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670' 박준호 감독, 조유현, 김현목 배우, “퀴어 커뮤니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①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박준호, 조유현, 김현목(왼쪽부터, 사진제공=이화정)
박준호, 조유현, 김현목(왼쪽부터, 사진제공=이화정)

종로3가, 낙원상가 인근의 뒷길은 성소수자들에게 알려진 지 오래다. 그 일대 익선동이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밀집한 핫플이 되기 벌써 오래 전, 이곳의 밤을 지배한 이들은 성소수자들이었다. 대로변에서 한참 밀려나 눈에 띄지 않는 미로 같은 지형은 법적, 제도적 장치를 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성소수자들에게는 즐겁고 안전한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정체성 고민이 아닌, 진짜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발산해도 좋은 곳!

〈3670〉은 발칙하게도, 대담하게도, 뻔뻔하게도, 자신 있게도. 그 ‘비밀 성지’의 문을 활짝 오픈한다. 종로3가, 6번 출구, 저녁 7시에 만날 사람? 알 수 없는 숫자 3670은 게이 커뮤니티의 술번개 암호다. 참여하고 싶으면 채팅방에 3671 을 입력하면 된다. 3672, 3673, 3674…. 숫자가 더해지고 모임은 성사된다. 엉덩이를 과감하게 보여주는 섹스 신으로 문을 연 영화는, ‘탐과 바텀’의 섹스 체위를 언급하고, 클럽에서 은밀하게 섹스가 이루어지는 ‘다크룸’이 고스란히 공개된다. 모두 세트가 아닌 100% 로케이션이다. 김조광수, 이송희일 감독 등 한국 퀴어영화의 계보로 일컬어지는 작품이 전개해 온 고민에서 한 발짝 더 나가, 〈3670〉은 아주 대놓고 작정이나 한 듯 대한민국 게이 커뮤니티의 좌표를 찍어 주는 영화다.

〈3670〉
〈3670〉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2011)에서 보았던 청년들의 삶에 〈대도시의 사랑법〉의 현실 멜로를 접목한 이 이야기의 관찰자는, 탈북 게이 철준(조유현)이다. 낯선 문화, 다른 말투로 차별의 시선에 갇힌 철준에게 이곳은 함께 끼어들어 어울리고 싶은, 흥미진진한 공간이다. ‘탈북인’이자 ‘성소수자’ 두 겹의 차별이 존재하지만, 〈3670〉에는 흔히 예상할 법한 고통의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텃새와 왕따 대신, 그곳에는 친근하게 손 내밀어 준 영준(김현목)이 있고 매일 밤 함께 놀아 줄 친구들이, 함께 섹스를 할 데이트 상대가 있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 현재, 우리가 영화를 보는 바로 2025년 게이 커뮤니티의 디테일한 관찰을 통해 박준호 감독은 우리 모두가 겪어 보았을 미숙하고 풋풋한 감정의 보편성을 획득한다.

단편 〈은서〉(2019)를 통해 여성 탈북자의 정체성의 연장선에서 그는 첫 장편으로 경계인으로서의 소외감을 다시 한번 집중 조명한다. 감독의 대범한 연출에 더해 이 낯선 서사에 몰입을 더하게 만드는 힘은 신선한 배우들의 발견이다. ‘탈북’도 ‘게이’도 관객의 호기 어린 시선, 궁금증을 유발할 이미지의 구현이라는 과제를 두고, 조유현과 김현목 두 배우는 각각 남북을 대표하는 청춘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형성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담보해 준다. 올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CGV싱 배급지원상, 왓챠상, 배우상(김현목 배우)으로 4관왕을 한 화제작. 개봉을 앞둔 지금 전달되는 관심어린 시선이 이들에게는 생애 처음이라며, 마냥 얼떨떨하고 즐겁다는 한국영화의 뉴페이스, 박준호 감독, 조유현 배우, 김현목 배우를 만났다.


〈3670〉 포스터
〈3670〉 포스터

캐스팅 과정부터 이야기해볼게요. 원석을 발굴한 캐스팅 같았어요.

조유현 감독님께서 인스타 DM으로 연락을 하셨어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백 영상을 보시고, 철준 역과 이미지가 잘 맞을 것 같다고.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건 꼭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감독님 단편 〈은서〉를 찾아봤어요. 미팅에 가서 질문도 하고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된 거죠.

박준호 감독 영화 하면서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지만, 늘 결국은 제 기준에 맞춰 하게 되더라고요. 캐스팅도 유명 배우 대신 제 눈에 맞는 배우를 선택했죠. 탈북자 게이 캐릭터는 자칫 타자화될 수 있는데, 관객이 이미 아는 배우 얼굴로 시작하면 선입견이 생길 것 같았어요. 낯선 얼굴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주변에서 우려 섞인 말도 들었지만 유현 배우에게 철준이 가진 순박하면서도 딴딴한, 자기 속이 꽉 찬 느낌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건 여기서 처음 이야기하는 건데요. 노출 신이 있다보니 몸이 중요했어요. 그런데 ‘듣보잡’ 감독이 오디션에서 “몸 좀 보여줘요” 할 수도 없었죠. 그런데 유현 배우 서칭을 열심히 하다가 10년 전쯤에 유현 배우 아버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배우님 바디 프로필 사진을 발견한 거예요. 그때 됐다 싶었죠.

