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 하치

올해로 3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가 곧 막을 올린다. 시간이 쌓인 만큼 영화제가 지닌 무게도 달라졌지만, 이번 해는 특히나 역대급 게스트 라인업이 공개되면서 영화팬들이 영화제 파산을 걱정한다는 훈훈한 소식이다. 필자도 자파르 파나히, 션 베이커를 비롯해 세계 영화계의 굵직한 이름들을 초청 명단에서 발견하고 기쁨, 희열, 환희, 축복의 감정에 휩싸였지만, 마음 한편은 불안했다. 9월 5일 개·폐막작을 포함한 부문 예매를 시작으로 9일 일반 예매가 열리면, 올해도 어김없이 ‘티켓팅 전쟁’에 참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 단위로 희비가 엇갈리는 티켓팅, 원하는 작품을 만나기 위한 사전 준비는 필수다. 그래서 오늘은 국내 수입사가 이미 수입을 확정한 주요 작품들을 중심으로, 놓쳐서는 안 될 기대작 10편을 정리했다. 수입이 확정됐다고 개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시네필들이여, 빠른 손과 날카로운 눈으로 부산행 예매대전에서 꼭 승리를 거머쥐시길!
〈그저 사고였을 뿐〉 by 자파르 파나히

TMI를 꺼내놓자면, 필자의 최애 감독은 자파르 파나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파나히 감독을 선정하며 그의 내한을 공식화한 가운데,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2025) 또한 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영화는 테헤란의 정비공인 바히드가 과거 자신을 고문한 감옥 간수를 우연히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불확실한 진실과 도덕적 혼란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올해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파나히는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아시아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린나래미디어 수입배급으로 10월 1일 개봉 확정.
〈국보〉 by 이상일

이상일 감독과 배우 요시자와 료 또한 영화 〈국보〉(2025)를 들고 부산을 찾는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가부키라는 일본의 전통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야쿠자 출신 집안의 소년 키쿠오(요시자와 료)가 가부키에 일생을 바쳐 '국보' 반열에 오르는 50년의 세월을 그린다. 상영 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흥행 수입 100억 엔(약 942억 원)을 돌파한 영화는 일본 실사 영화로는 22년 만에 역대 2위의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재일한국인 이상일 감독은 온나가타(가부키의 여성 역할 전문 배우)라는 존재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전했다. 미디어 캐슬 수입,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 배급으로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엄마의 시간〉 by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다르덴 형제의 신작 〈엄마의 시간〉(2025)은 보호 센터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섯 명의 청소년 미혼모를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각자의 사연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이 어린 엄마들은, 사회와 제도 안에서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바꾸고 아이와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한다. 제78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다르덴 형제의 든든한 파트너인 영화사 진진을 통해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by 짐 자무쉬

〈데드 돈 다이〉(2019) 이후 6년 만에 짐 자무쉬가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2025)로 돌아왔다. 글을 쓰는 현재 열리고 있는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만큼 상세 정보를 찾기 힘들지만, '짐 자무쉬', 이 네 글자만으로 영화적 호기심이 증폭된다. 영화는 미국 북동부,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부모와 성인 자녀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세 개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낸다.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라는 오래된 주제를 감독은 어떤 식으로 재해석했을까. 아담 드라이버, 케이트 블란쳇의 출연이 더해지며 기대감은 배가된다. 국내에서는 영화사 안다미로가 수입을 확정했으며,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여행과 나날〉 by 미야케 쇼

지난 78회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에서 미야케 쇼가 〈여행과 나날〉(2025)로 최고상인 황금표범상을, 네오 소라가 단편영화 〈A Very Straight Neck〉으로 최우수 단편 영화상을 거머쥐었을 때, 최근 부상하는 일본 영화의 존재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칸 경쟁부문에 초청된 하야카와 치에와 함께 일본 영화 특유의 섬세한 서사와 감각적 연출의 힘을 다시 한번 입증한 미야케 쇼의 〈여행과 나날〉이 부산을 찾는다. 영화는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여름에는 여행을 떠난 온 여자와 어머니의 고향을 찾은 남자가 우연히 해변가에서 마주치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겨울에는 슬럼프에 빠진 시나리오 작가 이(심은경)가 산속 여관에 머물며 주인 벤조를 만나 변화하는 감정의 파동이 그려진다. 엣나인필름이 수입해 올해 12월 개봉 예정이다.
〈르누아루〉 by 하야카와 치에

