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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가미' 안재훈 감독 “근사한 하늘과 물 만들기 위해, 명화들의 물과 하늘만 보았다”

〈아가미〉
〈아가미〉

구병모 작가의 소설 『아가미』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아가미〉는 〈소중한 날의 꿈〉 (2011),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2014), 〈무녀도〉 (2021) 등 서정적인 작화의 애니메이션으로 널리 알려진 안재훈 감독의 신작이다. 2024년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정해인, 강하늘, 이청아, 유재명 배우 등이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버전으로 개봉해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에서 안재훈 감독을 만나 〈아가미〉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아가미〉 안재훈 감독
〈아가미〉 안재훈 감독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를 스튜디오 스태프들에게 추천을 받고, 제작까지 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아가미〉보다 먼저 작업했는데 아직 개봉하지 않은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걸 마칠 때 즈음 제작 환경이나 극장의 변화, 그리고 저 개인의 체력이 흐트러지는 걸 느끼면서 고민이 많았는데, 당시 만난 스태프들과의 작업이 너무 좋은 거예요. 마지막이라는 말을 함부로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들과 함께라면 괜찮게 이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한 스태프가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를 읽어보라고 권했어요. 좋은 작품이란 그 안에서 제가 살아가는 걸 비춰보고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건데, 제 삶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여도 참 좋았어요. 읽고 나선 농담처럼 이 작품은 우리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겠다 했는데 점점 내가 남에게 준 상처, 남이 나에게 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더라고요.

구병모 작가의 소설 「아가미」
구병모 작가의 소설 「아가미」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이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일 텐데요. 전작들이 과거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거나 한국 문학을 베이스로 해서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같아요.

구병모 작가의 문장들은 놀라워요. 어떤 상황을 표현하는 형용사, 명사, 동사가 너무 훌륭해서 이걸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배경, 소품 등으로 어떻게 옮기는 게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기초적으로 있었죠. 소설로 따지면 그게 문장이니까요. 원작 속에서 그리는 한국 지역사회의 아픔, 가난의 흔적들은 내가 정말 잘 그려낼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구석에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애니메이션으로 가난을 그릴 때 그게 대상화에서 멈추지 않을까 우려돼, 이야기에 집중하면서도 판타지적인 것들을 가미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시대 구분이 없는 한국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본 애니메이터들이 유럽을 참 잘 그리는데, 그러던 와중에 내가 유럽을 그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계속되면서 배경을 아예 프랑스로 옮겼죠. 〈아가미〉를 처음 작업했을 때가 코로나 시기라 직접 답사를 갈 순 없었고, 영화로 유학 간 분들께 비용을 드리고 풍경 사진을 받았어요.

안재훈 감독의 전작 〈소중한 날의 꿈〉
안재훈 감독의 전작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안재훈 감독의 전작 〈소중한 날의 꿈〉(왼),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제가 파리에서 본 풍경의 느낌이 너무 잘 살아 있어서 당연히 실제로 가보셨을 줄 알았어요.

아마 가서 봤으면 또 다른 것들이 나올 수도 있었을 거예요. 모두 영화를 공부하는 분들이라 각자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이 무척 좋아서 그들이 좋게 느끼는 공간들을 그대로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기 자취방을 찍어서 보내주신 분도 있고, 강하와 해류가 만나는 카페는 사장님이 이곳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의 작품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작품을) 보내드렸고 다 보시곤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온 스튜디오에서 카페를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편지까지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아가미〉
〈아가미〉

해류의 말로 시작하는 소설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곤과 아버지가 물에 빠지는 걸로 시작해요. 느닷없이 죽음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작품의 세계관과 더 어울려 보였습니다.

영화제에 선보인 버전은 물에 빠지는 대목이 맨 뒤에 있었어요. 작업 초창기엔 아예 안 넣으려고도 했고요. 아이의 생살여탈권을 부모가 쥐고 자살한다는 걸 저조차 납득할 수가 없어서 넣는 게 불편했는데, 결국 그게 들어가야지 말이 되겠더라고요. 그렇게 맨 뒤에 몰아넣고 끝내려고 했는데, 개봉 버전을 작업하면서 배급사와 스태프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앞으로 옮겨보자 했죠. 소설 속 그 대목에서 묘사되는 이팝나무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원작과의 차별점을 둔 지점이 있다면.

앞서 말씀드린 배경을 프랑스로 한 것이 가장 크겠고, 나머지는 104분이라는 러닝타임에 원작을 잘 살리려고 했어요. “사람들은 행복을 전시한다”는 말은 2011년에 발표된 원작에선 “사람들은 불행을 전시한다”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인스타그램으로 행복을 전시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렇게 바꿔보니 불행보다 행복을 전시하는 쪽이 더 쓸쓸하게 들리더라고요. 이녕의 서사를 좀 더 확실하게 보여줘서 입체감을 살리기도 했고요. 이녕의 캐릭터에 원작보다 입체감을 살려서 그의 서사를 확실하게 보여주기도 했고요.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인터뷰하러 명동역에서 오는 길에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는 명동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아가미〉 제작 당시 자주 가셨다고 한 목욕탕이 있는 호텔을 발견했어요. (웃음)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작품 속에 누군가가 물에 들어간다는 설정을 아예 빼왔는데, 〈아가미〉 작업을 시작하면서 거기서 깨어나야 할 필요가 있어 당시엔 매일같이 그 목욕탕에 갔어요. 그 호텔엔 신기하게 남자 목욕탕만 있어요. 이 근처 돈 많은 할아버지들만 종종 오시는 것 같고, 평소엔 사람이 없어요. 탕 속에 들어가서나마 곤의 마음은 무엇일까, 물속은 과연 어떤 걸까, 편안하기도 한데 그럼 누군가의 서재 같은 느낌인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물에 대한 공포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됐어요.

