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알찬 삼파전이다. 한 해의 시작을 여는 대목 설날 연휴를 겨냥한 세 편의 한국영화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월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 2월 11일 개봉한 〈휴민트〉와 〈넘버원〉 세 작품은 각각 다른 장르, 시대, 소재를 내세워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 작품은 희한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바로 각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의 전작이 작품 내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 그런 고로 이번 신작에 담긴 각 감독들의 전작 흔적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왕과 사는 남자〉 - 2012년 부산에서 조선의 영월로 온 배우들




폐위된 어린 왕이었던 이홍위(박지훈)와 그를 유배지에서 모시게 된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이야기를 그린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의 전작 〈리바운드〉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농구부의 실화를 다뤘던 만큼 둘 간의 접점은 영 없어보이는데, 두 영화를 모두 본 관객이라면 그 반가운 얼굴들 덕에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장항준 감독은 전작 〈리바운드〉에서 주연급 배우 셋을 〈왕과 사는 남자〉에서 꽤 중요한 역으로 배치했다. 먼저 부산중앙고 농구부를 맡게 된 강양현 코치 역의 안재홍은 〈왕과 사는 남자〉에서 엄흥도에게 '유배지=떡상'을 꿈꾸게 하는 이웃 고을 노루골 촌장으로 등장했다. 안재홍처럼 2012년 대한민국에서 조선시대에 온 배우는 정진운. 〈리바운드〉 배규혁 역에 이어 〈왕과 사는 남자〉에선 동지중추원사 조유례 역으로 점잖고 올곧은 충신으로 존재감을 남겼다.



그러나 여기,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 바로 엄흥도의 아들 엄태산을 맡은 김민이다. 〈리바운드〉에선 열정은 앞서지만 만년 벤치 신세 허재윤이었는데, 〈왕과 사는 남자〉는 능력은 있지만 신분의 한계로 좌절하는 엄태산이다. 사실 김민은 장항준 감독이 꽤 애정하는 배우로 보이는데, 두 장편 영화 사이 장항준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에서도 함께 했기 때문. 실제로 장항준 감독은 김민을 “볼 때마다 많은 가능성과 다양한 얼굴을 지닌 배우”라고 설명했다.
〈휴민트〉 - 편도 탄 표종성의 뒷이야기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디테일이 있다. 바로 2015년 영화 〈베를린〉을 언급하는 장면이다. 〈휴민트〉는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배경 때문에 공개 전부터 〈베를린〉과 연결될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샀다. 〈베를린〉에서 주인공 표종성(하정우)가 “블라디보스토크, 원 웨이”이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봤다면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인 엔딩이었고, 이번 휴민트가 ‘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또’첩보전이 벌어지는 영화였으니까.

그리고 공개한 〈휴민트〉엔 기대한 대로 〈베를린〉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북한 보위부 요원 박건(박정민)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의 대화에서 표종성의 행방이 암시된 것.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인데, 한편으론 박건이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다릅니다”라고 말하며 〈베를린〉 표종성의 여정이 정말 끝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됐다. 아마 표종성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건 류승완 감독도, 배우 하정우도 아닌 〈휴민트〉를 흥행시켜 ‘첩보 액션은 여전히 유효하다’를 입증할 관객들이 아닐까.
〈넘버원〉 - 부산 ‘찐맛집’ 소개 + 추억 한 스푼



배우라는 연결고리, 등장인물이라는 연결고리에 비하면 〈넘버원〉의 연결고리는 소소하다. 그러나 김태용 감독과 최우식의 인연을 아는 관객이라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미소를 띠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치킨집 ‘거인통닭’이다. 극중 하민(최우식)이 무척 애정한다는 이 치킨집의 이름은 당연히 두 사람이 10여 년 전에 첫 인연을 맺은 〈거인〉을 떠올리게 한다. 〈거인〉은 김태용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최우식의 첫 주연작이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모두 귀중한 작품이라 이렇게라도 이스터에그를 넣은 것이다……
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반전. 거인통닭은 진짜 있는 맛집 치킨집이다. 심지어 〈넘버원〉의 배경 부산에선 유서 깊은 치킨 맛집으로 유명해서 김태용 감독 또한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갔던 기억이 있을 정도라고. 한마디로 극의 배경 부산의 시민들에겐 각자의 맛집 기억을, 타지의 관객들에겐 김태용-최우식 듀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재밌는 우연이다. 어쩌면 김태용 감독이 의도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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