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반드시 목격해야 할 하나의 이야기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신성한 나무의 씨앗〉


<성스러운 거미>(2022, 감독 알리 아바시)가 16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거미'와 그를 비호하는 다양한 층위의 군상을 비추며 이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폭로한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2000년에서 2001년 사이 일어난 실제 사건을 각색한, 남은 자들이 살아갈 미래를 비관하는 이 부조리극에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신성한 나무의 씨앗>(2024)을 본지 한참 됐지만 한동안 외면했던 이유다. 여전한 여성들의 고통에 변할 수 없다는 체념이 일었다.

그러나 개봉 후 다시 마주한 영화 속 이란 여성들은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삶과 자유를 향한 투쟁의 진실은 인스타그램 릴스와 유튜브 쇼츠에 있다고 믿으며, 제 몸을 지키기 위해 유튜브에 방아쇠 당기는 법을 검색하는 이들. 그들의 존재는 저항이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했음을, 시대가 이미 변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이란 여성들을 다시금 투쟁의 주체로 호명해 아직 좌절하기엔 이르다 말하는 이유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신성한 나무의 씨앗〉


영화는 2022년 이란 전역을 뒤흔든 '히잡 혁명'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당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구금된 뒤 사망한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라 발표되었지만, 구타에 의한 사망이라는 목격자 증언이 잇따르며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이 거짓된 발표는 곧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 아래 전국적 시위로 번졌고, 히잡 반대 운동은 이란 체제를 정면으로 겨누는 저항으로 확장된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감정적 기저로 삼아, 격렬한 거리의 저항이 중산층 가족의 붕괴와 윤리적 갈등을 야기하는 과정을 세밀히 추적한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 이만(오른쪽)
〈신성한 나무의 씨앗〉 이만(오른쪽)


이만(미사그 자레)은 히잡 반대 시위가 격하되던 시기, 수사판사로 승진해 시위 진압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정치적 위치에 놓인다. ‘가족의 안전’을 명분으로 총기를 지급받고, 체제에 충성하는 그의 일상은 어느새 거리낌 없이 사형을 구형하는 단계에 이른다. 하지만 타인의 운명을 재단하는 일은 결코 무감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내면의 혼란은 점점 깊어지고, 도덕의 균열은 불면의 밤으로 이어진다. 이 불안은 단지 개인의 양심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 내부의 충돌로 증폭된다. 특히 두 딸, 레즈반(마흐사 로스타미)과 사나(세타레 말레키)는 체제에 대한 정치적 각성을 통해 아버지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질문하기 시작한다. 스마트폰 영상과 SNS를 통해 외부 세계의 진실에 눈을 뜬 이들은, 더 이상 가정의 질서에만 머물지 않겠다 선언한다.

장녀 레즈반이 또래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점차 분명한 정치적 언어를 획득하고, 체제를 부정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사이, 막내 사나는 언어보다 조용한 관찰과 실천을 통해 자신의 판단을 드러낸다. 특히 직접 행동하는 사나 캐릭터는, 히잡 혁명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10대 여성들의 이미지와 정확히 포개진다. 사나는 격변하는 이란 사회에서의 새로운 주체, 즉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다음 세대’를 대변하며, 이만의 권위가 무너지고 새로운 윤리가 자리 잡는 전환점의 실체를 보여준다. 영화가 여성 인물들의 시선을 다층적으로 직조하는데 가운데, 이만의 아내 나즈메(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체제에 순응하며 가정의 안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인물로 등장한다. 남편을 다독이고, 딸들을 억압하는 그의 태도는 겉보기에는 보수적이지만, 사실상 가부장의 권력 아래에서 폭력의 방향이 가족 내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절박한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그의 침묵과 인내, 때로는 집착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은 체제와 가족 사이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 삶을 지키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복합적인 초상이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신성한 나무의 씨앗〉


부조리에 대한 각성은 시위 도중 탄환 파편이 박힌 레즈반의 친구 사다프(니우샤 악쉬)를 엄마 나즈메가 치료하는 과정에서 고조된다. 사다프의 얼굴에 박힌 탄환 파편을 나즈메가 손으로 꺼내는 장면은 압도적인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폭력이 집 안으로 들어왔음을, 일상이 더 이상 평화로울 수 없음을 암시하는 이 장면은 사회의 균열이 가장 사적인 공간에까지 도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가족 내부의 균열은 더욱 선명해진다. 레즈반은 "방송은 모두 거짓"이라 단언하고, 이만은 여전히 공권력의 정당성을 주창한다. 이 갈등은 곧 집에서 총이 사라지는 사건으로 전환되며 서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사라진 총은 극 중 서스펜스를 견인하는 장치이자, 가장으로서의 이만이 지니고 있던 통제와 위신의 상실을 상징한다. 무장이 해제된 이만은 자신이 대표해 온 체제와 권력의 균열을 감지하고 폭주한다. 단란했던 가족은 그렇게 한순간 붕괴된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다큐멘터리와 스릴러, 서스펜스, 사회 고발극이 한데 뒤얽힌 ‘장르의 혼성체’다. 총이라는 오브제를 중심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가족은 무너지고, 거리의 진실은 다큐적 형식으로 삽입된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형식이지만, 그 혼종성은 현실 자체의 복잡성과 닮아 있다. 제70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은 <집념의 남자>(2017),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 황금곰상을 수상한 <사탄은 없다>(2020) 등의 영화를 통해 이란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쳐 온 거장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정치적 서사와 영화적 실험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지 영화로만 머물지 않는다. 촬영 중 여배우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 영화가 국가 안보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란 당국은 감독에게 징역 8년과 태형, 재산 몰수형을 선고했다. 이에 감독은 투옥과 망명의 갈림길에서 결국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향했고, 영화는 그 자체로 실존적 투쟁의 결과물이 되었다.

배우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만의 아내 나즈메를 연기한 소헤일라 골레스타니 또한 본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태형 74대와 징역 1년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했으며, 현재는 출국 금지 조치로 시상식 참석은 물론 국제 활동도 전면 금지된 채 테헤란 자택에 연금돼있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과 함께 이란을 탈출해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딸 역할의 두 배우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 또한 망명을 선택해 현재 독일 베를린에 체류 중이다.

2024년 칸영화제는 이 영화의 의미를 기려 '심사위원 특별상'을 신설해 수여했다. 지금 반드시 목격해야 할 단 하나의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6월 3일 개봉해 극장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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