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하면 배우로, 예술인으로 긴 시간 활동할 수 있을까”. 그의 생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철학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감과 울림을 남긴다.
"시청자 여러분, 정말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 이순재 선생님 2024 KBS 연기대상 수상 소감.
![사진은 2003년 연극 '리어왕: KING LEAR' 연습실 공개 및 간담회에서 주요 장면 시연하는 배우 이순재 [연합뉴스]](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5-11-25/be6671c9-d07c-4ee8-ae02-b16622ac1bf0.jpg)
"연기라는 예술적 창조 행위는 평생 해도 끝이 없고, 완성이 없어요." 평생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배우 고(故) 이순재는 2016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6년 배우 이순재 인터뷰 모습 [연합뉴스]](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5-11-25/3df01c1b-939d-4143-8915-7cbd9f01b692.jpg)
"연기란 오랜 시간 갈고 닦아 모양을 내야 하는, 완성할 수 없는 보석"이라고 했고, "배우라면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며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2018년 영화 '덕구'에 출연하면서는 "별의별 종류의 영화에 다 출연해봤다. 주연도, 단역도, 악역도, 멜로 연기도 다 해봤다"면서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조건 작품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2008년 서울대 초청강연에 나선 모습[연합뉴스]](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5-11-25/adc78a0e-6cc0-4de8-838b-f78986f1f086.jpg)
2008년 모교 서울대에서 열린 관악초청강연에 연사로 "지금도 연기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며 "나를 다 털어내고 평가받아서 수익을 올리는 거라 일단 남에게 피해를 안 끼친다. 또 정년이 없다"고 유쾌한 말을 남겼다.
![최근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 등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사진은 2021년 연극 '리어왕'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 취하는 배우 이순재 [연합뉴스]](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5-11-25/202f2c74-716b-4b89-a9a7-ec8368fafd05.jpg)
그는 "배우들이 한 단계 뚫고 더 올라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다"며 "만날 깔끔하게 멋 내는 게 배우가 아니라 역할을 위해 항상 변신하는 게 배우"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진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 축하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5-11-25/d04cf465-d368-4518-a52e-c62b8f8576a0.jpg)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한때 정계에 입문했지만, 그는 자신의 정치 경험을 회상하며 '정치'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치 생활 8년간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의 길은 '연기'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연기'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발언은 정치와 예술 사이에서 자신의 진정한 열정을 찾았음을 시사한다.
지난해 12월 31일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그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온다"며 감격에 젖은 소감을 전했다. 또한 "보고 계실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여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순재 선생님 생애와 주요 이력]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서울로 이주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하며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방송·영화·연극을 오가며 약 14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하며 대한민국 연기사의 중요한 축을 세웠다. 특히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1992)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을 맡아 전국적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사극 전성기에서도 존재감은 확고했다. 〈허준〉, 〈상도〉, 〈이산〉 등 굵직한 작품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아 묵직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장르의 신뢰도를 끌어올렸다.
배우 활동과 병행해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민주자유당)에 당선되며 정치권에서도 잠시 활동했다. 이후 교육자로 영역을 넓혀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연극 무대에서는 끝까지 현역 행보를 이어갔다. 연출에까지 도전하며 ‘멈추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고, 한국 연극·드라마계에서 장인의 길을 걸었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