욕실 배수구를 두 번이나 클로즈업으로 찍은 건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의 오마주인가요? 감독님 데뷔작이 〈히치콕의 어떤 하루〉(1998)라 단순 우연 같지는 않았습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었어요. 다만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오래전부터 영향받은 걸 피하기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는 듯해요. 은연중에 어떤 선택을 할 때 더 이상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자기 기억 속에서 무언가 나오거든요. 어릴 때 책을 많이 읽고, 좋은 그림을 많이 봐야, 어떤 벽을 마주했을 때 그것들이 구원해주는 것 같아요.

〈아가미〉
〈아가미〉

〈아가미〉의 비주얼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물이 파랗지 않다는 점입니다. 흔히 물의 이데아를 파랗고 아름다운 것이라 여기기 마련인데, 창작자로서 보편적인 인식을 뛰어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어요.

그럼요. 유럽을 1년에 한 번 정도 갈 기회가 있는데, 박물관 가면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 원본을 볼 수 있잖아요. 어릴 때부터 그 화가들의 붓터치를 보고 자란다는 건 실로 굉장한 건데,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예전에 아시아 애니메이션의 하늘은 모두 지브리의 하늘이었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나타난 이후엔 신카이의 하늘이 돼버렸어요. 그걸 피하면서 근사한 하늘과 물을 만들기 위해 우리 스태프들에게 명화들의 물과 하늘만 다 따서 보내줬어요.

한편 〈아가미〉의 세계관에서 반짝거리는 건 분명 아름다움보다 곤의 비늘이나 이녕이 과거의 환상에 휩싸일 때처럼 고통에 더 가까워요.

상처라든지 갖지 못한 것들이라든지, 언어로는 뭘 해줄 수 없으니까 반짝임의 형태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자기 삶에 대한 욕망으로만 이어지는 걸로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쓸모없는 반짝임. 비늘과 아가미가 있지만 그걸로 뭘 할 수는 없죠.

〈아가미〉의 곤
〈아가미〉의 곤

물을 탁하게 구현한 것만큼이나 인상적인 게 다채로운 빛이에요. 〈아가미〉 속에서 다양한 시간대를 다루고 있는데, 그때마다 빛을 모두 다르게 그리셨더라고요.

그런 걸 발견해주시면 너무 좋죠. 애니메이션에서 밤은 주로 파란색 계열로 가는데, 우리는 여러 명화 속의 배경을 보면서 밤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처음엔 밤 신을 아예 다 까맣게 해봤어요. 사람 윤곽만 가까스로 보이게. 그런데 너무 안 보이는 거예요.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어둡다와 그냥 어둡다는 분명 달라서 다른 색들을 넣어서 밤을 여러 가지로 해봤어요.

〈아가미〉
〈아가미〉

〈아가미〉 속 물이 나오는 장면들 가운데 유독 더 많은 손이 갔던 대목은 무엇일까요?

파도죠, 파도. 그것도 해서는 안 될 작화 중에 하나인데.(웃음) 해류가 물로 들어갈 때의 파도는 작화 자체가 잘 돼서 너무 좋아요. 잔잔한 물보다도 파도가 사람에 미치는 영향, 파도 자체의 힘, 물보라 등 여러 요소들이 있어서 작화적으로 힘들어요. 물도 어느 정도 작법의 기준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걸 덜 활용하면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죠.

유명 배우의 목소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원작이 있어 명확한 게 정리된 작품은 성우님들과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원작자가 분명하게 정해놓은 의도를 잘 살려내자 방향으로 가는데, 〈아가미〉도 성우분들한테 영화제에서는 이 목소리를 쓰지만 개봉할 땐 다른 계획이 있다고 미리 말씀을 드리긴 했어요. 영화제에서 보면서 원작을 탄탄하게 살렸는데도 뭔가 캐릭터들이 덜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거예요. 배우분들 캐스팅할 때는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언어 습관을 유심히 봐요. 각각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도 특유의 습관이 있거든요. 그건 더빙을 할 때도 못 고쳐요. 그래서 그게 뛰어난 분이어야지, 기본적으로 해결되는 게 있어요. 특히 강하늘 배우(강하 역)님은 원체 많은 분들이 그의 선량함을 좋아하시잖아요. 그래서 혹시 이 분의 기본적인 목소리가 선량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워낙 좋은 베이스 위에 연기를 해주시니까 강하가 가져야 하는 이중성에도 잘 맞았어요.

〈아가미〉의 강하
〈아가미〉의 강하

‘연필로 명상하기’라는 스튜디오 이름이 AI 이미지가 넘쳐나는 요즘 더욱 진귀하게 들립니다. AI의 영향이 커지는 시대를 어떻게 감각하고 계세요?

저는 아주 특이하게, 아니, 아주 고맙게도 셀 애니메이션부터 시작했어요. 디지털 작업으로 변환하는 게 슬슬 익숙해지려는데 이젠 AI까지 와서, 이런 시대를 다 겪게 되는구나 싶어요. 결국 AI로 제작에 도움을 받는 건 너무 좋다고 봐요. 지금 다양하고 발랄한 재능을 가진 젊은 스태프들에게 장인정신을 요구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그들이 기초적인 노동에 들일 수 있는 것들을 AI를 통해서 해결해가는 가치에 집중을 잘하면 한국에서 창작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줄 거고, 그래서 지금 AI가 있게 된 걸 우리는 행운처럼 느끼고 있어요. 연필로 따지면, 그저 상표가 다른 연필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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