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임필성 감독과의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7회 이후에는 감독님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영화의 결말이 만들어 졌을 것 같은데요. 작가와 연출자 모두가 드라마가 처음인 경우는 드물어요. 보통 어느 한쪽은 드라마 문법을 아는 협업을 하는데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싶어요. 작가와의 협업 방식도 기존 드라마와는 조금 달랐을 것 같은데요.
작가님이 드라마 데뷔작이었고, 저도 시리즈 경험이 많지 않았어요. 드라마로는 저희 모두 처음이었어요. 다만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어요. 〈인간수업〉을 제작한 스튜디오 329나 드라마로는 대표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 제작이라 걱정하는 대신 그 분들의 판단을 믿고 갔어요. 워낙 캐스팅 라인업이 좋아서 수월하게 풀린 것 같지만, 들어가기 전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거든요. 어려울 때마다 스튜디오와 대표님이 중심을 잡아주셨고, 장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도 계속 조율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전형적인 드라마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매 회차 시청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팔로우업 한다는 점은 역시 역시 묘미일 텐데요. 공개 될 때마다 어떤 반응이 와닿던가요.
원래 댓글을 많이 보지 않는데 이번에는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채널 드라마다 보니까 느끼는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착한지 나쁜지 모르겠다”거나 “감정 이입이 안 된다”는 반응들이 반복적으로 보이더라고요. 그게 드라마 문법에서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제목만 보면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 마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같은 뉘앙스로 다가오는데요.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리얼리티 드라마 처럼, 건물주의 애환을 그린 리얼한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장르적 문법으로 치닫는 이 드라마의 전개가 다소 의아했을 것 같아요.
제목은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어요. 촬영 중간에 바꾸는 것도 고민했지만 결국 유지하고 갔습니다. 시청자들이 제목에서 기대한 방향과 실제 작품의 결이 다르다 보니, 들어올 때의 기대감과 작품 사이에 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뼈대를 보면 ‘한국형 〈파고〉’로도 읽혀지는 데요. 작은 사건이 눈덩이 처럼 부풀려 지는 구조인데요. 그런 점에서 사건을 앞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전개이기도 한데요.
하정우 배우와도 〈파고〉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많이 이야기 했어요. 하나의 도미노가 잘못 밀리면서 상황이 점점 커지고, 누구도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런 군상극, 인간 군상이 뒤엉켜서 아수라장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 대본이 딱 그런 구조였어요. 그래서 굉장히 흥미롭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인공 기수종 이야기를 해보죠. 건물주는 애초 진입장벽이 있는 캐릭터 같아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서민들이 보기엔 기득권이죠. 시청자들에게는 애초에 진입장벽이 있는 캐릭터입니다.
맞아요. 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맞습니다. 이 작품은 밑바닥에서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려고 하다가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감정 이입이 쉽지 않을 수 있죠. 기수종은 건물주로 어느 정도 가진 자이고 그래서 불쌍해 보이지 않죠. 감정적으로 붙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건물주라는 개념 자체가 일종의 절대반지 같은 상징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게 이 드라마의 핵심이었어요.
하정우 배우의 연기 톤이 건물주를 향한 ‘거리감’을 강화해 주는 것 같은데요. 기수종은 모르고 납치극에 가담한 것 같지만, 이후 끊임없이 악행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데요. 죄의식이 크지 않은 무심한 톤앤매너를 유지하는데, 처음 보는 유형의 인물이었어요. 배우와 어떻게 캐릭터의 톤을 잡아 나갔나요.
하정우 배우가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친절한 연기’를 하지 않았고, 저 역시 영화적인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은 의도했어요. 현장에서도 이 지점에 대해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요. 이 드라마가 매 회차에서 감정을 바로 해소하기보다는, 전체 빌드업을 통해 인물을 이해하게 만드는 구조였고요. 이 작품은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며 응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 인물들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설계했다 보니. 각자의 선택 속에서 계속 윤리를 배반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수종 뿐만 아니죠. 표면적으로는 올바른 척하지만 이 작품의 모두가 꿍꿍이가 있고, 부도덕 한데요. 요즘 사회의 한 단면을 담아낸 것 같은데요.
