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랄’(취사병과 ‘지랄’을 합친 신조어)로 뻔뻔하게 밀어붙이는 드라마는 처음이다. 미역국을 한입 떠먹더니 난데없이 ‘미역의 신’이 나타나 ‘천지창조’를 하기도 하고, 다채로운 맛이 한데 어우러진 주먹밥을 맛보고는 ‘미각보이즈’라는 아이돌 그룹이 나타나 춤을 추기도 한다. 누가 뭐라 하건 허무맹랑한 상상력과 수많은 패러디를 끝까지 관철하는 기세가 대단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이하 〈취사병〉)는 현재 매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하며 8회까지 공개된 상태다.
〈취사병〉은 흔한 ‘군대 드라마’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비껴간다. 소위 흔한 ‘군대 드라마’가 억지로 건네는 불편한 농담 대신, 〈취사병〉은 무해한 웃음을 택했다. 드라마는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권위주의나 여성혐오, 폭력성을 전제로 한 유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취사병〉은 요리와 성장, 그리고 동료애를 중심에 둔 채 판타지와 코미디를 버무려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낸다.
이상이 배우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이 ‘미친 드라마’에서 코미디와 서사의 구심점을 잡는 것은 다름 아닌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 박지훈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홍위를 연기하며 호평을 끌어낸 박지훈은 이번 〈취사병 전설이 되다〉에서 관심병사에서 전설의 취사병으로 성장하는 ‘강성재’ 역을 맡아 코미디와 성장 서사를 함께 이끌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스스로를 '초중급 배우'라 칭하며 덤덤하게 제 길을 걷고 있는 배우 박지훈을 만났다. 아래에 대화의 전문을 옮긴다.

〈취사병〉의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가 좋은 가운데, ‘박지훈표 코믹이 통했다’라는 호평이 나오고 있어요. 호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표현이 있었나요?(웃음) 오히려 오버하지 않고 캐릭터의 중심점을 잡아간 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 포인트이지 않았을까요. 귀여우면서 코믹한 것이요. 저도 그냥 코믹이 아니라, 시청자분들께서 ‘좀 귀엽네’ 하면서 웃게 만들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는데요. 그런 것들을 많이 또 좋아해 주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오버 페이스로 연기를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충분히 납득될 만한 상황에서 애드리브와 다양한 시도를 했었고, 그래서 웃겼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도 분위기가 좋았고요.
그렇다면 〈취사병〉이라는 작품은 어떻게 선택하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왕과 사는 남자〉를 끝내고 바로 〈취사병〉에 들어갔어요. 사실 대본 보면서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대본 보면서 판타지적인 것들, 허공을 보며 손짓하고 시선 처리하는 것들이 성재라는 캐릭터로서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어쨌든 ‘박지훈’이라는 사람은 요리랑 되게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요. 내가 요리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고, 혹 이 작품 하면서 요리에 대한 관심이나 취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제 실상은 거리가 더 멀어졌고요.(웃음) 대신 하나 얻은 건, 칼질이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요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취사병〉을 찍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셨을 것 같은데요.
〈왕과 사는 남자〉 촬영 끝나고 바로 요리 학원에 다니면서 한 3, 4개월 정도 준비를 했어요. 선생님들이 요리에 대한 메커니즘을 알려 주셔서 제육볶음 등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정도는 파악했고요. 그곳에서 칼질 연습을 진짜 많이 시켜주셨거든요. 그래서 칼질이 정말 많이 는 것 같습니다.

성재는 자신에 눈앞에만 나타나는 ‘가디언’이라는 시스템과 소통하는 인물인데요. 〈취사병〉은 후반작업 전까지는 어떻게 결과물이 나올지를 모르는 작품이잖아요. 대본을 보며, 장면들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사실 대본을 본 후에는, 그런 부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고 갔어요. 왜냐하면 현장에서 그냥 보고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되게 강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뭔가를 집에서 미리 만들어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현장에서 감독님이 원하시는 장소와 시선 등을 다 시뮬레이션을 해서 만들었어요. 그리고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성재가 그냥 허공을 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대화하고 소통하고 있는 듯한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심심하지 않게 눈동자를 굴린다든지, 혹은 보면서 조금 귀여운 표정을 한다든지, 그런 것들을 시도했어요. 후시 녹음하며 후반 작업이 된 후의 영상을 봤는데, 표현한 것만큼 잘 담겨서 다행이었어요. 초반에는 ‘가디언’과 어떻게 얘기를 나눠야 할지, 혹은 이 사람을 어떻게 내가 받아들여야 될지와 같은 부분이 어렵긴 했는데, 그런데 성재가 관심병사이고, 초반의 서사가 잘 만들어져서 ‘가디언’과 관련한 부분도 정말 납득이 잘 되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가디언 목소리를 연기하신 분이 ‘리그 오브 레전드’(LOL) 속 시스템 내레이션을 맡은 김상현 성우님이시잖아요. 제작진이 공을 들여서 섭외를 했다고 들었는데, 연기하실 때 실제로도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하신 건지 궁금하고, 실제로 그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몰입이 됐는지 궁금해요.
실제로는 음성을 현장에서 들으면서 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래도 워낙 익숙한 목소리이시기 때문에, 상상하면서 연기를 했었고요. 김상현 성우님이 처음에 전체 대본 리딩 때 오셨었거든요. 근데 정말 녹음된 목소리를 틀어 놓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직접 읽어주신 거죠. 그래서 ‘어떻게 섭외를 하신 거지?’ 싶었고, 그때부터 좀 더 기대감에 차서 현장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재는 어리버리하면서도 강단이 있는 인물인데요. 감독님과 소통하며 강성재라는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 나갔는지 궁금해요.
정말 미필인 사람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처음 딱 들어왔을 때 그 순수한 이병의 모습, ‘지금 내가 나서야 하나, 혹은 가만히 있어야 하나’ 하는 어리버리한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잘 묻어난 것 같고요. 그리고 너무 가벼워지지 않게, 너무 또 코믹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성재의 중심점을 잘 잡아주셨어요.

