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밀일 수밖에' 김대환 감독 “세상 가장 불편한 사람들, 가족.”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 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기에, 꼭 해보고 싶어”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김대환 감독(사진=이화정)
김대환 감독(사진=이화정)

김대환 감독에게 ‘가족’은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단위였다. 데뷔작 〈철원기행〉(2016)에서 해체되었던 가족에게도 남아있던 ‘앙금’ 같은 것들은 이제 막 시작하는 가족, 〈초행〉(2017)의 신혼부부에게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8년 만의 신작 〈비밀일 수밖에〉는 〈철원기행〉의 가족과 〈초행〉의 커플이 같이 만난 것 같은 기시감을 주는 작품이다. 〈비밀일 수밖에〉는 김대환 감독 스스로 ‘가족 3부작’의 최종장이라 명명한 작품이다. 두 가족의 합류로 물론 불협화음도 더블이 됐다.

영화는 의도치 않게 만나고 보니 환장할 만한 두 가족을 관찰하는 일종의 소동극이다. 이야기는 캐나다에 살던 정하의 아들 진우(류경수)가 여자친구 제니(스테파니 리)와 고향 춘천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정하(장영남)는 아들을 유학 보내고 춘천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정하에게는 이참에 아들에게 말할 두 가지 비밀이 있다. 하나는 암의 발병, 또 하나는 사귀는 여자친구 지선(옥자영)의 존재를 아들에게 알리고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 하는 일이다. 그런데 제대로 말을 꺼내기도 전 캐나다에 있던 제니의 부모(박지일, 박지아)가 예고 없이 춘천을 찾게 되고 두 가족과 지선까지 모두가 한 집에서 뜻하지 않은 동거를 하게 된다. 알고 보니 정하뿐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비밀을 안고 이곳에 모였다. 뭉치면 세상 숨 막히는 게 가족이다. 2박 3일의 시간, 분지인 작은 도시 춘천, 모두가 끼어 탄 작은 차, 공간과 시간의 제약은 이제 곧 터질 비밀을 압박하는 훌륭한 영화적 장치로 활용된다.

〈비밀일 수밖에〉
〈비밀일 수밖에〉

〈비밀일 수밖에〉는 어떤 동정도 구하지 않는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가족의 모든 비밀이 터져 나오길 지켜보는 일종의 실험극이다. 실추한 가부장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새롭게 꿈틀대는 가족을 급기야 포착해 낸다. 가족 3부작의 마지막은 결국 K 마크 붙은 한국 가족 특유의 애증의 관계의 해체와 재배열이다. 놀랍게도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은 톤으로 영화는 이 어려운 주제를 전달한다. 김대환 감독 특유의 장기이자, 단단히 엉킨 가족 역사 한가운데로 들어간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주는 기막힌 합의 결과물이다. 여러분이 이제 즐겁게 한발 떨어져 내 가족을 보는 듯, 진지한 순간조차 사소하고 우스꽝스러운 가족의 소동을 매 순간 목격할 차례다. 김대환 감독을 만나 가족 3부작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비밀일 수밖에〉 포스터
〈비밀일 수밖에〉 포스터

〈철원기행〉 〈초행〉 이후 장편 연출로는 오랜만입니다. 이번 작품은 가족 간의 갈등을 담고 있는 앞선 두 작품의 연장선 혹은 확장의 형태로 다가왔는데요. 3번째 작품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철원기행〉은 이혼과 아버지, 강원도 철원의 겨울을 키워드로 출발했고 〈초행〉은 결혼을 중심에 두고, 인천과 삼척, 그리고 가을을 배경으로 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가족을 다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족 3부작’을 완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재혼’을 소재로, 춘천의 봄, 그리고 어머니를 중심에 둔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재혼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보니, 굳이 영화로 만들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제 입장에서 부모님이 재혼하신다면 그냥 “축하합니다, 잘 사세요” 할 것 같지 큰 갈등이나 사건이 될 것 같진 않았어요. 그 무렵 우연히 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사회운동을 하시는 어머니가 커밍아웃을 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직접 만나 뵈었더니 두 아들을 둔 분이셨고, 남편에게 커밍아웃을 한 뒤 자연스럽게 이혼을 하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재혼’이라는 소재를 넘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담아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비밀일 수밖에〉
〈비밀일 수밖에〉