맞아요. 촬영을 하면서 배우들과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심은경 배우가 어느 날 현장에 와서 “이 캐릭터들 중에 요나만 정상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요나는 그냥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지 않냐, 살인을 하긴 하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더 가지려는 욕심으로 움직인다.”는 식의 이야기였어요. 그 해석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인물들이 다 반성 없이 폭주하는 면이 있고, 각자 자기 나름의 논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죠. 이 작품은 애초에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응원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같은 작품에서 본 피카레스크 식 인물 구성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고, 누구에게 감정을 두고 봐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을 따라가게 되는 구조인데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도 서늘했던 지점이 그거였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자기 합리화를 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들이 요즘 사회의 단면처럼 느껴졌고, 그 부분을 더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 리얼 캐피탈 묘사가 독특해요. 기존 범죄누아르 물에서 양아치 조직으로 그려질 법한 캐릭터인데, 글로벌 기업으로 모양새를 갖추고 일본 자본이 유입된다는 설정 등을 더했는데요. 특히 말씀하신 요나 캐릭터가 오묘한 빌런으로 묘사되었어요. 이 캐릭터 라인만 따로 떼어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반응이 올 정도로 호응이 좋은 캐릭터인데요.
요나는 원래 안톤이라는 러시아 혼혈 남자로 설정되어 있었어요. 그게 장르적으로 주는 익숙함은 있었는데 좀 신선하지 않아서 한창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제작사 대표님이 심은경 배우를 제안하셨는데, 은경 배우는 저랑 〈헨젤과 그레텔〉을 같이 하기도 했고 그 친구의 연기 스펙트럼을 잘 알다보니 너무 좋은 생각이더라고요. 은경 배우한테도 도전이 될 수 있겠다 싶었고요. 단순히 악역을 넘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역을 만들어 보자. 은경 배우와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톤을 잡아가면서 지금의 요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리얼캐피탈의 전무 모건 리 역도 미야비 라고 재일교포이고 일본의 레전드 락커예요. 우연히 알게 됐는데, 전형적인 캐스팅을 벗어나자는 생각에 부탁 부탁해서 일종의 특별출연 처럼 함께 하게 된거죠.


특히 기수종 부부의 대화가 오싹했어요. 남편의 외도를 알고 난 후인데도 김선은 딸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한 실질적 선택에서 그의 범행을 눈감아 주고 오히려 범행에 가담하는데요.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 속 부부 만수와 미리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어요. 한국사회의 기득권이 가족의 안위라는 측면에서 윤리를 배반하는 일이 점차 증가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결국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 안에서 돈과 미래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임수정 배우가 연기한 김선 캐릭터도 처음에는 굉장히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남편의 상황을 알게 된 이후에는 점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잖아요. 저도 현장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게 생각나요. “정말 선한 사람이라면 (남편이 감금한 세입자가 손을 다친) 그 순간에 병원에 전화해야 한다.” 그런데 그 선택을 하지 않는 순간, 김선 역시 이 세계에 들어온 거라고 봤습니다.
굉장히 시니컬한 시선이기도 한데요.
이 작품은 결국 “사람들이 돈과 명예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상식적인 선한 주인공을 응원하고 싶은 관객에게는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불편함 자체가 이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끝까지 본 관객들이 어떤 지점을 느끼길 바라시나요?
끝까지 보시면, 이 인물들이 어떤 사람인지 결국은 이해하게 될 거예요.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지만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라는 지점에는 분명 도달하게 되실 것 같아요. 수종이라는 인물이 처음에는 “이 건물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상황이 커지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결국은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다가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이 이야기 자체가 어떤 하나의 우화처럼 느껴졌으면 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이야기로 본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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