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봄 양조위가 한국을 다녀갔다. 어느덧 환갑이 지난 양조위의 첫 유럽 진출 영화인 일디코 에네디 감독 〈침묵의 친구〉를 홍보하기 위해, 2008년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이후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것은 무려 18년 만이다. 〈침묵의 친구〉는 은행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1908년 대학생, 1972년 청년, 2020년 신경과학자 등 서로 다른 세 시대의 인물들이 삶과 학문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양조위는 2020년 독일 대학에 초빙된 홍콩 출신 신경과학자 ‘토니’를 연기한다. ‘침묵의 친구’라는 제목 자체가 언제나 말보다는 깊은 눈빛으로 우리와 만나온 양조위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감독은 양조위의 영어 이름 ‘토니’를 그대로 영화에 썼다.

2020년대 들어 양조위는 계속 ‘변화’를 언급했다. 물론 과거에도 악역 연기를 한 적 있지만, 할리우드로 건너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일원이 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에서 빌런 ‘웬우’를 연기한 것을 기점으로 〈무명〉(2022), 〈풍재기시〉(2023), 〈골드핑거〉(2023) 등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줬다. 아마도 그 현재와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작품은 바로 리안 감독의 〈색, 계〉(2007)일 것이다. 리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2005)을 개봉하고서 갑자기 〈색, 계〉(2007)에 홀렸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각각 애니 프루와 장아이링,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두 여성 작가의 원작 소설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욕망’을 뜻하는 색(色)과 ‘금기’를 뜻하는 계(戒)가 연결된 〈색, 계〉라는 제목은 표면적으로는 ‘금지된 사랑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뜻한다. 그렇게 〈색, 계〉는 ‘계’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침울한 공기 속에서 ‘색’에 탐닉한 두 주인공의 필연적인 고통을 그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홍콩으로 간 왕치아즈(탕웨이)는 홍콩대학교 연극부에 가입한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급진파 광위민(왕리홍)을 흠모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가 주도하는 항일단체에 몸담게 된다. 그들은 친일파의 핵심 인물인 이(양조위)를 처단하려는 암살계획을 세우고, 왕치아즈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막 부인’이라는 새로운 역할로, 이의 아내(조안 첸)의 친구가 되어 그에게 접근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상대를 신중하게 대하고 경계하던 이는 조금씩 유혹에 빠져든다. 왕치아즈도 자신이 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고, 언제나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이는 왕치아즈 또한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라 의심하면서도 그를 거부하지 못한다.

원작과 비교해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는, 역시 빌런 ‘이’에 대한 묘사다. 원작 속 이는 볼품없고 초라한 외모의 남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 자와 사랑에 빠져 임무를 망각하는 스파이라는 설정도 꽤 의미 있지만, 원작에 전혀 없는 성애 묘사를 전면에 배치하여 색에 빠져드는 스파이라는 설정을 전개할 수 있었던 데는, 전적으로 양조위라는 배우가 있기에 가능하다. 쉽게 말해, 현실의 양조위처럼 첫눈에 반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이 영화 〈색, 계〉의 핵심이다. 아무리 단편이라도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는 왕치아즈의 마음을 단숨에 흔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색, 계〉에서 양조위의 첫 등장은 그의 압도적인 눈빛을 가리면서 시작된다. 막 부인이라는 가짜 신분으로 이의 아내에게 접근하는 왕치아즈가 이의 집의 드나들 때, 이는 자동차 차창 밖으로 얼굴의 하관으로만 등장한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가 양조위라는 것을 관객 그 누구도 모르지 않을 텐데, 리안은 이의 목소리만 듣게 되는 왕치아즈의 자리에 관객을 둔다. 그리고 그것이 〈색, 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 공교롭게도 이 또한 왕가위의 다른 영화 〈중경삼림〉(1994)에서 양조위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과는 정반대의 방법이다. 건너편 건물 벽 앞에서 경찰 업무를 보다가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양조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가까이 다가와서는 빅 클로즈업으로 모자까지 벗으며 얼굴을 들이민다. 이것도 양조위의 시선을 도저히 피할 길 없는 페이(왕페이)의 자리에 관객을 두는 방식이다. 〈색, 계〉도 〈중경삼림〉도 양조위라는 존재를 알고 있는 관객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이다. 어쨌거나 거기서 벌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흥미롭게도 원작 소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영화 속 정사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정사신은 굉장히 가학적으로 펼쳐진다. 이가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권력자라는 것을 드러내고, 또한 경계심을 유지하기 위해 왕치아즈가 자신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중에 우연히 눈이 마주치게 됐을 때 굉장히 당황한다. 왕치아즈의 반응도 중요하다. 관계가 끝난 다음 살짝 웃는데, 그건 쾌락과 무관하게 이를 속이려는 자신, 즉 왕치아즈가 아닌 막부인으로서의 연기가 먹혀들어서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만족의 웃음일 거다. 그러다 두 번째 정사부터는 서로의 감정 교류가 이뤄지면서, 진짜 연인의 관계처럼 펼쳐진다. 〈색, 계〉가 결국 ‘색’이 ‘계’를 넘어서는 영화라고 한다면, 마침내 색과 계가 동일 선상에 놓이는 정사신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세 번째 정사신이 중요하다. 이때부터는 진짜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중요한 장면은 왕치아즈가 옆에 걸린 권총을 흘깃 쳐다보는 장면이다. 이를 쏴 죽여서 임무수행을 끝낼 수 있는 순간임에도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관계가 끝난 다음 울게 된다. 자신이 왕치아즈가 아닌 막 부인으로서 정말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것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치아즈가 이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감정의 묘사는 연극성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묘한 흐름을 만든다. 거기에는 리안의 자전적인 체험이 녹아 있다. 과거 1970년대 대만 타이베이의 예술아카데미를 다니던 그는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오래도록 자신의 몸을 떠나지 않던 어떤 격렬한 에너지에 전율한 적 있다. 삶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연기, 혹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연기와 어떻게 철저히 구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장아이링의 원작도 왕치아즈가 무대 위에서 공연을 마치고 난 직후의 감정을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폭풍과도 같은 격렬함’이라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색, 계〉는 그 폭풍과도 같은 격렬함을 체험한 아마추어 연기자 왕치아즈가 그보다 더 큰 무대, 그리고 이라고 하는 거대한 벽을 만나 자신의 연기를 꽃피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색, 계〉는 단지 항일운동가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적과의 동침에 빠진 한 여성의 고뇌를 그리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연기일 뿐’이라는 연기자로서의 자존심, 그러니까 자신의 연기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는 ‘계’의 이성이 어느덧 ‘색’의 본능으로 화하게 된 것이다.
▶ 〈색, 계〉와 양조위에 관한 글은 두번째 기사로 이어집니다.
※ 오르페오 한남에서 4월 26일 〈화양연화 특별판〉 상영을 시작으로 5월 23일 〈해피 투게더〉, 6월 13일 〈중경삼림〉으로 이어진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출간 기념 ‘양조위 특별전’은 8월 1일 〈색, 계〉 상영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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