박준호 감독 (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박준호 감독 (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조유현 그걸 어떻게 찾으셨어요? (웃음) 저희 아버지가 운동을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 영향으로 운동을 좋아하고요. 그때 아버지 아시는 사진작가님과 바프(바디 프로필)를 찍어 보자 해서, 갑자기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찍었어요. 그걸 아버지가 SNS에 올리셨어요. 부끄럽다고 내려달라고 했으면 큰일 날뻔했네요.(웃음)

김현목 저는 영준 캐릭터로 제안을 받고 감독님을 만났어요. 사실 배우 입장에서 이렇게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인물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배우는 한 번쯤 이런 캐릭터, 작품을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기다린다는 생각을 해요. 이건 정말 해야겠다 마음먹었죠.

조유현 배우 (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조유현 배우 (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박준호 영준 캐릭터 캐스팅이 쉽지 않았어요. 겉으로는 밝고 활발하지만, 내면은 복잡하고 어두운 면을 가진 인물이거든요. 대사마다 숨은 감정이 있는 인물이죠.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는데 현목 배우가 그런 면을 자연스럽게 잡아내더라고요. 현목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활발하고 장난스럽고, 모두가 좋아하는 ‘인싸’ 이미지인데 무표정일 때는 굉장히 생각이 깊어 보이고 무서울 정도로 차가워 보이더라고요. 제가 글을 쓸 때 떠올렸던 영준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3670〉
〈3670〉

단편 〈은서〉에서 부터 이어지는 지점은 바로 탈북자를 소재로, 경계에 선 사람들의 정체성의 고민일 텐데요. 이번엔 성소수자의 이야기로 이중의 벽을 경험하는 인물이 주인공입니다. 소재와 주제는 어디에서 출발한 건가요.

박준호 제가 여수 출신인데 나는 왜 회를 먹지 못하나, (웃음) 이런 사소한 것부터 영화제를 못 간 나는 감독인가 아닌가, 그런 고민도 많았어요. 사실 이전 단편 작업으로 큰 영화제에 가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늘 “나는 뭔가 부족한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왜 가닿지 못하지?” 고민되더라고요. 저 스스로가 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경계인, 이주인, 성소수자 문제에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탈북자들을 만나게 된 건 예전에 3년 정도 탈북 청년들을 대상으로 영어 가르치고, 자기소개서 봐주는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단단한 청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학생들에게서 본 모습이 철준 캐릭터에 많이 녹아들었죠.

김현목 배우 (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김현목 배우 (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한국 퀴어영화의 계보 안에서 이 작품의 위치도 점검하게 되는데요. 기존 퀴어물을 보고 자란 세대로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감독님만의 시선은 어떤 것이었나요.

박준호 선배 감독님들이 길을 닦아주신 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극영화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도 도 큰 유산이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이 작품을 만들면서 저는 조금 다른 시도를 하고 싶었어요. 흔히 퀴어 영화에서 주인공은 내가 소수자인가 아닌가 정체성을 고민하는데 할애하는 시간이 많은데, 그런 고민은 뺐어요. 퀴어인 건 시작부터 인정하고 가는 거죠. 또 하나는, 퀴어를 반대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항상 악역으로 등장하는 게 갈등의 구조인데 이 영화에 그런 인물은 없어요. 그 혐오를 재현하지 말자, 내 영화의 장면으로 담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혐오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대신 시야를 커뮤니티 내부로 한정했죠.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한국 게이 커뮤니티의 문화를 기록하는 것이 이번 영화의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3670〉
〈3670〉

정체성 고민을 넘어 보다 현실적인 생활을 다룬, 퀴어 작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시도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데요. 퀴어 커뮤니티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디테일하게 그런 건 처음이에요. 일종의 도전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준호 〈은서〉를 쓸 때 이미 이 아이템을 구상했지만, “이건 못 만들겠다, 자칫하면 퀴어 커뮤니티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 접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유튜브 같은 데서 누가 종로3가를 찍으면서 “여기가 게이들이 다니는 거리입니다”라고 올리면 난리가 났어요. 지금 당장 내려라, 왜 이런 걸 올리냐, 하면서요. 조회수 올리려고 이용한다는 분위기였죠. 총대를 메고 싶진 않아서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묵혀뒀던 거예요. 지금도 물론 여전히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껴요. 하지만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성소수자 이슈는 여전히 답보 상태예요. 사실 큰 계기는 변희수 하사님의 죽음이었어요. 그 사건을 접하고 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물론 여전히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려요. ‘그냥 조용히 우리끼리 살자’는 분들이 있고, ‘아니다, 드러내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분들이 있죠. 저는 두 입장을 다 이해하지만, 예술가라면 조금 더 끌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죠.

※ 〈3670〉 박준호 감독, 조유현, 김현목 배우와의 인터뷰는 연관 기사의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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