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편은 정확히 지금 이 시점에 나왔어야만 했다”. 메릴 스트립은 마치 미란다 프리슬리처럼 단호하게, 그러나 우아하게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아이폰이 나오기도 전 제작된 영화가, 20년이 지나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20년의 세월 동안, 비즈니스와 디지털, 출판, 패션계 등 세상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변했지만, 사실 사람이 사는 이야기와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기도 하다.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보여준 일하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삶과 연대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20년의 세월 동안,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가치로 남았으며, 누가 어떻게 성장했을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1편이 나온 지 꼭 20년이 되는 올해 관객들을 찾는다. 애타게 울리던 폰을 분수대에 던져버리며 ‘런웨이’를 떠났던 앤디(앤 해서웨이)는 20년 만에 ‘런웨이’의 기획 에디터가 되어 돌아왔고,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는 여전히 그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더욱 성숙해진 주인공과 변화무쌍한 미디어 세계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개성 가득한 인물들의 앙상블과 함께 말이다.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주역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가 참석한 내한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배우들이 전한 말을 옮긴다. 메릴 스트립은 이번이 첫 공식 한국 방문이며, 앤 해서웨이는 8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두 배우가 밝힌 20년 만의 재회 소감부터 한국 문화를 향한 각별한 애정까지, 단단하고 유쾌했던 기자간담회 현장의 말들을 옮긴다.

“20년을 기다린 이유, 속편은 딱 알맞은 시기에 당도했다”
메릴 스트립
속편이 나오기까지, 기다림이 길었다. 아이폰 1세대가 출시되기도 전 제작된 영화는 아이폰 18이 출시되는 해에 속편을 개봉한다.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린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메릴 스트립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메릴 스트립은 “‘우리가 왜 이걸(속편 제작을) 진작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냐고 하면, 아니다. 나는 이 대본이 정확히 지금 이 시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첫 영화가 시작되었던 때와 같은 방식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20년을 기다려야만 했던 정확한 이유다”라고 2편의 시의성에 대해 강한 확신을 드러냈다.
메릴 스트립은 “우리가 2006년에 만든 영화는 아이폰이 나오기 1년 전에 개봉했다. 그간,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라며 20년간의 엄청난 매체 변화를 언급했다. 메릴 스트립은 “그것은 출판계의 모든 것을 바꿨고, 우리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비즈니스는 파편화되었고, 우리는 이런 거대한 도전 속에서 어떻게 재정적 안정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 놓여 있다”라고 짚으며, 두 번째 영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됨을 강조했다.

“앤디가 미란다의 강력한 파트너가 되려면, 20년의 시간이 흘러야만 설득력이 있을 것”
앤 해서웨이
앤 해서웨이 역시, ‘속편이 왜 꼭 지금 나와야만 하는지’를 역설한 메릴 스트립에게 공감했다. 해서웨이는 “디지털 혁명이 우리 삶의 모든 측면, 특히 저널리즘과 패션 저널리즘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면서도 “아시다시피 앤디 삭스는 첫 영화에서 막 대학을 졸업한 22살이었고, 아이디어는 넘쳤지만 인생 경험은 조금 부족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는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에 나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래서 앤디는 기술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가졌으며, 경험을 쌓으면서 상당한 겸손함과 동시에 자신감을 얻었다”며 자신의 캐릭터 앤디 삭스의 20년간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앤 해서웨이는 “앤디가 미란다의 강력한 잠재적 파트너로서 당당히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만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20년 세월의 필연성을 되새겼다.

“70대 여성이 보스를 연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메릴 스트립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주체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다루며 전 세계 관객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미란다와 앤디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단순한 악인, 그리고 선인으로만 특징지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미란다가 세룰리안 블루 스웨터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나, 앤디에게 자신의 이혼을 고백하는 장면 등을 통해 ‘미란다’ 캐릭터는 평면적인 ‘악마’로만 그려지지 않게 됐다.
메릴 스트립은 미란다라는 캐릭터가 갖는 상징성에 대해 “미란다를 대변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어느 영화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70대 여성이 ‘보스’를 맡는 건 흔치 않다. 그래서 내가 이런 역할을 대변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대중문화 속에서 나이 든 여성들의 관심사와 의견은 종종 평가절하되곤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위치에 올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런 인물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라고 고백했다. 만 76세인 메릴 스트립은 “최근 안나 윈투어(보그 편집장, ‘미란다’의 모델로 알려진 인물)와 화보를 찍었는데, 그는 76세다. 사진을 찍는 분 역시 76세였다”며 70대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년 동안, 앤 해서웨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메릴 스트립
2006년, 앤 해서웨이는 커리어의 시작점에서 메릴 스트립을 만났다. 앤 해서웨이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22살 때, 22살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극 중 앤디에겐 엄청나게 강력한 상사가 있었고, 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풋내기 배우였다. 그리고 그건 가장 놀라운 선물이 되었다. 어린 배우로서 커리어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것은 매우 불안하고 취약한 상태였지만, 이 영화는 수많은 문을 열어주었고, 수많은 기회를 주었다”고.
앤 해서웨이는 1편을 찍을 때 “메릴의 연기력과 파워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메릴 스트립에게서 배운 점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케미스트리는 그저 메릴이 훌륭하게 이끌어주면 제가 경외심을 가지고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되었다”고 덧붙이며 1편과 2편에서 메릴 스트립과 호흡한 소감에 대해 전했다.
메릴 스트립 역시 “우리 사이에 다시 불붙은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앤을 어린 소녀가 아닌 완벽하게 성숙한 여성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뻤다”고 앤 해서웨이의 호흡에 대해 긍정적으로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20년간, 앤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앤은 변함없이 너무나 신선하고 매 순간에 진심이다”라며 20년간 앤 해서웨이는 본질을 잃지 않은 채 훌륭한 배우로 성장했음을 극찬했다.

“내가 기획 에디터라면, 한국의 스킨케어에 대해 다루고, 박찬욱, 봉준호를 인터뷰할 것”
앤 해서웨이
앤 해서웨이는 이번 내한 일정이 너무 짧아 아쉽다며 “오랫동안 버킷리스트에 담아둔 별마당 도서관을 가보고 싶었다. 일정을 마치고 나면 잠깐 시간을 내어 달려갈 수도”라며 8년 만에 한국에 온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처럼 자신이 기획 에디터라면, 한국의 어떤 것을 다루겠냐는 질문에는 “한국은 젊은 문화에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음악, 패션, 스킨케어가 그렇다. 패션 에디터라면 그 점을 다루겠지만, 배우로서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해 보고 싶다”고 답했다.
한편, 메릴 스트립은 “나는 코리안 바비큐에 관심이 많다”고 답하며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그는 “나에게는 6명의 손주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은 K팝을 전부 안다. K-컬처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내가 자랄 때는 세상이 이토록 연결되어 있지 않았는데, 우리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좋은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기자간담회가 마무리될 즈음, 두 배우에게 특별한 선물이 전달됐다. 영화 속 아이코닉한 붉은 하이힐과 한국의 전통 꽃신을 결합해 재해석한, 세상에 단 두 켤레뿐인 구두였다. 메릴 스트립은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은 처음 보았다"고 했고, 앤 해서웨이는 "말을 잃었다. 섬세하면서도 즐거운 이 구두를 집에 가져가서 평생 간직하겠다. 이 특별한 경험을 바라볼 때마다 떠올릴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4월 29일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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