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 〈3670〉 박준호 감독, 조유현, 김현목 배우와의 인터뷰는 연관 기사 첫 번째 글에서 이어집니다.

영화의 주요 촬영지가 실재하는 공간인데요. 배우들의 준비도 그 리얼리티에 바탕하고 있을 것 같아요. 실제 공간을 경험하면서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조유현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실제 촬영할 공간에 가본 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로케이션지가 실제 영업을 하는 곳이라 클럽이나 식당 같은 공간을 직접 가서 촬영 전에 미리 체험하고 나니까 현장에서 훨씬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김현목 그동안 몇 편의 퀴어 영화를 찍어봤지만, 대부분은 세트촬영이거나 일상적인 공간을 조금 변형해서 사용하는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실제 종로의 공간을 그대로 로케이션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배우로서 훨씬 다르게 상황이 다가왔어요. 감독님과 함께 사전에 그 공간에 가서 분위기를 체감하면서 캐릭터에 이입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박준호 촬영 협조가 잘 안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단 한 번도 거절당하지 않았습니다. 연락을 드리면 다들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특히 클럽신에서 ‘다크룸’이 반드시 필요한 설정이었는데, 한국에서 그런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거든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놀랐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커뮤니티 내부의 리얼한 풍경을 세세히 보여주는 접근을 통해 그들의 고민이 디테일하게 드러나면서 공감대와 보편성이 확보된 것 같아요. 특히 서로의 관계망 안에서 MZ세대의 취업, 연애, 미래에 대한 고충도 잘 담겨 있는데요.
박준호 현대 사회에서 진심을 표현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잖아요. 게이 커뮤니티는 특히 좁고 끈끈한 관계망이어서, 한 번 어긋나면 평생 어색해질 수도 있어요. 저는 그런 모호한 감정들, 친구인지 연인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관계를 담고 싶었어요. 단순히 남녀 멜로의 성별만 바꿔놓은 퀴어 멜로가 아니라, 커뮤니티 특수성과 청춘의 보편적 감정을 동시에 담으려 했습니다.
조유현 철준은 제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유형의 인물이라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제 안에 있던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접근하다 보니 연기가 잘 풀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이 철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봤어요. 그러면서 깨달은 게, ‘차이점에서 출발하지 말고 공통점에서 시작하자’였어요. 그렇게 시각을 달리하니 인물이 점점 눈에 들어왔어요. 철준은 탈북자이자 게이라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라는 특징이 있지만 감정의 본질은 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말투나 동작 같은 외형적인 부분은 어떻게 접근하셨어요?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었나요.
조유현 북한 친구를 만나서 스터디를 했는데 언어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더 깊이 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죠. 지인을 통해 함경북도 청진 출신 친구를 소개받았고, 그 친구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였는데 남한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말투도 흥미로웠어요. 어딘가 북한 말 같으면서도 이미 남한 생활에 익숙한 톤이 섞여 있었죠. 철준도 영준과 함께 있을 때 북한 말을 최대한 숨기려고 하지 않았을까. 대화를 녹음해 두고 그 뉘앙스를 연기에 녹여내려고 했습니다.
영준은 평범한 20대 청년의 모습인데요. 철준이 북한 출신임을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것과 마찬기지로 영준에게는 성소수자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했을 것 같아요
김현목 영준은 자신과 닮은 점들을 굳이 하나하나 짚어내서 강조하잖아요. “우리 동갑이네, 같은 동네네, 같은 담배 피우네, 심지어 교회도 다니네” 같은 식으로요. 이런 반복적인 발화가 영준이라는 인물을 각인시켜 주더라고요. 그런데 반대로, 영준은 되게 배타적인 면도 있어요. 이어폰을 끼고 “남들 소리 듣기 싫어서 그렇다”라고 고집스럽게 말한다든지, 현택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왜 저 애는 늘 잘 나갈까? 나는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그렇죠.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거예요. 사실 배우들끼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돼요. 분명 같은 길을 걸어왔고 친했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잘되면 괜히 멀어지고, 대화가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어요. 영준의 심리가 이해되더라고요.

감독님이 캐릭터를 빌드업 할 때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과장된 ‘게이스러움’을 피했다고 하셨는데, 그 점이 영준 캐릭터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배우님도 표현에도 중요한 힌트였을 것 같아요.
김현목 네, 처음엔 유튜브에서 퀴어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유명한 분들의 말투나 행동을 참고해볼까 했던 거죠. 그런데 보면서 문득, 영준을 준비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글을 더 읽고, 철준 역 배우와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대사의 뉘앙스를 곱씹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그래서 영상 참고는 어느 순간 접고,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첫 장면이 꽤 사실적인 베드신인데요. 단도직입적으로 성소수자라는 걸 에둘러 말하지 않고 시작하는데요. 더불어 클럽의 은밀한 공간인 다크룸의 묘사가 주는 충격 효과는 리얼리티 전달에 꼭 필요한 장면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의도셨나요.
박준호 무조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돌릴 때도 어떤 분들은 섹스신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퀴어 영화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냥 “우정 이야기 아니었어?” 하고 읽는 분들도 있었고요. 사실 퀴어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오해와 논란이 여전히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예 처음부터 못 박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건 게이 남성들의 사랑 이야기다”라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말이에요. 주인공 철준의 정체성이 흔들리거나 관객이 혼동할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베드신의 표현 방법도 중요했는데요. 탐닉이나 아름다운 장면 연출 대신, 리얼한 섹스 장면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는데요.
박준호 촬영 방식도 고민이 많았어요. 섹스를 굉장히 자극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영화의 톤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멋있게 미화하거나 예쁘게 포장하는 대신, 그냥 담백하게 제시하는 게 맞다고 봤어요. “이런 사람이 있고, 이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거였죠. 그래서 조명도 심플하게 처리하고, 얼굴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았어요.

수위가 높은 장면이라 연기하는 배우에게 오는 부담도 컸을 텐데요.
조유현 첫 장면부터 베드신과 키스신을 소화해야 한다는 건 분명 부담이었지만, 이미 대본에 흐름이 다 나와 있어서 충분히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었어요. 다크룸 장면은 클럽에서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경험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과장하거나 매력적으로 보이려는 게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죠. 그래서 긴장감, 호기심, 두려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의 진폭에 집중했습니다. 다행히 감독님도 ‘담백하게 가자’는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주셔서 흔들리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세 분 모두 이 영화로 하나의 큰 관문을 통과하셨습니다. 9월 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관객을 향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준호 영화제를 다니면서 느낀 건,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정말 ‘도파민 터지는 직업’이라는 거였어요.(웃음) 제가 만든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그 반응을 확인하는 일이 이렇게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몰랐습니다. 철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처음의 순간들이 떠오를 거예요. 관객들이 자기 안의 그런 기억을 떠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첫 발을 내디딜 때 조금 더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유현 이 작품이 제 데뷔작이라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큰 자부심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제 안에 있는 여러 면모를 철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드릴 수 있었고, 그래서 더 특별한 작품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배우로서 더 본격적인 활동을 해 나가야겠다, 또 할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를 얻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김현목 저에게 〈3670〉은 배우로 살아온 지난 10여 년을 돌아봤을 때 하나의 정점 같은 작품이에요. 수없이 반복되는 생활, 비슷한 패턴 속에서 사실 많이 외롭고 지칠 때도 있었거든요. ‘나는 그냥 이렇게 무한 반복을 하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라는 고민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만나면서 그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배우로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값지고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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