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현정의 정이신에 밀리지 않는 기세로 맞서는 저 배우는 누구일까. 현재 초반부를 달리고 있는 SBS 금토 드라마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을 보고 든 궁금증이다. 배우 이태구는 변영주 감독의 이전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의 ‘경찰’ 양병무 캐릭터에 이어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에서는 잊을 수 없는 ‘빌런’을 탄생시켰다.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 서구완 역을 맡은 이태구는 이번 작품에서 카피캣 킬러 빌런의 몫을 톡톡히 해낸다. 극 중 서구완은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을 처단한 정이신을 추앙하며, 정의를 실현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이다. 드라마 초반부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태구를 만나 작품과 인물 서구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처음 각본을 읽었을 때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읽고 나서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을까요?
감독님께서 갑자기 대본 하나를 읽어보라고 하셔서 읽게 됐어요.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갖고 대본을 읽었어요. 근데 어떤 배역이라고는 명확하게 말씀을 안 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제가 어떤 배역을 맡을까, 고민하며 읽었어요. 이후에 감독님이 서구완 역할이라고 하셨을 때는 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솔직하게 좀 부담된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아요.
맡은 배역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제가 전 작품을 감독님하고 같이했어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을 했거든요. 근데 이후에 저를 다시 선택해 주신 게 너무 감사했어요. 한 번 같이 작업했던 감독님께서 다시 연락을 주신 게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그런 말 있잖아요.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라고 하는데, 목숨까지 바칠 수는 없지만 (웃음) 정말 그 정도의 마음으로 잘 해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태구 배우님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신 후로 〈카이로스〉〈속아도 꿈결〉 등을 작업하시다가 지난해 작품인 〈끝내주는 해결사〉의 권대기,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의 양병무로 주목받았는데요.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계시는 도중 이번 작품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에서 맡은 서구완 역은 본인에게 어떤 특별한 도전이었을지 궁금해요.
제가 학부 때는 영화학 전공이었거든요. 그래서 원래는 저의 단편 영화를 찍고 연출을 했었어요.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군대 전역하고 복학할 때 뒤늦게 정한 거였어요. 이후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다가 말씀해 주신 그 필모그래피대로 밟아온 건데요. 이번 작품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역할이 좀 어려운 것 같았어요. 제가 느꼈을 때 나와 접점이 있거나, 내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거나, 아니면 내가 마음이 가는 인물들이거나 하면 자신 있게 할 텐데 서구완은 그 세 지점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아 힘들었어요. 그런 고민을 감독님께 털어놓았더니 대뜸 “왜 고현정 배우랑 붙는 거 겁나?”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웃음) 내 고민의 여러 차원을 초월하는 질문이었고, 그 말이 자극되어서 감독님께 바로 하겠다고 말했죠. 고현정 선배님하고 굉장히 길게 붙는 씬이 있는데, 거기서 제가 밀리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맡겨주셨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감독님께 피드백을 받으려고 영상도 찍어서 보내고,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도 막 보고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은 어떤 게 있어요?
그때 제가 본 작품은 〈택시 드라이버〉와 〈조커〉였어요.

현장에서 변영주 감독님은 주로 어떤 디렉션을 주셨는지, 또 감독님과 현장에서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궁금해요.
한 번은 감독님께서 OK 사인을 주셨는데, 제가 느끼기에 석연치 않은 연기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시간도 없고 여러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넘어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막 저 혼자 몰래 힘들었는데, 그때 감독님께서 아주 잘했다고 해주셨어요. 그리고 “너 이거 ‘조연병’이야. 네가 더 끌고 가고 욕심내서 가도 되는데, 자꾸 상대방한테 맞춰주려고 하고 배려하고 네 타이밍 제대로 안 가져가고 그러지 말고, 자신감 있게 가”라고 해주셨어요. 정말 큰 힘이 됐죠.
서구완은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등장하면서 드라마 초반부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요. 정이신(고현정)을 맹목적으로 추앙하고 그로 인해 망상에 사로잡혀서 모방 범죄를 저지르는 캐릭터인데, 사실 이런 정신이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캐릭터는 많았잖아요. 서구완을 어떻게 다르게 그려내려고 하셨는지 궁금해요.
