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격지심의 민낯을 날고기처럼 발가벗기다, '맨 끝줄 소년' 최민식①

배우 최민식(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최민식(사진제공=넷플릭스)

데뷔 45년 차에도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일 수 있다니. 최민식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대신, 지독하고도 패배의식에 젖어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찌질한 지식인의 민낯을 완벽하게 까발렸다.

가장 나약한 보통의 얼굴로 돌아온 최민식은 지난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에서 열패감과 욕망으로 범벅된 ‘허문오’ 역할을 맡아 서스펜스와 블랙코미디 사이를 오가며 날것의 인간성을 꺼내 보였다.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인 ‘허문오’(최민식)가 강의실 맨 끝줄 소년 ‘이강’(최현욱)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실패한 작가 허문오는 국문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학생들의 실망스러운 작문 과제에 혹평만 날리다, 강의실 맨 끝줄에 앉는 학생 이강의 글에 매료된다. 허문오는 이강에게 개인 문학 수업을 제안하고, 수업이 진행될수록 허문오는 이강의 글에 집착하게 된다.

과거 영화 〈올드보이〉(2003)로 처절하고 강렬한 복수의 끝을 보여줬던 최민식이, 이번 〈맨 끝줄 소년〉으로 도리어 완벽하게 복수를 당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꽤나 흥미롭다. 물론, 그 복수의 전개 방식은 극과 극이다. 〈올드보이〉가 물리적 폭력과 잔혹한 사투를 그렸다면, 〈맨 끝줄 소년〉은 서서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파멸에 이르러 버린 복수의 방식을 취한다.

데뷔 45년 차, 여전히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하는 작품을 가장 좋아하고, 좋은 이야기를 만나 더 많은 인물을 다양하게 표현해 보고 싶다는 배우 최민식을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났다. 아래에 대화의 전문을 옮긴다.


〈맨 끝줄 소년〉
〈맨 끝줄 소년〉

〈맨 끝줄 소년〉이 공개된 후 많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고 있습니다. 〈맨 끝줄 소년〉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처음엔 기대를 안 했어요. 〈맨 끝줄 소년〉이 여름에 공개를 하니까요. 〈참교육〉이나 〈김부장〉과 같은 드라마는 여름에 보기 좋잖아요. 시원하게 나쁜 놈들 응징하는 드라마를 보셔야 하는데, 맨 끝줄에 앉아 있는 소년의 이야기는 답답하잖아요. 이야기가 불편한 구석이 많아서 좋아하실까 싶은 의구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 그리고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불편한 진실과 민낯, 그리고 골절된 욕망, 부서진 인간들의 이야기가 생각할 지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글과 말이라는 폭력이 시사하는 바도 있는 것 같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맨 끝줄 소년〉은 기존의 복수물과는 다른 방식의 복수를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단순히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복수 서사와는 완전히 다른데요. 한편으로는 과거 최민식 배우의 명작 〈올드보이〉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사실 대본을 보고 출연을 하면서 〈올드보이〉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품을 보고 나니까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거예요. 세치 혓바닥 잘못 놀려가지고 그렇게 한 번 난리 브루스를 쳤는데(〈올드보이〉), 또 이번(〈맨 끝줄 소년〉) 뻐꾸기 잘못 날려가지고 인수분해가 되잖아요. (웃음) 그래서 〈올드보이〉가 떠오른다는 평들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원작 희곡 「맨 끝줄 소년」과 희곡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인 더 하우스〉와 비교했을 때, 〈맨 끝줄 소년〉에서는 ‘복수’라는 테마와 장르적 색채가 강화됐어요. 각색의 포인트 중 어떤 지점에 가장 매료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원작 희곡도,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 〈인 더 하우스〉도 일부러 안 봤어요. 만약 봤다면, 〈맨 끝줄 소년〉을 하면서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거든요. 제가 듣기로는, 원작이 좀 더 문학적 색채가 짙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원작과 영화는 창작자의 윤리, 그리고 관음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파고들어갔던 것 같은데, 저희는 거기에 한국적 서스펜스와 인과에 대한 얘기를 덧붙인 거죠. 그러니 ‘구업’으로 인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게 우리의 각색 포인트죠. 저는 그것에 동의했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더욱 타이트해지고 텐션이 생겼죠. 그러니까 마냥 처음부터 끝까지 ‘예술은 이렇고, 창작자의 윤리 의식이 어떻고’라고 하면 여러 가지로 피곤해지겠죠. 대본을 한 번에 다 읽었고,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어요. 시청자분들이 이런 작품을 좋아할지 말지는 이차적인 문제고, 일단 내가 좋으니까요.

〈맨 끝줄 소년〉
〈맨 끝줄 소년〉

그렇다면 대본을 읽고 나서, ‘허문오’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시고 연기의 포인트를 잡아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아 이건 발가벗겨야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정육점에 걸린 고기 덩어리처럼요. 일반적인 상식에 반하는 지식인이잖아요. 작가라면서요. 배운 사람이 이 세상을 리드하기는 하지만, 꼭 배웠다고 해서 이 사람이 훌륭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 욕망 덩어리, 열패감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민낯을 발가벗겨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제작발표회 당시 "이 작품은 6회까지 한 번에 몰아봐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전반부의 떡밥들이 촘촘하게 빌드업되어 6회에 폭발하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시청자들을 6회까지 흡입력 있게 끌고 가기 위해 전반부 연기 톤을 어떻게 조율하셨는지요.

