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얼굴〉은 여러모로 보나 배우 박정민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박정민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1인 2역 연기에 도전했고, 시각 장애인 인물을 맡아 열연을 선보였다. 또 기존의 연기 방식에서 벗어나 조금 더 과감하게 연기를 펼치면서 기어코 그의 새로운 얼굴을 내보인다. 〈얼굴〉은 박정민의 새로운 도전, ‘노개런티’ 출연, 시각 장애를 가진 부친과 얽힌 그의 개인적인 서사 등으로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 영화와 만난 그의 시작은 오직 연상호 감독의 원작 작품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다.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고, 라이브 온 스테이지 공연 ‘라이프 오브 파이’에 도전한 최근 그의 행보도 모두 좋아하는 작품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박정민을 만나 이번 작품 〈얼굴〉과 맡은 인물, 근황에 관해 들어 보았다.

먼저 최종적으로 완성된 영화를 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두 번 봤는데요. 한 번은 개봉하기 한참 전에 편집된 걸 제작사 사무실 모니터로 한번 보고요. 그때도 괜찮은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해서 극장에서 처음 보고 나서는 뿌듯했습니다. 잘 나올 거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절반 정도는 우려도 있었는데 감독님이 너무 잘 만들어 주셨더라고요. 그리고 굉장히 한국적인 이야기니까 북미 관객들이 잘 봐주실지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집중을 잘하셔서 그 부분도 놀라웠고 뿌듯했습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도 인기를 많이 실감하셨나 봐요.
영화제는 항상 모든 배우들이 인기가 많아요. 근데 차에서 내렸는데, 거기 계신 분들이 제 이름을 막 연호하는 거예요. 저도 좀 놀랐어요. 아니 저 사람들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라는 생각이 좀 있었고, 그 광경을 본 연상호 감독님이 “다시는 널 무시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죠. (웃음)

연상호 감독님께서는 박정민 배우에게 개런티를 드리려고 했는데, 박정민 배우가 거절하셨다고 하시는데 이유가 있나요? 적어서 그런 건가요?
내 주머니에 넣는 것보다는 저도 마음 써서 회식비로 보태는 게 서로 좋은 일인 것 같아서요. 회식비에 보태 쓰시라 하고 거절했죠.
사실 박정민 배우의 위치 정도가 되면 주연으로 참여하는데 ‘노개런티’를 한다는 게 어렵기도 하고,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있을 거잖아요. 그런 시선에 대한 부담은 없으셨어요?
전혀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우선 예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많이 안 주시겠다는 건 예상이 되잖아요.(웃음) 그러면 그냥 화끈하게 마음을 쓰는 게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고, 남들이 어떻게 볼까라는 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 돈 안 받고 출연한 거 꽤 있었습니다.

배우님의 ‘노개런티’ 참여도 화제가 됐지만, 이번 작품으로 처음 1인 2역을 맡아서 연기하셨어요. (박정민은 임동환, 과거의 임영규를 연기했다) 근데 1인 2역을 맡겠다고 먼저 제안했다고 하시는데, 이유가 뭐였어요?
감독님이 「얼굴」을 영화화할 건데 같이 하자고 하셔서, 제가 원작을 아니까 대본이 없었어도 알겠다고 했죠.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원작을 다시 봤는데 젊은 임영규 역할이 더 좋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전화해서 젊은 임영규 역은 누가 하냐고 여쭤봤더니 저의 속마음을 간파하시고 “1인 2역도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말씀이 그겁니다라고 하고 그렇게 됐죠. (웃음)
근데 제 생각은 그랬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좀 연결돼 있고, 서로가 없이는 설명이 안 되는 인물들이잖아요. 그러니까 두 인물을 한 배우가 같이 연기했을 때 오는 어떤 독특한 지점들, 감정적인 부분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적으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어요. 근데 그렇게 해보니 감독님과 저도 그렇고, 많은 스태프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고 말씀을 해 주셔서 다행이었죠.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권해효 배우(현재의 임영규 역)의 말투를 따라 하기도 했나요? 임영규와 임동환 두 인물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니요. 따라 한 건 아니고요. 목소리 자체가 해효 선배님이 저보다 더 깊잖아요. 더 낮고 깊은 목소리를 내시니까 그 정도만 맞추려고 했죠. 성대모사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목소리는 그 정도만 계획하고, 신체적으로는 조금 더 수그려서 덩치 차이가 덜 나 보이게 했죠. 저는 그 정도만 했는데, 영화 보면서 좀 놀랐던 게 두 인물이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두 인물의 싱크가 잘 맞는 게 신기했어요.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 선배님과 의논한 게 없었는데, 그 결이 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우연인데 결국 선배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 작품을 보는 시선이 비슷했다는 거겠죠.