작품 속 악인들을 보면 보통 어떤 결핍이 있어서 악행을 저지르잖아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에서 맡았던 양병무 역도 고정우(변요한)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거든요. 그게 굉장히 폭력적인 나쁜 방향으로 발현된 거지만, 저도 사람이다 보니 살면서 자격지심을 느끼고 그것에 대한 어떤 반응을 하고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맡은 양병무를 연기하려고 노력했다면, 서구완은 애초에 정신병력이 있는 인물이다 보니까 제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는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 인물이 앓고 있는 조현병이라는 병에 대해서 많이 찾아봤어요. 그걸 명확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표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관련 다큐멘터리 혹은 조현병을 다룬 영화들을 찾아봤어요. 근데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환자분이 갑자기 환청을 들었다고 하고, 대화를 하고 있을 때도 그런 환청이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구완이 무언가를 보고 읽는 장면을 연습하면서, 갑자기 내뱉는 말들을 녹음해서 다시 들으면서 그 말을 바꿔보기도 하고 그렇게 연습했어요. 또 중간에 서구완이 약을 끊으면서 그 증상이 더 심해지고, 피해망상 같은 것도 더 커지거든요. 그런 부분에 집중해서 인물을 그려내려고 했어요.


고현정 배우와 붙는 장면이 있잖아요. 현장에서 같이 연기하시며 어땠는지 궁금해요.
저는 고현정 선배님의 작품을 보면서 자란 세대잖아요. 아까 캐스팅 과정 말씀드릴 때도 말했듯이 “너 고현정 선배랑 붙는 거 무서워? 못 하겠어?”라는 말이 저의 어떤 승부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선배님이랑 붙는 장면의 맥락이 감정적으로 맞서는 장면이기도 했어요. 많이 떨렸었는데, 선배님이 저를 보자마자 “우리 서구완 드디어 만났네. 너무 보고 싶었다” 라고 반겨주셔서 감사했어요. 제가 선배님의 멱살을 잡는 신이 있었는데, 그걸 제가 잘 수행을 못 해서 여러 번 테이크를 갔어요. 멱살을 잡으면서 연기해야 하는데 너무 죄송하잖아요. 꼭 고현정 선배님이어서가 아니라 상대 배우에 대한 매너도 그렇고… 그래도 잘 끝내야 했는데, 여러 번 가게 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근데 선배님이 너무 흔쾌히 “10번이고 20번이고 해도 되니까 전혀 걱정하지 마” 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다음에 내가 복수하는 신이 있잖아”라고도 말씀해주셨죠. 다음 장면에서는 제가 목이 졸리거든요. (웃음) 그런 농담으로 긴장도 풀어주시고, 덕분에 정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을 촬영하기에 앞서 체중감량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신 모습과 비교해 봤을 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거든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께서 상탈(상의탈의) 장면이 있는데, 근육은 많이 키우지 말라고 말해 주셨어요. 운동은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마른 몸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근데 그 기간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체계적인 식단을 갖춰서 건강하게 뺄 수 있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저녁 6시 이후에는 안 먹고 무조건 뛰었어요. 원래는 평균 체중이 79kg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거든요. 계속 관리하면서 최종적으로는 70kg까지는 뺐어요. 이 작품을 찍으면서 다른 작품도 같이 찍고 있었어서 극단적으로 빼지는 못했고요
앞으로는 어떤 캐릭터를 맡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작업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저는 어떤 특별한 캐릭터를 맡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요. 저를 믿고 맡겨 주신다면 어떤 캐릭터든 잘 해낼 자신은 있어요. 잘 해낼 자신보다는 열심히 준비할 자신이 더 있는 것 같아요.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을 찍으면서 우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을 다하고 정말 공들였는데요. 이만큼 제가 마음을 쏟고 온 힘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마지막으로 서구완을 정의한다면 어떤 말로 소개하고 싶으세요?
서구완을 정의한다기보다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난 너에 대해서 누구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좀 안타까운 부분도 있지만, 넌 선을 넘었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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