전작 〈플랜 75〉(2022)에서 근미래 일본의 노년 사회를 상상했던 하야카와 치에가 신작 〈르누아르〉에서는 1980년대의 도쿄를 회상한다. 11살 소녀 후키(스즈키 유이)는 죽음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장례식 상상이나 영혼과의 대화를 시도하며 탐구한다. 암에 걸린 아버지를 둔 그녀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로, 호기심과 관찰의 대상이 된다. 삶과 죽음을 명랑하게 감각하는 인상적인 성장 드라마라는 평과 함께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 후 경쟁부문에 안착한 하야카와 지에의 연출자로서의 도약을 선명하게 증명했다는 평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감독 하야카와 치에와 프로듀서 미즈노 에이코는 직접 부산을 찾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할 예정. 오드에서 수입해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마스터마인드〉 by 켈리 라이카트

션 베이커와 함께 현재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신작 〈마스터마인드〉(2025) 또한 부산을 찾는다. 영화는 1970년대 매사추세츠 교외를 배경으로, 베트남 전쟁과 페미니즘 운동의 한복판에서 예술품 절도 사건을 계획하는 어설픈 도둑 제임스 무니(조쉬 오코너)를 따라가며 전개된다. 범죄 이후 가족과 일상의 붕괴를 세심히 조망해 전형적 남성성을 풍자하고, 실패한 가부장의 정서적 풍경을 탐구하는 이 영화, 아직 국내 수입사가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영화제에서 꼭 봐야 할 이유다.
〈물의 연대기〉 by 크리스틴 스튜어트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장편 데뷔작 〈물의 연대기〉(2025)는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해온 스튜어트가 자신의 야심을 담아 완성한 작품이다. 단편 연출작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실험적인 시각 언어를 선보인 바 있는 크리스틴은 이번 장편에서 성적 학대와 폭력, 중독, 그리고 물속에서 자신을 되찾는 구원의 감각을 시적이고 추상적인 몽타주와 비선형적 내러티브로 풀어낸다. 영화는 미국 여성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자전적 에세이 『물의 연대기』를 원작으로 하고, 배우 이머진 푸츠가 유크나비치를 연기했다. 스튜어트는 원작의 첫 40페이지만 읽고 “무조건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작가에게 직접 연락해 영화 판권을 구매했다고. 영화는 제78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고,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섹션에서 아시아 최초로 상영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판시네마에서 수입배급해 2026년 개봉 예정이다.
〈센티멘탈 밸류〉 by 요아킴 트리에

불화하는 부녀의 긴장과 그 해소를 그린 〈센티멘탈 밸류〉는 전성기가 지난 영화감독 아버지와 연극배우로 성장한 딸의 관계를 통해 가족 드라마라는 오래된 주제를 새롭게 풀어낸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레나테 레인브베가 다시 한번 딸 노라 역으로 트리에 영화에 함께 한다. 깊이 있는 구성과 절제된 연출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호평 받은 이 영화. 그린나래미디어에서 수입했다.
〈시크릿 에이전트〉 by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1970년대 브라질 군사 독재 시절, 체제의 공포와 억압이 사회를 잠식하자 공대 교수 아르만도(아그너 모우라)는 일터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다. 그는 국가의 탄압을 피해 모여든 소수자들의 임시 아지트로 흘러들고, 그곳에 남겨진 작은 공동체의 목소리는 녹음테이프에 담겨 반세기를 넘어 2020년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당도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 정치사와 개인의 얽힘, 공간과 정체성이 교차하는 방식이 최근 국내 개봉한 〈아임 스틸 히어〉(2024)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다. 동시대 가장 중요한 남미 영화감독으로 꼽을 수 있는 브라질의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신작으로 78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포함한 4개 상을 수상했다. 찬란 수입.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