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같은 빌런, 빌런 같은 가족. 배우 이창민이 연기한 박민재는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자 수열(장동윤)의 어린 시절 가족과도 같은 친구였다. 호감형의 외모와 말솜씨로 정연(김보라)과 아라(한동희)에게 접근하고 기어이 수열의 앞에도 나선다. 수열이 자신을 경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열과 정이신(고현정)의 관계를 암시하며, 자꾸만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며 맴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받았던 그는 자신을 챙겨준 유일한 존재인 이신을 구원자로 여기며 살아왔다. 여러모로 미래로 나아가려는 수열에게 가장 걸림돌 같은 존재랄까. 하지만 그것이 혹시 모를 수열의 가면을 벗기려는 의도였다고 한다면, 친구인지 적인지 모를 민재의 태도가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중반부의 긴장감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수열 곁을 맴돌 수밖에 없는 내면에는 애처로운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불안과 광기를 넘나드는 열연을 선보인 이창민을 만났다. 드라마 〈혼례대첩〉을 시작으로 〈열혈사제〉 시즌2를 비롯해 〈노무사 노무진〉 등으로 차곡차곡 작품을 쌓아가는 가운데, 지니 TV 오리지널 〈착한 여자 부세미〉 방영도 앞두고 있다. 앞으로 그를 더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오디션 과정이 입시처럼 진행됐다. 희곡의 독백 부분을 발췌해서 표현을 자유롭게 연기로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나의 경우 바람난 남편 입장에서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여러 다른 드라마 오디션을 꽤 봤는데, 이렇게 희곡을 가지고 자유롭게 서술하듯 연기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신선했다. 어렵지만 오디션만으로도 배우로서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변영주 감독과의 만남은 어땠나.
오디션 합격하고 처음 뵈었을 때가 기억난다. 휴가를 다녀와서 얼굴도 좀 타고, 다른 독립영화 촬영으로 헤어스타일도 좀 이상했는데 “이제 갓 학교 졸업한 촌놈이 오디션 보러 온 것 같다”며 “빨리 얼굴을 하얗게 만들어오라”고 하셨다. 외양이 중요한 캐릭터라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고, “캐릭터를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한다”는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네게 첫 작품은 아니지만, 배우로서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이 너의 데뷔작으로 불리면 좋겠다”는 말씀도 기억에 남았다. 그 말씀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

그럼 배우로서 진짜 데뷔작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일단 국립극단 청소년극 〈발가락 육상천재〉(2022)가 기억에 남는다. 저마다의 고민을 지닌 12살 육상부 소년들의 이야기인데,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첫걸음을 내딛는 이야기다. 주연급 출연이기도 했고, 그게 학교가 아닌 외부 관객과 처음으로 만난 경험이다. 그리고 TV드라마는 〈혼례대첩〉(2023)으로 데뷔했는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사연 많은 스님 역할이었다. 완전 머리를 박박 밀고 출연했다.(웃음)
중반부에 불쑥 등장해 드라마의 정서를 뒤흔드는, 수열이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박민재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등장과 동시에 유력한 용의자로 급부상하는 인물이다.(웃음) 민재는 어릴 때 수열의 옆집에 살았는데,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자랐다. 세월이 흘러 나이는 먹었지만 그대로 몸만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대본을 보자마자, 성장이 멈춰버린 소년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말투나 하는 행동들이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계속 놀고 싶어한다. 그래서 수열을 계속 불편하게 한다. 시청자도 그 불편함을 느낀다면 성공한 것이라 봤다.

맡은 배역과의 개인적인 싱크로율은 어떤가.
민재에 대해 나이는 먹어가는데 몸만 큰 아이, 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내가 그런 것 같다. 하나하나 비교하면 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고 느꼈고, 민재 특유의 순수함이 닮았다고나 할까.(웃음)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민재는 비밀도 많고 늘 주변을 겉도는 인물이다. 수열과 정연, 그리고 아라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어떻게든 집단에 스며들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 장면들이 꼬마들이 다른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라, 앞서 얘기한 민재 캐릭터에 비춰 기억에 남는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굉장히 긴장하며 찍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라 배우와는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 16학번 동기이고 실제로도 굉장히 친한데, 그럼에도 내내 긴장되더라.

언제부터 배우의 꿈을 꾸었나.
어렸을 때는 특별히 뭐가 되어야겠다는 장래희망 같은 게 없었고, 막연하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저 어린 마음에 배우가 멋있게 보였는데, 그런 영향을 준 데는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빼놓을 수가 없다. 고현정 배우를 비롯한 배우들의 카리스마가 정말 거대해 보였다. 이후 수많은 영화를 챙겨봤고 학교 연극반에도 들어갔다. 여름에 공연대회도 나가고, 다 같이 하루종일 연극반에서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물론 능숙하게 잘 하는 게 아니니까 부족하면 혼나기도 했는데, 그런 과정들이 그냥 다 정말 재밌었다. 힘들어도 재밌고 혼나도 재밌고 못해도 재밌으니 ‘연기’라는 게 나랑 잘 맞다고 느꼈다. 잘 안 되서 몸부림치면서도 늘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어릴 때는 엄청 많았는데,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고 그러면 나를 잃게 되는 과정이 생기더라. 어려서부터 워낙 자신감이 없는 스타일이라 좋다고 하면 일단 따라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고 그랬는데,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한 배우에게 꽂히면 한동안 그 사람의 말투뿐만 아니라 톤앤매너 자체를 맞춰 사는 기간이 반드시 있었다. 그렇게 그 사람이 되고자 했다. 가령 2013년부터 시작한 〈피키 블라인더스〉 시리즈를 보면서 킬리언 머피를 그대로 따라하고 다녔던 때가 있다. 그 드라마가 2022년에 끝나고 킬리언 머피가 2023년 영화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 모습을 보니 뭔가 내 덕질이 성공한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뿌듯했다. 사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배우인데, 마치 내가 키운 것 같아 울뻔 했다.(웃음)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을 끝낸 소감은.
대본을 처음 읽을 때부터 재미도 재미지만, 정말 내용의 빈틈이 없었다. 무려 3번을 연달아 반복해서 읽었을 정도다. 다음이 계속 궁금했고, 다시 읽으면서는 앞서 읽었던 내용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조율한 변영주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내 배우 인생의 은인이기도 하시다. 이 작품 찍기 전까지 완전히 백수였으니까.(웃음) 현장에서 잘 챙겨주신 것은 물론이고 직접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시는데, 그것만 봐도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신지 바로 이해가 됐다. 매 순간 촬영이 끝나가는게 아쉬웠고 그 시간이 계속됐으면 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을 통해 확실히 나 자신이 레벨업 됐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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