성소수자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가족의 비밀스러운 감정 등 영화가 다루는 설정이 꽤 세 보일 수 있는데요. 막상 영화는 사건에 몰입하기보다는 굉장히 건조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레즈비언인 정하(장영남)와 연인 지선(옥지영)의 관계에서 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비밀’이 큰 사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런 설정은 충분히 도발적으로 읽힐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존의 퀴어 영화들처럼 특정 인물에 깊게 몰입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비밀’은 반전 장치가 아니라, 그것이 드러난 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이야기였으면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리감은 저에게 꼭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비밀일 수밖에〉
〈비밀일 수밖에〉

정하는 성 정체성으로 인해 아들에게도 죽은 남편에게도 비밀을 간직해 왔는데요. 소도시에서 평생을 근무해 온 교사라는 신분이 비밀이 가진 민감함을 부각시켜 줍니다. 어쩌면 가장 보수적인 조건을 캐릭터에게 적용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거슬러 올라가면 〈철원기행〉의 아버지도 교사로 설정되어 있죠.

저의 부모님이 교직에 계셨고 그래서 제가 가까이서 본 직업이 교사였습니다. 춘천 같은 소도시에서는 교사 부부가 싸움만 해도 주변에 다 소문이 나거든요. 그래서 정하가 교사이고, 이 이야기가 소도시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춘천은 제가 20살까지 살았던 곳인데, 예쁘지만 동시에 산으로만 둘러싸인 분지라 답답한 곳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비평준화 제도가 있어 교복만 봐도 성적이 드러났고, 그게 학생들뿐 아니라 부모 세대에게도 스트레스였죠. 춘천을 ‘고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탈출하고자 하는 아이와 그 안에서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기에 적합한 공간이라고 봤습니다.

김대환 감독(사진=이화정)
김대환 감독(사진=이화정)

정하를 받아들일 사회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 아들의 인정이었을 텐데요. 진우(류경수)는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요리 유튜버로 자신의 길을 택하고자 합니다. ‘고여 있던’ 가족의 상황에 꿈틀거리는 변화를 주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진우는 지금 세대를 상징합니다. 안정된 길을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가령 유튜버 빠니보틀이 제 고등학교 후배인데 디자인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가 여행 유튜버가 된 거죠. 그런 용기를 진우에게 담고 싶었습니다. 다만 자신을 위해 유학을 보내고 희생해온 어머니에게 다른 진로를 이야기를 꺼내는 건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저 역시도 한때는 다 접고 다른 삶을 꿈꿔본 적이 있었기에, 제 경험이 진우에게도 투영된 것 같아요. 더불어 해외에서는 부모의 성소수자 커밍아웃이 흔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파장이 큽니다. 특히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 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기에,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비밀일 수밖에〉
〈비밀일 수밖에〉

흥미로웠던 설정은 감추어뒀던 비밀이 폭로될 수밖에 없는 소동극의 형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는 점인데요. ‘양가 가족이 뜻하지 않게 한 집에 모이’는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가지고 사건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는데요.

사실 저도 결혼 후 양가가 함께 모인 건 딱 한 번이었어요. 그때 느낀 건 “다시는 모이지 말자”였습니다. (웃음) 싸움이 난 건 아니었지만 대화가 불편해지더라고요. 그 경험이 이번 영화의 단초가 됐습니다. 그래서 ‘정아와 지선의 관계 속에서 가장 불편함을 주는 인물은 어떤 모습일까’ 고민하다 문철(박지일) 캐릭터가 탄생했고, 이어서 그의 딸 제니(스테파니 리)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리서치 과정에서 본 사진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미국 LA 교포들이 명절날 한복을 입고 요리하는 모습이었는데, 그게 불과 얼마 전인 2020년대 사진이더군요. 그렇게까지 전통을 지켜야 할까 싶으면서도, 오히려 더 강하게 문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밀일 수밖에〉
〈비밀일 수밖에〉

가족 3부작의 마지막을 완성하셨는데요. 다음 작품 계획도 궁금합니다.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자연스럽게 결혼-이혼-재혼이 떠올랐고, 그래서 3부작을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빨리 다른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가족 이야기는 내려놓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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