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콘텐츠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시대지만, 지난 콘텐츠를 다시 돌아보는 것의 중요성은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특히 해당 작품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그 변화의 씨앗을 안고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한국 영화영상 미디어에서의 성평등 재현을 돌아보기 위해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매년 주최 주관하는 행사 ‘벡델데이’는 지난 한 해 작품을 다시 살펴보며 업계와 관객들에게 성평등 인식을 개진하는 자리이다. 놓친 작품을 다시 살펴보는 기회이자 매해 변화하는 한국영화 영상계의 변화를 짚어볼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벡델데이에선 성평등에 기여한 작품 ‘벡델 초이스’를 선정하고, 이를 토대로 마찬가지로 성평등에 기여한 감독, 작가, 배우, 제작자 ‘벡델리안’을 선정한다. 올해 영화계 벡델리안은 〈딸에 대하여〉 이미랑 감독, 〈최소한의 선의〉 김수연 작가, 〈파과〉 이혜영 배우, 〈빅토리〉·〈하이파이브〉 이안나 제작자가 선정됐다. 씨네플레이는 올해 벡델리안 중 〈딸에 대하여〉를 연출한 이미랑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딸에 대하여〉는 치매병원 간병인으로 일하는 엄마가 얼떨결에 딸과 딸의 연인을 집으로 들이게 되며 겪는 일련의 이야기를 그린다. 돌봄 문화, 모녀 관계, 사회 속 동성애자를 향한 시선들 등 소수자의 입장을 이야기에 담백하게 녹여낸 영화로 오랜 시간 현장에서 연출부, 조연출로 활동한 이미랑 감독의 역량이 도드라졌다. 올해의 벡델리안으로 선정된 이미랑 감독을 만나 〈딸에 대하여〉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올해 벡델리안에 선정되셨어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뻔한 대답 같긴 하지만 너무 좋죠. 이 상의 의미를 모르는 분은, 남성 감독 포함하여 감독님들이라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특히 작은 영화 만드는 감독일수록 의미를 부여하는 거라 너무 좋았죠. 기분 좋았죠.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데요, 소설에서는 굉장히 내밀한 1인칭 시점으로 진행이 되잖아요.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서 3인칭으로밖에 진행할 수 없는데,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보신 부분이 있다면?
하나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원작이라는 소설이 있지만 소설은 문학이라는 매체 장르이고 영화는 또 다른 영상 매체니까요. 저는 이제 문학 공부도 했었고 영상 공부도 했고, 학부가 두 개여서 두 개의 차이를 실습을 통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어요. 두 개가 닮은 듯 보이지만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냥 접근 방식 자체를 그대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소설이 출판되고 읽었을 때는 그냥 너무 재밌게 읽었고요. 왜냐하면 주인공 시점으로 쭉 몰입돼서 진행되니까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제가 연출한다고 생각하고 시나리오 각색하는 문제는 완전 다르거든요. 2018년도에 소설을 읽고 2022년에 제가 (연출) 제안을 받았으니까 다시 읽었을 때는 아예 그냥 접근 방식이 달랐던 것 같아요. 모든 감독님이 그러실 텐데 각색할 때는 원작을 필사하거든요. 손으로든 타이핑으로든. 저는 타이핑으로 쭉 쓰면서 어느 부분을 누락시켜야 될지 어느 부분을 강화시켜야 될지, 그러니까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쭉 보는 거죠. 왜냐하면 영화는 구조화의 문제거든요. 문학은 구조도 구조지만 어떤 내면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도 공을 들이지만 영화는 그 내면의 표현이 영상 언어로 전환되니까 영상 언어로 전환되려면 실은 구조가 되게 바르게 잡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로 저는 건축가의 마음으로 벽돌을 쌓아 올린다고 생각하고 중요한 서사부터 정리를 했어요. 필사를 하면서 중요한 단락을 구분해 구조를 만들고 난 다음에 이제 불필요한 부분들은 누락하고 강화시키고 싶은 사건과 사건은 이렇게 이음새를 만들어서 더 이렇게 증폭 시킨 거죠. 저는 이 연습이 실은 꽤 여러 번 되어 있는 사람이었어요. 이전에도 원작 있는 작품으로 데뷔를 하려다가 계속 실패하고 〈딸에 대하여〉로 자연스럽게 넘어온 거여서 이 구조 파악이 조금 빠르게 된 후부터는 제가 감독으로서 영상 언어를 어떻게 표현할까, 쇼트의 문제로 되게 가볍게 잘 넘어갔던 것 같아요.

