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귀여운데, 방송국에서 퇴짜를 맞았다.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나오는데,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다. “만화는 어린애들이나 보는 것”이란 구시대적 발상에 제대로 카운터 때리는 만화 「타코피의 원죄」가 애니메이션이 돼 돌아왔다, 해외에선 이미 7월 첫째 주부터 매주 1화씩 공개 중이고, 국내는 7월 18일 첫 방영을 시작했다. 해피별 외계인 타코피와 인간 소녀 시즈카의 이야기는 해외에서 ‘리액션 붐’이 일어날 정도로 짜릿하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 걸까. 반전의 드라마, 낚시의 예술, 사전 경고가 꼭 필요한 〈타코피의 원죄〉를 만나보자.
〈타코피의 원죄〉는 아이러니 그자체다. 작품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작품 자체도 그렇다. 이 작품은 아무것도 모르고 볼 때 그 파급력이 배가되지만, 반대로 작중 ‘트리거’(고통스러운 경험을 상기하는 요소)가 상당해서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경고문을 삽입했다. 그 문구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본 작품에는 일부, 생명에 관계되는 민감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작의 의도를 존중하여 영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결코 해당 행위를 권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제 아무리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도 극한의 고통, 환경, 심리적 상태를 묘사하는 것을 보기 힘든 시청자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해피별 외계인 응우에이누kf는 지구에서 시즈카라는 소녀를 만난다. 시즈카는 말끝마다 ‘피’라는 어미를 쓰는, 이 문어를 닮은 외계인에게 ‘타코피’(타코는 문어를 뜻하는 일본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행복함을 최고로 치는 해피별에서 온 타코피는 시즈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시즈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려는 타코피의 마음과 달리 시즈카의 일상은 이미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고,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분홍빛 동글동글한 타코피와 그가 시즈카에게 주는 여러 도구들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도라에몽」이 떠오른다. 현재의 과학으론 도달하지 못한 기술의 도구로 주인공을 도와주려는 두 캐릭터는 분명 선하다. 그러나 도라에몽과 타코피에겐 큰 차이가 있는데, 인간에 대한 이해도다. 도라에몽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만든 로봇이라서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있는 편. 그러나 해피별에서 온 타코피는 인간의 생물적 특징만 이해할 뿐, 인간의 특징과 사회는 무지하다. 그렇기에 그는 시즈카가 말하는 “어차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니까”에 담긴 속뜻은 모른다. 해져버린 가방과 얼굴에 생긴 상처, 누군가가 지나갈 때면 공터에 숨는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 모두가 행복을 지상 과제로 삼은 해피별의 타코피이기에 더욱더.
결국 인간에 대한 몰이해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시즈카의 행동에서 전조를 읽지 못한 타코피는 이 파국을 수정하려 한다. 그러나 그가 노력하면 할수록, 또 다른 극단적 상황이 이어진다. 타코피의 도움은 시즈카를 괴롭히는 마리나를 자극하게 되고, 마리나는 시즈카를 더욱 괴롭힌다. 폭력, 괴롭힘 등을 모르는 타코피는 그제서야 시즈카의 괴로운 상황을 이해하지만, 사태를 결코 쉽게 진화되지 않는다. 언제나 모범생인 반장 아즈마가 시즈카를 챙기려하지만, 그것만으론 근본적인 괴롭힘을 저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러니는 여기서 또 발생한다. 마리나는 시즈카를 ‘그냥’ 괴롭힌 것이 아니다. 그 괴롭힘의 원흉이 드러나는 순간 시청자는 자신도 모르게 마리나의 행동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만다. 괴롭힘 자체는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 이 어린아이 나름의 이유가 있단 사실은 시즈카나 마리나나 사실은 별반 다를 거 없는 어린이란 사실을 뼛속깊이 느끼게 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마리나야말로 피해자가 되고 시즈카야말로 이해 불가의 가해자로 변모하며 시청자를 더욱 혼란으로 밀어넣는다.

그렇게 〈타코피의 원죄〉는 아이들을 내세웠지만, 결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부조리를 전한다. 일어나는 일을 쉽게 거스를 수 없는 아이들이 느끼는 고통은, 이 일련의 비극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부조리 앞의 무력함을 느끼게 한다. 행복을 안겨주기 위한 타코피의 행동에 왜 ‘타코피의 원죄’라는 말이 붙었는지 그 진상이 드러나게 될 때는 겹겹이 쌓인 부조리와 아이러니의 운명을 절감한다. 그리고 그 원죄는 타코피라는 외계 생명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는 어른들의 세계에도 산재한다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더 큰 탄식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 끝마저 부조리한 건 아니다. 순간마다 작게나마 전진하려는 발걸음은 작품 말미, 크나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비록 이 비극의 극복 또한 모순으로 점철되지만, 그것을 감당하려는 용기는 기필코 희망이란 작은 씨앗을 발화시키는 영양소가 된다. 그리하여 타코피의 ‘원죄’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폭력의 현상을 전복시키고 미약하게나마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연다.
불안과 고통의 시간, 그러나 옅게나마 번겨가는 희망과 살아감의 발걸음. 〈타코피의 원죄〉가 원작에서부터 전한 메시지는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도 또렷하다. 쉽게 용납될 수 없는 소재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제작진의 용기가 시청자들에게 각자의 ‘원죄’를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타코피의 원죄〉는 OTT 플랫폼 ‘라프텔’을 통해 7월 18일부터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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