영화를 보면 약자라고 해서 착한 게 아니고, 조용히 입 다물고 있다고 해서 욕망이 없는 게 아니라는 게 두드러져 보였거든요. 모멸감이나 피해 의식 같은 감정들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감정들이 시각 장애인 캐릭터와 붙어야 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좀 궁금해요.
임영규 캐릭터는 아예 어릴 적부터 선천적으로 보이지 않던 사람, 그러니까 시각적인 미의 기준이 아예 없는 사람인데, 자기가 깎아내는 도장, 자신의 아내가 다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아이러니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감독님이 그 캐릭터를 만드신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고도성장을 바라보던 70년대의 대한민국이 과연 어떤 것을 딛고 일어났는지, 무엇을 짓밟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처음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어요. 맹목적인 발전을 하던 그 시대를 두고, 또 사실 맹목이라는 말이 ‘보이는 것이 없이 무조건적으로 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잖아요. 그런 것과 임영규의 시각 장애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셨듯이 이번 영화는 1970년대의 은폐되고 잊힌 얼굴을 드러내려고 하고, 또 한국 근대의 성장 이면에 있는 부조리를 말하는 작품이잖아요. 그런 측면에 있어서 인터뷰를 듣는 임동환의 리액션은 그 시대를 바라보는 후대의 반응과 맞닿아 있거든요. 과거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심정인지 알 수 없는 임동환의 표정 같은 것들도 지금 후대의 반응과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주제 의식을 염두에 두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해요.
연기할 때는 굉장히 개인적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사실을 알아낸 아들이 사실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극 중에서 임동환은 사실 굉장히 무능한 사람이죠.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이고, 심지어 임영규도 “네가 날 이해하지 못하면 기생충 같은 놈이 되는 거”라고 말하잖아요. 그 상황에서 자기가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가 무너지면 자기도 무너지는 게 되잖아요.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심적으로도 그렇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옳다는 건 아니죠. 지지하는 선택은 아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분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접근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영화를 보고 나니까 그것이 시대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저도 들었어요. 현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지점들도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얼굴〉 기자간담회 때 연상호 감독님이 “사회에 투덜대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이번 작품에서 특히 어느 지점이 좀 그런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세요.
모조리라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 임영규의 성과주의에 대한 이야기하신 적이 있어요. 임영규가 성과주의 때문에 기괴하게 뒤틀려버린 내면이 있는데, 감독님도 성과주의적인 측면이 있어서 자기를 되돌아보다가 그의 대사를 썼다고 하셨어요. 그런 지점들이 유독 저에게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시대가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서 과연 어디까지 묵인하고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럼, 배우님은 본인이 성공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해봤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셨을까요?
늘 생각하죠. 못된 짓을 해본 적은 없지만, 항상 감정을 숨기고 사는 거죠. 임영규처럼 거짓된 감정을 드러내거나 거짓된 감정으로 살아가는 거죠. 또 그런 게 적응이 되고, 그걸 내 진짜 감정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거 그런 지점이 좀 무섭죠.