두 이야기가 완전히 따로 떨어뜨려 놓을 수 없지만, 〈딸에 대하여〉는 두 가지 면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요. 딸과 엄마의 얘기임과 동시에 보호사와 환자와의 관계죠. 후자는 한국 여성이 겪어온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한 얘기들이라 할 수 있고요. 혹시 감독님께서 보셨을 때는 어느 쪽에 좀 포인트를 두고 싶다 혹은 그런 부분이 있으셨을까요?
제가 이 소설을 맨 처음에 읽었을 때는 18년도였는데, 이 영화를 연출하기로 한 그때의 제 나이가 40대가 되고 나서였어요. 30대 후반에 (원작을) 읽었을 때와 40대가 넘어간 뒤니까요. 저 역시 감독으로서 비정규직 노동자인 거고, 또 사적인 얘기지만 저 역시 시간 강사인 거고, 여러 면면이 그린(임세미)과 레인(하윤경)의 나이를 지나왔다고 생각하니까 엄마(오민애) 마음에 되게 투영이 많이 되더라고요. 영화 연출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엄마한테 되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면서 엄마가 느끼는 공포감이라는 게, 제가 남성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혼자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되게 많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런 지점에 있어서 (저 자신이) 그린과 레인을 지나왔고 엄마에게 가고 있는 입장이고 언젠가는 재희(허진)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이 있었죠. 실은 촬영 분량도 엄마와 재희가 같이 찍은 신이 진짜 많았고 그린과 레인은 되려 적었어요. 어쨌든 그린과 레인의 이야기와 엄마와 재희의 이야기가 관통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야 주제가 하나로 묶이니까. 그 구조를 쌓는 데 굉장히 많이 고민을 하긴 했는데 엄마 마음, 그러니까 엄마의 정서로 설득이 되면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거 보는 우리의 여성 혹은 딸들도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이게 그냥 자연스럽게 정서적으로 구조가 엮이더라고요.
촬영 현장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출연하는 배우들이 워낙에 대선배셔서. 현장은 어떤 식으로 이끌어가셨는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주요 인물이 여성 4명인데, 제희 역을 하신 허진 선생님이랑 오민애 선배님은 저희 외할머니, 어머님 또래셨죠. 그린 역의 임세미, 레인 역의 하윤경 두 배우는 촬영분이 많지 않았어요. 의외로. 만나는 회차가 4회차, 5회차 밖에 안 됐거든요. 긴가민가한데 저희가 보충 촬영까지 26회차 내외였어요. 촬영분이 많은데 편집에서 워낙 많이 들어내가지고 그렇게까지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 역시 언니들이랑 자란 되게 모교 중심 사회에서 큰 여성이어가지고, 저희 제작사도 여성이고 PD님도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어렵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다만 조단역 배우님들도 저희가 되게 좋으신 배우님들이어서, 다른 영화에서는 거의 주연이신 배우님들인데 그분들 스케줄과 저희 4인 주요 여성의 스케줄을 맞추는 게 조금 전쟁 같았죠. 그런 물리적인 부분이 항상 어려웠지, 그 영화 속에 들어오는 캐릭터로서 다가가는 건 (배우들과) 대화하면 되고 자주 만나면 되고 서로 의견 듣고 조율해 나가면 됐거든요. 실은 제가 욕심이 많다 보니까 어느 캐릭터 하나라도 캐스팅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런 지점에서 스케줄 조율이 전쟁 같았고 PD님이 많이 고생하셨죠. 대신 그래서 정말 디렉션이 필요 없거든요. (뛰어난 배우들이니까) 어떤 인물인지만 서로가 대화 나누면 전부 그냥 알아서 하시니까 그런 배우들한테 계속 노크를 하게 되는 거죠. “한 번만 나와주세요” 이렇게.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좋았어요. 저는 영화를 보고 정말 인상적인 게 프레임을 짜는 방식이었어요. 카메라에 담긴 화면들이 정말 멋있고, 특히 대화 장면 같은 경우도 인물을 살리면서 그 구도를 만드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런 부분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보였어요.
