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사랑은 영원(Everlasting)했고, 그의 리듬은 치명적(Bad Mama Jama)이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감미로운 소울과 폭발적인 펑크(Funk)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대중을 사로잡았던 칼 칼튼이 우리 곁을 떠났다.
15일(현지시간) 유가족에 따르면, R&B의 전설 칼 칼튼(Carl Carlton)이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아버지가 고통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며 비보를 전했다.
◆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다
디트로이트가 낳은 천재 '리틀 칼'은 스티비 원더를 연상시키는 보컬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그의 이름이 전 세계에 각인된 건 1974년이었다. 로버트 나이트의 곡을 디스코 풍으로 리메이크한 '에버래스팅 러브(Everlasting Love)'는 빌보드 핫 100 차트 6위에 오르며 칼튼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증명했다. 이 곡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 광고, 결혼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불멸의 러브송으로 남아있다.
◆ 펑크의 제왕, 힙합의 스승
1981년, 칼튼은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리온 헤이우드가 작곡한 펑크 트랙 '쉬즈 어 배드 마마 자마(She's a Bad Mama Jama)'는 발매 즉시 클럽가를 강타했다. 이 곡으로 그는 그래미상 남성 R&B 보컬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오르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 감각적인 그루브는 후대 아티스트들에게도 큰 영감을 줬다. LL 쿨 제이, 윌 스미스 등 힙합 거물들이 그의 곡을 샘플링하며 존경을 표했고, 칼튼의 음악은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 시련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노래
그의 음악 여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레이블 매각과 로열티 분쟁으로 긴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고, 2019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0년 첫 가스펠 싱글 'God is Good'을 발표하며 신앙을 노래했고,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 꾸준히 투어를 돌며 팬들과 소통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던 전사"라고 회고했다. 육신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에버래스팅 러브'의 유산은 영원히 팬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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