운영하시는 출판사 무제에서 시각 장애인 독자를 위한 책도 제작하시고, 또 밝히신 바에 따르면 박정민 배우님의 부친께서 시각장애를 갖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좀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도 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사실 그래서 선택한 건 아니었거든요. 이 작품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당시에는 그 책의 원고가 이제 막 왔을 때였고요.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선택하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이 작품을 선택하고 나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운 게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그런 가족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떤 불편함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 것 같고, 연기를 하려고 막 영상들을 찾다 보니 비시각장애인들이 알지 못하는 지점들이 꽤 많더라고요. 길거리에는 노란색 점자블록이 있잖아요. 그게 캐리어를 끌고 다닐 때 되게 불편한데, 저는 옛날에는 그게 왜 있는지 몰랐거든요. 근데 그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그런 사소한 지점들부터 여러 가지 알게 됐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에게 가르쳐준 게 많은 작품이 되었죠.
앞서 말했듯이 배우와 출판사 무제의 대표 일을 병행하고 계시는데 그게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떤 작품을 보고 해석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건 둘 다 같으니까요. 연기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게 있었나요?
그 이후로 연기를 아직 해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박정민이 출판사 대표로 일한 이후 촬영을 시작한 차기작은 없다.) 좀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조금 더 깊게 읽는 습관이 생기거든요. 놓치지 말아야 하니까요. 특히 저희 출판사의 책 같은 경우에는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이 있다 보니까 그런 믿음이 생겼어요. 만약에 대본을 나중에 받아서 계속 보면 발견되는 지점이 있겠다는 믿음이요. 그러면 다음에는 조금 더 많이 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출판사 대표 말고도 팬들이 박정민 배우에게 바라는 ‘딴짓’이 몇 가지 있어요. 먼저 글을 좀 썼으면 좋겠다는 게 있고요. 단편영화 〈반장선거〉로 연출을 하기도 하셔서 다시 연출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하는데, 혹시 관련 계획이 있으세요?
예. 책은 계약된 게 하나 있어서 써야 하고요. 연출에 관한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단언할 수는 없는데, 지금으로서는 연출이 너무 힘들다는 거를 점점 깨달으면서 감독은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사람을 책임져야 하고, 그 책임감이 너무 무거울 것 같거든요.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면 또 말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공연 ‘라이브 오브 파이’ 준비로도 바쁘실 것 같은데, 그 얘기도 조금 해주세요. 원작은 보셨나요?
예전에 봤죠.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사실 저는 무대 연기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는데, 사실 안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좀 무서워했거든요. 근데 ‘라이브 오브 파이’는 좀 당기더라고요.
공연 선배이신 황정민 배우(박정민 배우와 같은 소속사)가 조언을 주신 게 있을까요?
조언은 아니고 “네가 안 하면 내가 하겠다”고 그 정도만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박정민 배우님이 특별 출연하실 때 연기를 되게 잘해서 맡은 인물을 잘 살린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근에 〈고백의 역사〉에도 나오고, 〈너와 나〉에서 맡은 ‘똘이 아범’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는데, 잘 살리는 비결이 있으세요?
비결이요? 글쎄요… 제멋대로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특별 출연이기 때문에 감독님들로부터 크게 디렉팅이 안 들어오거든요. 그런 특별 출연은 그냥 너의 개인기가 필요하다, 너의 얼굴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로 섭외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그냥 가서 제멋대로 하니까 이게 좀 눈에 띄고, 또 저도 사람인지라 제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잘하고 싶으니까 욕심부려서 하다 보면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런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워낙 다양한 역할을 많이 연기하셨잖아요. 그렇지만 아직 못 해봤고,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을까요?
못 해 본 건 너무 많죠. 근데 제가 하고 싶은 건 없고요.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하늘은 그 역할을 선물해 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바라지 않은 지 되게 오래됐어요.
해보고 싶은 건 모르겠는데, 이번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세계의 주인〉이라고 윤가은 감독님의 신작 영화를 먼저 봤는데, 윤가은 감독님과 한번 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 영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말만 하면 항상 〈세계의 주인〉은 꼭 보라고 얘기하고 다니거든요. 너무 훌륭한 영화가 나와서요.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치고 본인이 새롭게 마주한 자신의 얼굴도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연기하면서 과하지 않게 하려다가 되려 사려버리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에는 특히 젊은 임영규를 연기할 때는 그 마음을 버렸던 것 같아요. 조금 더 과감하게 해도 납득되는 역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어요. 영화를 보니 저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관객분들도 처음 보는 얼굴이 나올 거예요. 여러모로 저한테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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