그런 걸 알아봐 주시는 관객들이 계시면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당연히 신경을 쓰거든요.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신경 쓰고, 그 프레이밍 자체를 굉장히 고심해서 정말 한 조각 한 조각 엮어 나가는 작업이었어요. 확실히 시나리오가 영상화될 때의 문제는 아주 다른 문제거든요. 영상화라는 거는 뭐랄까요 아무것도 없는 흰색의 스크린 위에 하나 하나 다 채워 넣어야 할 수많은 걸 선택해야 되고, 수많은 걸 소거시켜야 되고 수많은 걸 결정해야 된다는 점에서 촬영 감독님이랑 진짜 많이 콘티 회의를 했어요. 촬영 나가기 전에 사무실에서 하고, 로케이션 잡히면 로케이션 가서 또 하는 거예요. 저는 데뷔작이기도 하니까 쇼트가 머릿속에 완벽하지 않으면 약간 불안하더라고요. 뭘 찍을지 본인이 모르고 있는 것만큼 길을 잃기 쉬운 게 없으니까. 그 프레이밍 하는 데 있어서 되게 집착하리만치 적확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동선은 꼭 이렇게 들어가면 이렇게 나가야 다음 프레이밍이 이렇게 잡히고, 그랬을 때 이 프레임이 이렇게 잡혔을 때 리액션 샷이 이렇게 잡히고. 여기 그림이 머릿속에 있고 그 촬영 감독님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구현해 주셨어요. 요새 관객들의 시각적 미각적 테이스트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이제는 영화 보고 “어 그림 괜찮네?” 해야 보거든요. 첫 오프닝이 구리면은 그냥 안 보는 거죠. 저도 그런 거죠. 독립영화라고 하면은 기본적으로 예산이 없으니 퓨어해 보일 수 있는 그림을 가질 수 있는데 저희 영화는 안 그래도 힘든데 화면까지 그래버리면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거예요. 어둡고 무거운 얘기를 하려면 보기라도 조금 좋아야 된다. 그런 생각이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래서 색감도 막 초록 하늘 되게 밝은 베이지 톤으로 썼고 그런 지점에 있어서 시각적인 구현에 엄청난 시간을 썼죠. 그래서 배우들이 조금 힘들어 하긴 했어요. 왜냐하면 배우들 동선을 잡을 때 배우들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을 거 아니에요. 본인의 정서가 움직인대로. 그런데 저는 정해져 있는 프레이밍 내에서 움직여주기를 원하니까 오민애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엄청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오민애 배우가 감독님을 '여자 나홍진'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했죠. 혹시 촬영지는 어디쯤이었을까요?
(엄마의 집은) 인천 미추홀구였어요 병원은 파주요. 요새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부지가 넓어야 되니까 경기도 남양주 양평 이런 데 대부분 있고요. 서울에는 별로 없고. 집은 마당이 있는 적당한 낡은 2층집이, 서울에서 찾은 건 다 으리으리해요. 이제 대출이 나올 것 같은, 너무 좋은. (웃음) 그래서 다 경기도로 나갔죠. 저희 제작팀이 진짜 하나하나 다 노크해가지고 그렇게 찾은 집이에요.

방금 준비하는 과정을 들었을 땐, 촬영하면서 변경된 부분은 많이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촬영을 준비하면서 이런 부분들은 좀 더 추가가 됐다던가 수정이 됐다던가 그런 부분이 혹시 있을까요?
