라임 크라임〉 개봉 때 코로나 시기여서, 관객들을 만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기억이 나요. 이번엔 〈스파이더맨〉도 있지만, 그래도 관객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박혜진 전작 〈태어나길 잘했어〉(2020) 때 코로나여서 아쉬웠는데, 이 영화로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도 하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생일이었는데 생일 선물 받는 것 같아요. (웃음) 기자시사날 오랜 만에 스탭분들을 만났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은 작품이예요. 관객들과 같이 이 기분을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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