의도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강박은 없었어요. 어차피 이 대본 텍스트 자체가 그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요. 저는 이 글 자체가 음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음표에 맞게끔 정확하게 연주를 하면, 불협화음이 안 나게끔 음계에 따라서 연주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더 뭔가 빌드업을 시키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노력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다른 때도 그랬지만 이번만큼은 대본에 충실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왜냐하면 텍스트 자체가 나무랄 데가 없었거든요.

(왼쪽부터) 최현욱, 최민식(사진제공=넷플릭스)
(왼쪽부터) 최현욱, 최민식(사진제공=넷플릭스)

‘이강’ 역의 배우를 뽑는 오디션에 참석하셨다고 들었어요. 최현욱 배우와 함께 연기한 소감은요.

오디션을 한 이틀인가 삼일 봤을 거예요. 현욱이 나이대의 친구들이 많이 왔어요. 우스갯소리로 ‘맨 끝줄 소년’ 말고 ‘맨 끝줄 소녀’는 어떠냐고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현욱이가 눈에 들어왔죠. 그런데 보시기에도 정말 잘했잖아요. 제가 제작발표회 때도 말씀드렸지만, 리시브만 잘하면 되겠구나, 이 친구의 연기를 제가 잘 받아치기만 하면 되겠구나, 그러면 이제 무난하게 드라마가 굴러가겠구나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강이라는 인물이 깔아놓은 판에서 제가 놀아나는 거잖아요. 말 한마디로 이 친구에게 휘둘리는 거니까, 잘 휘둘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다면 오디션과 현장에서 직접 본 최현욱 배우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던가요.

말귀를 잘 알아들어요. 그러니까 감독의 디렉션을 이해하는 능력,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이 좋아요. 그런데 이해를 해도, 배우는 몸으로 표현이 안 되면 말짱 꽝이잖아요. 그런데 표현까지 과감하게 들어가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주저함이 없으니까 준비를 많이 했구나, 고민을 많이 했구나, 그런 게 느껴지죠. 그걸 정말 대견스럽고 다행이다 싶었고, 내가 정신 바짝 차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복이에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자기 역할, 작품에 대한 메시지, 자신의 목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그걸 몸으로 체화해서 표현하는 건 대단한 능력이에요. 그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그런데 제 앞에서 그게 탁탁 던져서 꽂힐 땐, ‘이야 이거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는데’ 이런 생각이 딱 들죠.

〈맨 끝줄 소년〉
〈맨 끝줄 소년〉

최현욱 배우의 말에 따르면 최민식 배우가 엔딩 시퀀스에서, 세월에 찌들어 훅 무너져 내린 얼굴 상반신 샷 하나만으로 화면 전체를 압도해 감명 깊었다고 했어요. 그 장면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문오는 이강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거라는 말이죠. 어떻게 그 얼굴을 만들었냐고 하면, 논리적으로 설명은 안 돼요. 그런데 제가 설정을 하나 더한 건 있어요. 모진 일을 겪고, 와이프도 떠나가고, 학교에서 짤리고, 대외적으로는 ‘쓰레기’가 됐고. 그런데도 책방에서 뭔가에 몰두해서 이야기를 끄적이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소품팀한테 참치랑 멸치, 소주를 부탁했어요. 그래서 먹으면서 뭔가를 끄적이고 있죠.

그 장면에서, 문오가 쓰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문오가 자신이 지금까지 이강과 겪은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국 〈맨 끝줄 소년〉이라는 작품 자체가, 문오가 쓴 소설이라는 해석도 가능한데요.

아니었을 거예요. 아마 열어놓은 것 같아요. 저희도 얘기했는데,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오가 계속 끄적이고 있다는 건, 문오는 그거라도 안 하면 죽는 사람이라서 그래요. 사실은 이강의 마지막 과제를 받고, 문오가 손목에다 칼을 대는 장면도 찍어봤어요. 하여튼, 문오는 이야기에 중독되어서 습관처럼 앉아 있는 거예요. 이야기를 하는 게 평생의 한이잖아요.

〈맨 끝줄 소년〉
〈맨 끝줄 소년〉

허문오가 이강의 부탁으로 시험지를 빼돌린 뒤, 마치 해방감을 느끼는 듯, 해맑은 얼굴로 뛰어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대구 계명대에서 찍었는데, 진짜 더웠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웃음) 그래도 다행히 왕년에 뜀박질 좀 해가지고 두 테이크만 갔어요. (웃음) 허문오가 갖고 있는 굉장히 다층적인 모습이죠. 우리 드라마에서는 허문오의 부정적인 모습이 많이 나오죠. 우리 작품이 캠퍼스가 배경이라, 김규태 감독님을 ‘총장님’이라 부르는데, 총장님과 얘기했을 때, 작품에 실소가 터져 나오는 블랙코미디적인 색깔을 주려고 했어요. 사실 문오가 아주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창작자로서 내실을 다져서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보다는 유명 작가에 대한 동경과 라이벌 의식에 사로잡힌 친구죠. 그러니까 애 같은 면도 있고, 일탈에 대한 해방감을 느끼는 거예요.

※ 〈맨 끝줄 소년〉 배우 최민식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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