전체적으로 볼 때는 시나리오가 굉장히 길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세밀하게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원작에 있는 중요한 부분들을 구조화 시키고 나니까 분량이 꽤 되더라고요. 다 찍고 나서 덜어낸 게 한 6할 정도 넘는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엔딩의 횡단보도 장면 있잖아요.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순서 편집을 다 하고 보니까, 저는 엄마의 감정이 잘 명확히 읽힌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들어보니 ‘잘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마음을 연 거냐 어떻게 된 거냐’ 하더라고요.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해서 횡단보도 장면을, 계절 지나고 해 넘겨서 가장 마지막에 찍은 장면이에요. 그래서 오민애 선배님 얼굴 인상도 약간 달라져 있어요. 약간 살이 붙어 계세요. 어차피 영화에 시간 간격이 있기 때문에 너무 자연스럽게 좋았고 그랬죠. 후반이나 편집 과정을 1년 가까이 했어요. 원래는 22년도에 찍었으니까 22년도 그 해에 부산(국제영화제)에 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편집이 완성이 안 되다 보니까 다음으로 넘겨졌죠.
정말 세심하게 신경을 쓰시는 스타일이신 것 같은데 혹시 장편 데뷔까지 시간이 걸린 것도 그런 감독님의 성향 때문이었을까요?
영화 보고 감독이 되게 세심하거나 뭔가 섬세하거나 그렇게 읽으신 분들이 많은데 실은 원작이 더 해요. 그런 부분은 제가 원작에 빚지고 있는 거고 저는 프레이밍, 그림과 사운드를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는 감독들은 다 이 정도는 하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 대부분 이 정도는 해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아요. 뭐 아주 없다고는 하지는 않겠지만 실은 제가 느긋해서 데뷔가 늦었어요. 그냥 급하지 않았고 놀 거 다 놀고 공부할 거 다 하고 연출부도 꽤 오래 했고. 저는 이제 급하지 않으니까 때 되면 (데뷔)하겠지 했는데 이제 40대가 딱 앞서 오면서 ‘아 지금은 해야겠다’ 싶어서 타이밍이 맞았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다른 감독님들처럼 시리즈도 썼다가 상업 장편도 썼다가 뭐 엎어지긴 했었는데 이런 것도 모두 다 겪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막 조급하거나 어떤 강박 때문에 늦어진 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놀았죠.(웃음)
현장에 계셨으니 마냥 놀았다고 하긴 어려운데요.(웃음) 조금 궁금하더라고요. 장편 데뷔까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셨을까 싶기도 하고. 데뷔까지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사례도 많다보니까요. 그러면 〈딸에 대하여〉를 끝내셨을 때는 어떠셨나요?
제가 졸업작품을 2004년도에 찍었으니 2000년대 초반에 작품 활동을 했던 감독인데 그 사이에 제가 이창동 감독님 연출부도 하고 장률 감독님 연출부도 하고, 여러 가지 작품들을 엎어졌어요. 거기다가 제가 또 대학원을 되게 오래 다닌 거예요. 먹고 살 방도를 하나 만들어 두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영화를 롱런할 수 있겠더라고요. 마음이 조급해가지고 데뷔는 했는데 먹고사는 것의 문제로 오면은 약간 막막할 것 같아서 어쨌든 안정적인 기반의 돈벌이와 영화를 같이 하자, 저는 이제 준비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리듬의 속도가 지금 젊은이의 속도들이랑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을 끝났을 때는 별생각 없었어요.(일동 웃음) 그냥 빨리 끝내자. 빨리 끝내고 싶은데 빨리 안 끝나는구나. 심지어 이게 23년도에 국제 첫 프리미어 상영하고 다음 년도에 개봉하고 지금까지 인터뷰를 하고 있잖아요. 영화가 이렇게 저 혼자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엄청 무섭네. 요즘은 이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는 그때 개봉하면 끝나는 줄 알았죠. 그 이후에 일이 더 많더라고요.
