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실패,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상자 속의 양'으로 말하고자 한 것들 ②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상자 속의 양〉에 관한 이 글은 1부에서 이어집니다.


애니미즘적 감각의 회복

〈상자 속의 양〉
〈상자 속의 양〉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은 자연물과 자연현상에 영혼이나 정령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일본의 전통적인 애니미즘 사상과 연결된다. 고레에다는 이번 영화에서 애니미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는 영역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자연과의 연결과 순환을 전제로 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다.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자연의 연결과 순환 안에서 살아있으며, 망자는 자연과 생명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감응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AI의 네트워크가 나무와 자연계의 네트워크에 가깝다는 상상력에서 착안한 이 영화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을 따라서 움직이는 AI와 우드 와이드 웹(숲의 나무들이 곰팡이 균사 네트워크를 통해 영양분과 정보를 주고받는 유기적 연결망)으로 소통하는 나무의 공통점을 끌어낸다. 영화에서 카케루와 유기된 휴머노이드, 학대받은 인간 아이의 무리는 그들이 함께 살아갈 새로운 터전을 숲에 마련한다. 이러한 결말은 자연의 순환을 전제로 한 애니미즘에서 기인한다. 카케루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영역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어 존재하게 된다.

〈상자 속의 양〉
〈상자 속의 양〉

그러나 감독은 근대적 합리주의에 의해 현대인이 영성을 잃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고레에다는 인터뷰에서 “인간에게는 본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스스로 상상하는 힘이 있었을 텐데, 이제는 그것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도 오토네는 카케루에게 ‘상자 속의 양’에 대해 알려주며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의 작업 방식을 계승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에 머문다. 켄스케 역시 과거에는 죽은 나무의 혼을 믿으며 애니미즘을 토대로 사고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상자에 갇혀 있지 않고, 자연의 연결 속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카케루의 모습을 보고 다시 자연의 존재를 감각하고 영성을 회복한다. 〈상자 속의 양〉은 부재한 존재를 붙드는 것도, 지워 없애는 것도 아닌,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매 순간 직관적으로 깨닫는 애니미즘적 감각의 회복으로 진정한 애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바다에서 숲으로 향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

〈괴물〉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괴물〉(2023)을 기점으로 아이들을 숲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본래 그의 영화 세계는 〈환상의 빛〉(1995), 〈걸어도 걸어도〉(2008),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 등(〈어느 가족〉에서는 대안 가족을 이룬 인물들이 일시적으로 완전한 유대감을 느끼는 공간으로 짧게 등장한다) 주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고레에다의 영화에서 바다는 삶과 죽음이 수평적으로 맞닿은 공간이자 부재하는 존재를 기억하는 성찰적 공간, 남겨진 이들이 슬픔을 삼키는 애도의 공간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바다는 결국 상실로 인한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정서적 정화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처럼 그의 영화에서 바다는 주제 의식을 반영하는 주요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고레에다가 바다를 지나서 숲으로 향하는 변화는 단순한 주요 공간의 변화를 넘어서, 그가 상실을 대하는 태도와 존재를 구원하는 방식의 변화를 시사한다. 그의 최근작에서 숲은 억압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가 해방되고 재생되는 생태적 안식처로 그려진다. 〈괴물〉에서 숲의 폐기차 공간은 아이들이 학교 폭력이나 가정 내 학대와 같은 억압적 환경(학교, 집)을 벗어나서 도달하는 공간이자 그들이 ‘괴물’로 낙인찍히지 않고,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공간이다. 다만 〈괴물〉의 유토피아는 어른들의 오해와 규범 바깥에서 잠정적으로 부여된 은폐된 피난처에 가깝다. 이러한 숲의 의미는 〈상자 속의 양〉에 이르러 SF적 상상력과 역사적 의미를 결합하여 더 확장된다.

〈상자 속의 양〉
〈상자 속의 양〉

〈상자 속의 양〉에서 숲은 히로시마에 위치해 일본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히로시마 원폭,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일본의 거대 참사에 관한 기억을 지하의 수맥처럼 품고 있다. 감독은 아이들을 이곳으로 보냄으로써 참사 이후의 공동체, 미래 세대에 관한 사유를 드러낸다. 동시에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 비극과 희생자에 관한 기억을 붙들어 두기보다, 자연의 순환적 영역으로 놓아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게 그는 휴머노이드 아이들을 참사의 과거를 비추는 도구가 아닌 독자적인 미래로 긍정한다. 영화에서 아이들 무리를 이끄는 휴머노이드 소년은 카케루에게 “너희는 인간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말한다. 이는 감독이 그들을 참사의 기억을 되감는 존재가 아니라, 이후를 살아갈 존재로 명명하는 순간이다. 동시에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은 더 이상 사회에 남아 있는 상실의 잔여물이나 참사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숲은 도시의 제도와 언어가 작동하는 세계를 벗어나 자연과 이질적인 기계,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직한다. 이곳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다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다. 이때 숲은 비극의 기억을 지우는 곳이 아니라, 그러한 기억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장소다. 감독은 숲을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열어젖히길 바라는 희망의 장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고레에다의 최근작에서 보이는 이러한 경향은 그의 점점 더 짙어지는 생태주의와 탈성장적 사고를 엿보게 한다. 동시에 숲은 바다보다 사회로부터 더 고립된 공간으로 묘사되며, 현대 사회 체제를 더욱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감독의 씁쓸한 변화를 목도하게 한다.

영화인

위대한 실패,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상자 속의 양'으로 말하고자 한 것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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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10.

위대한 실패,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상자 속의 양'으로 말하고자 한 것들 ②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상자 속의 양〉에 관한 이 글은 1부에서 이어집니다. 애니미즘적 감각의 회복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은 자연물과 자연현상에 영혼이나 정령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일본의 전통적인 애니미즘 사상과 연결된다. 고레에다는 이번 영화에서 애니미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는 영역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자연과의 연결과 순환을 전제로 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다.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자연의 연결과 순환 안에서 살아있으며, 망자는 자연과 생명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감응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위대한 실패,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상자 속의 양'으로 말하고자 한 것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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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10.

위대한 실패,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상자 속의 양'으로 말하고자 한 것들 ①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장 야심 찬 작품이다. 그는 기존의 영화에서 반복해 온 대안가족 서사를 이어가면서도, 인간 중심적인 시선의 한계를 깨고 자연과 영성으로 대안가족의 경계를 넓히고자 했다. 동시에 가족 멜로드라마와 사실주의적 연출의 거장으로 굳힌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평소 SF를 즐겨온 취향을 전면에 드러내며 〈공기인형〉(2009)에 이어 다시 SF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의 야심은 지나친 나머지 한낱 욕심으로 끝나고 만 듯하다. 〈상자 속의 양〉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뒤 혹평을 면치 못했고, 필자 역시 이 영화의 만듦새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영화는 AI 윤리와 애도, 생태주의라는 여러 큰 주제를 성기게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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