〈취사병〉은 매회 화제가 되는 장면들을 낳는 드라마입니다. ‘남조선 돈까스’ 락을 하는 장면이라든지, 미역 옷을 입고 내려와 ‘천지창조’를 패러디하는 장면이라든지, ‘미각보이즈’가 등장하는 장면이라든지. 대본을 보고 황당했을 법도 한데요.
정말 감독님이 원하신 대로 다 연출된 것 같고요. 저도 뭐 그거에 대한 불만이나 이런 것들이 전혀 없었고 그냥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 신들이 너무 잘 살았고, 그리고 워낙 베테랑 선배님들과 호흡하다 보니까 그냥 현장에서 뭐 어떻게 되든 스스럼없이 너무 재미있게 잘 찍은 것 같습니다.
등뼈로 피리를 분다든지, 아코디언 연주를 한다든지, 그런 B급 코미디 장면들을 두고 시청자들이 ‘취랄’이라는 표현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런 거를 찍으면서 혹시 현타(현실 자각 타임)는 없었는지가 궁금해요.
정말 그 아코디언 신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현장에서 “저 노래 하나만 틀어주시면 안 돼요?” 해서 왈츠풍의 노래를 틀어주셨어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시면 제가 러시아 민속 춤을 추고 있는데, 제가 현장에서 그냥 그 노래에 영감받아서 나온 행동들을, 감독님이 다 써주셨더라고요.(웃음) 너무 다 헐벗고 찍은 장면들인데, 현타는 딱히 안 왔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현장에서 다들 빵 터져서 저도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현타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럼 반대로 리액션이 너무 좋고 반응이 많이 와서 ‘좀 더 내가 여기서 욕심을 내보고 싶다, 더 많은 웃음을 끌어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든 적도 있나요?
윤동현 병장님(이홍내)이랑 닭장 신이 있었는데, 다들 너무 재미있어 해주셔서 ‘조금 더 해볼까 여기서?’ 싶었어요. 왜냐하면 성재가 이제 그렇게 무서워하는 신이 그 전에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막 현장에서 너무 소리를 지르다가, 막 오바이트하려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거는 편집이 됐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현장에서 만들어 가는 그런 장면도 되게 많았습니다.

7화에 나온 김관철 상병(강하경)과의 장면은 웃기면서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는데요. 관철 상병이 할머니의 햄버거를 떠올리며 감정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박지훈 씨가 분장하고 관철 상병의 할머니로 등장했어요. 웃기면서도 슬프고 감동적인, 듣도 보도 못한 명장면이었는데요. 그 장면을 찍으면서는 어떠셨나요.
방송으로 보면 되게 재미있는 신인데, 사실 저는 그게 고민이 되게 많은 신이었어요. 관철 상병의 할머니에 대한 서사가 들어간 감정 신이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 신 찍기 전에 감독님께서 저에게 “할머니 역할을 해줄 수 있겠냐”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요?”라고 그랬죠.(웃음) 할 수는 있는데, 대본에도 ‘관철 상병이 먹고 눈물을 흘린다’라고 쓰여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관철 상병님이 ‘내 얼굴을 보고 울 수 있나?’ 싶은 생각에 되게 조심스러웠던 신이었어요. 촬영장에서 정말 정숙해 있었거든요. 어쨌든 몰입해서 에너지를 많이 드리려고 노력한 신이었고, 실제로도 관철 상병님이 저한테 고맙다고, “네 덕분에 울음이 났다”라고 해주셨어요.
작품 곳곳에 다양한 오마주와 패러디가 등장하는데요. 대본에 있던 장면도 있지만 현장에서 만들어진 장면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애드리브나 촬영 현장에서 추가된 아이디어가 있었나요?
하나하나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본에 살이 더해진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윤경호 선배님께서 현장에서 아이디어 주신 게 있는데요. 7화에서 윤경호 선배님이 〈흑백요리사〉처럼 안대를 쓰고 제가 햄버거를 드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현장에서 만들어진 신이에요.
영화 〈관상〉을 오마주한 신도 화제였는데요. 그것도 현장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나요?
그건 대본에 있었는데요, 제가 내레이션을 할 때 조금 더 사극 톤처럼 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그렇게 녹음했어요. 그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 이미지가 그려져서요. 슬로우 모션으로, 눈, 코, 입이 보이는 식으로 이미지가 그려져서, 그렇게 녹음했던 신입니다.

극 중 ‘미각보이즈’의 무대도 화제예요. 많은 사람의 알고리즘을 점령하면서, 멤버별 개인 직캠까지 나올 정도로 화제인데, 박지훈 씨는 아이돌 선배이시잖아요. ‘미각보이즈’의 무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선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요.(웃음)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분들이신데, 그 안무를 외우고 모든 게 다 새로우셨을 것 같아요. 저는 그날 촬영장에 없었는데, 정말 그 뮤직비디오 세트장처럼 거기서 춤추고 립싱크를 하셨더라고요. 표정도 다들 너무 잘하시고, 다들 잘해서 할 말이 없던데요.(웃음)
※〈취사병 전설이 되다〉 배우 박지훈 인터뷰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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