생명력이 길다는 게 그만큼 영화가 좋다는 또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위안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근데 실은 이게 〈딸에 대하여〉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원작이 그래요. 원작이 이미 노년의 삶과 외로움과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있잖아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클래식 고전이 되는 건데 그건 원작의 힘이지 영화 〈딸에 대하여〉의 힘은 아니거든요. 원작이 이미 출판됐을 때 수많은 독서 모임에서 텍스트로 선정을 해서 토론하고 모임하고 특히 어머님들 어느 사랑방 동네 가면 다 그 책 읽고 얘기 나누고. 근데 이게 영화가 됐어요. 그럼 영화도 이제 안 볼 이유가 없는 거죠. 이게 원작의 힘이지, 영화의 힘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그래도 저는 이 영화만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캐릭터가 되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캐릭터가 그 각자의 사정이 보이고 그게 전부 다 이해가 가는데 그러면서도 그 거리감이 되게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캐릭터들을 만들어가는 게 되게 좋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부분들도 감독님이 디렉팅을 하는 데 신경을 쓰신 부분인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저도 이번 장편을 찍고 나서 처음으로 깨달은 바는 어쨌든 감독 아닌 자연인 이미랑이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게 되는구나였어요. 이건 저뿐만이 아니라 제가 어떤 영화를 보고, 그러고 나서 그 감독님이 만나잖아요. 영화가 앉아 있어요. 영화라는 게 모든 게 선택이잖아요. 배우가 입는 의상, 배우가 쓰는 안경, 배우가 들고 다니는 가방의 색깔까지. 의상감독님이 이렇게 몇 개 추천해 주시면 선택하는 건 감독의 몫이니까 취향과 안목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단편 할 때도 약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장편 하니까 노골적으로 드러나요. 또 신인이니 불안함이 크니까 타인한테 선택을 맡겼을 때에 어떤 공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더 그때 열려 있지 못한 것, 유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지금은 되게 후회하는데, 그런 의미로써 4명의 캐릭터가 다 고집이 있잖아요. 그 고집이란 게 영화 찍을 때 저의 상태였던 거죠. 그게 다른 방식으로 세대가 달리해서 딱딱딱 드러나게 된 것 같고 고집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어떤 단점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은 저는 그런 사람한테 되게 끌리는 것 같아요. 자기 고집이나 자기주장이 있는 사람이 매력적이고, 그 매력적인 인물이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유연하고 물 흐르는 듯하고, 이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저는 늘 그런 인물을 선택하는 것 같고. 문제는 이런 인물들을 너무 밀착시켰을 때는 우리가 아는 이른바 ‘쉬운 갈등’이 나오기가 쉬운 것 같아요. 그냥 이렇게 언성을 높이면 끝나버리는 거잖아요. 고집과 센 사람들이 그런데, 저는 그런 대화 방식을 선호하지도 않고 그거는 이제 감정의 소통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이것도 되게 첨예한 문제들이 꼬여 있잖아요. 고집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귀를 닫고 전달할 때 거리가 필요한 거죠. 그래서 엄마가 그린과 레인을 받아들이는 그 속도감이 엄청 느렸잖아요. 60대의 여성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 느릴 텐데 심지어 딸도 고집 세, 레인도 고집 세, 엄마도 고집 세, 그러니 시간을 들이고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는 거죠. 저는 캐릭터가 그렇게 만들어지면서 거리 조절은 당연히 그렇게 된 것 같고 그리고 이 영화가 각자 세대가 다르고 그 세대가 느끼는 정서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저는 이 정도 거리 감각은 자연스럽게 드러났던 것 같아요.
지난 4월엔 시카고에서 상영을 하셨잖아요. 한국에서 상영했을 때랑 반응은 차이가 있었나요?
저희 영화의 또 다른 한계이긴 한데, 이게 퀴어라는 소재와 아시아 여성이라는 소재 안에 갇혀 있기 쉬운 거죠. 시카고에서 상영한 것도 아시안팝업시네마 영화제여서 관객들의 평균 분포도가 아시안인들이에요.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죠. 제가 도리어 조금 신기하다고 느낀 건 브라질 상파울루 영화제였어요. 백인 관객들이 되게 “가깝게 느꼈다”(라는 반응이었어요). 왜냐하면 요새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너무 많으니까. 제 또래 여성이 와서 “엄마 모시고 있어“ “보면서 계속 엄마 생각했어” 뭐 이런 리뷰들을 봤을 때는 이게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국가를 막론하고 어쨌든 돌봄이라는 게 자본이 없으면은 굉장히 좋지 않게 늙어가는 건 뭐 전 세계의 공통분모니까…. 돈을 많이 벌어두자.(일동 웃음)
영화를 공개하고 근 2년 정도가 되었어요. 많은 관객분들을 만나셨을 텐데 혹시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을까요?
있어요. 많은데요. 자기 딸이 이제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거 이해하고 싶어서 이 영화 보러 오신 어머니. 그래서 막 하소연을 하세요. 왜냐하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영화에 관련된 하소연도 하시고. 근데 그것조차가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더라고요. 그 딸을 그래도 이해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보러 오셨잖아요. 그것도 개봉 시간과 개봉 일자가 많지도 않은데 굳이 찾아서 오셨으니 그것도 너무 감사하고. 그리고 퀴어 소재가 있긴 있지만 뭐랄까 엄마까지 등장하는 퀴어 소재가 많지는 않다 보니까 엄마 떠올리면서 우는 당사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 행사하고 끝나고 나가면은 오민애 선배님한테 막 울면서 안겨요. 저는 미처 짐작하지도 못하지만 엄청난 고뇌와 고민과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은데 이제 본인의 엄마는 아닌 영화 속 엄마한테 안기는 거죠. 되게 많았어요, 젊은 여성들.

그전에 인터뷰를 하신 걸 보니까 사회가 점점 고독화돼 가고 1인 사회가 되어 간다라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재밌는 게 영화는 정반대로 예술 중에서도 대표적인 단체 작업이잖아요. 감독님은 그런 영화를 하고 계신데, 이런 부분에서도 의미를 두고 있으신가 궁금도 하고요.
1인 사회 혹은 개인 사회가 된 지는 너무 오래됐고요. 코로나 때문에 더 급속하게 빠르게 전개되긴 했지만. 저는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니까 그런 건 있어요. 옛날에는 이제 ‘밥 먹으러 가면 같이 갈래?’ 하면 같이 갔거든요. (요즘은) 가지 않아요. 그럴 필요 없죠. 저희 세대는 친구가 매점 가면 따라가야 되는 건 줄 알았으니까. 본인이 편한 방식의 소통의 관계를 찾아 나가는 게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요새는 생산과 효율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세대인 거잖아요. 공허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그러니 이해가 되는데 이게 영화 작업으로 넘어가면 조금 어려워진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작업으로 넘어오면 사람들이 떼로 모여가지고 작업하는 거다 보니까 서로의 언어의 방식을 이해해야 감독의 의중을 이해해서 그림이 나오는 건데 저도 이제 80년대생인데 연·제작팀은 90년대, 2000년대생인 거죠. 너무 다르죠. 왜냐하면 이 친구들한테는 (제가) 이모뻘 엄마뻘 감독인 거잖아요. 그랬을 때 저도 이제 고민을 되게 많이 해요. 어느 만큼 얘기해야 잔소리처럼 안 들릴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정서가 지금 이 친구가 느끼고 배우는 정서가 다르니까 이거를 세밀하게 설명을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건가 확인받고 싶으니까 말이 많아지고. 그랬을 때는 팩트 중심으로만 얘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감정을 소거하고. 제가 일하던 시기는 이제 비효율 그 자체였거든요. 연출부 출근하면은 계속 감독이랑 잡담만 해요. 잡담하면서 이렇게 툭툭툭 하나 나오는 것들이 시나리오가 되는. 굉장히 비효율적인.(일동 웃음) 그러니까 막 연출팀이 2~3년 하는 거거든요. 제 시작이 그랬다 보니까 그때는 그냥 재미있게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잖아요. 독립영화 같은 경우는 최대한 길어봤자 2, 3개월 안에 찍어야 그 예산을 소화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깊은 관계를 맺는 것조차 서로가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시스템을 빨리 적응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아니면 이제 전작을 한 스태프들과 같이 가는 게 제일 좋은 그림인 것 같아요. 동료를 만드는 게 특히 작은 영화에서는 관건인 것 같아요.
〈딸에 대하여〉에서 막바지에 레인이 제희의 죽음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부분은 독특하게도 순환구조처럼 구성을 하셨어요. 그렇게 구성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 영화가 보면은 그냥 정서 흐르듯이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영화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드라마예요. 전형적인 드라마트루기를 가진 장르 영화라고 저는 우기고 있는데, 이렇게 쭉 편집해서 붙이고 나니까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시나리오 쓸 때도 그걸 느꼈어요. 그냥 기승전결 이렇게 약간의 미세한 해피 엔딩. 이렇게 끝나는 구조가 형식적으로 너무 재미가 없어서 뭔가 감독이 드러나는 게 있다 하더라도 약간 꼬인 부분을 하나 만들어주자 생각했어요. 그랬을 때 형식적으로 이게 꿈인지 현실의 연속인지 혹은 누군가의 상상인지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 장면으로 그렇게 만든 거죠.

혹시 최근에 보신 작품 중에 백델에 어울린다 생각하신 작품이 있을까요? 영화나 드라마나, 문학도 좋고요.
요 근래도 등단작들은 꾸준히 찾아보는데, 실은 이 퀴어 문제나 여성 서사의 문제에 있어서 문학은 2 30년 전부터 앞서가 있었어요. 한국 영화는 정말 꾸역꾸역 (쫓아가느라) 너무 격차가 커요. 〈딸에 대하여〉나 〈럭키, 아파트〉 나왔을 때 약간 백래쉬 같은 이런 문화가 있었잖아요. 근데 소설은 2~30년 전에 그걸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문제는 아무도 안 읽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죠. 퀴어 문학이 10년~20년 전에 되게 활발하게 했었고 서사도 더 대담하고 지금의 문학들은 특히 작가 세대가 완전 교체됐거든요. 그래서 정말 기발하거든요. 그러니까 영화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근데 너무 안 보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죠.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은 이 영화 어떨까요? 이건 제가 지금 작업하고 있는 건데요. 이 작업 때문에 실은 책과 영화를 많이 못 보고 있는데 1955년도 〈미망인〉(감독 박남옥)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박남옥 감독님이 한국 영화사 안에 첫 여성 감독이자 첫 제작자였어요. 본인이 제작하고 본인이 연출한 작품인데 그 당시에는 여성 감독이 없었으니까 박남욱 감독님이 〈미망인〉이라는 이 작품을 만들었고, 그런데 필름 보관을 잘못해서 엔딩이 유실되었어요. 제일 중요한 엔딩이 유실되면서 지금 저를 포함한 〈부모 바보〉 이종수 감독님, 〈밤 산책〉 등을 만든 실험영화하시는 송구용 감독님, 그 세 명의 감독이 이 유실된 엔딩 장면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찍고 있거든요. 근데 이 작품이 기가 막혀요. 전쟁미망인 얘기인데 유교 사상이 얽혀 있지 않아요. (주인공이) 젊은 남자를 만나서 아이를 버려요. 그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본인의 욕망에 솔직한 선택을 하는 여성이거든요. 그런 의미로 되게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굉장히 흥미로운 텍스트예요. 저는 요새 그 영화를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다 보니까 그 영화가 미망인이 주인공도 여성이고 감독도 여성이고, 물론 그 여성이 남자에 의탁해서 서사가 전개되긴 하지만 벡델테스트를 해봐도 적어도 서너 개는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을 작업하고 있다보니 〈미망인〉으로만 머릿속이 가득 차가지고….(웃음) 다음 주쯤에 찍을 예정이고, 하윤경 배우님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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