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프〉 배우 정호연의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나홍진 감독은 촬영할 때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촬영장을 경험해보니 어땠나요?
저로선 감독님의 타협하지 않는 부분이 신인 배우 입장에서 축복이라고 느꼈어요. 제가 세네 테이크 안에 생각하지 못한 걸 디테일을 잡아주시면서 테이크를 갈수록 좋아진다고 느꼈어요. 감독님이 타협하지 않으시니 저는 그래서 카메라 앞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었고요. 감독님 현장엔 NG컷이 없어요. 모든 테이크가 ‘어떻게 쓸까’의 문제였어요. 제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셨어요. 모든 테이크는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하는 거였죠. 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한 컷도 끊지 않고 스무 테이크 넘게 갔어요. 처음에는 제가 준비한 게 있고 계획한 게 있으니까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데, 20 테이크 정도 가면 배우도 스스로 생각한 걸 한다기보다 본능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모습을 포착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정말 지친 성애의 모습.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포착해 편집실에서 어떤 것을 쓸지 감독님의 선택에 달린 거죠. 감독님 말씀 중 기억나는 게 ‘프리프로덕션은 프로덕션을 위해 존재한다, 프로덕션은 포스트 프로덕션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다, 그걸 위해서 우리는 이 촬영을 하는 거다’였어요. 저도 이해할 수 있는 얘기였기에 거듭되는 테이크에도 동의할 수 있었어요.

그 첫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영화를 만드시는 분들이 자주 말하시는 게 ‘캐릭터의 첫 등장과 퇴장이 중요하다’는 거잖아요. 등장하는 장면이 감독님의 배려인지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촬영 중반쯤에 찍었고, 정말 다양한 각도로 많이 찍었어요. 거의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찍었을 거예요. 처음엔 제가 총을 들고 똘망똘망하게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눈을 이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경험해보니 그래서 아는 배우들이 감독님의 영화에서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는데, 그게 이런 계획되지 않은 면을 뽑아내시는 감독님의 재능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행복하죠. 새로운 얼굴이 나온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시퀀스에서 인물들의 대사가 정말 재밌어요. 그 장면이 〈호프〉에서 가장 활기찬 장면인데 촬영할 때는 어땠나요?
그 부분은 많이 찍지 않았어요. 촬영 후반이어서 모두가 합이 맞는 상황이었거든요. 감독님이 사전작업을 많이 했고, 〈호프〉 무술팀이 한국영화 무술팀의 노하우와 역량을 완전 집합한 팀이거든요. 무술팀 분들이 다른 영화에서 무술감독하시는 분들이세요. 그런 분들이 만든 결과물입니다. 나중에 무술팀을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많은 분들이 준비해서 A플랜이 아니면 B플랜으로 찍고. 보통 영화를 찍을 때 마스터의 개념이 있고 클로즈업이나 인서트 순으로 촬영하는데, 〈호프〉는 완벽하게 컷 계산을 하셔서 부분부분을 다 맞는 사이즈로 따서 무리하게 반복하는 게 없었어요. 그게 안전에 도움이 된 것 같고요. 그 촬영을 할 즈음엔 배우들도 체력을 어떻게 안배하느냐의 싸움이어서 서로 배려해주는 부분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서로의 믿음을 알게 된 시점이어서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 장면의 대사들은 현장에서 감독님이 만드신 대사일 거예요. 그런 리액션으로 채워보자 하셨다. 그즈음에 모두가 말을 많이 하잖아요. 환호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여서. 그 안에서 감독님께서 이런 말이나 저런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채워지게 됐어요. 그때는 작품에 녹아들어있어서 대사가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제가 감독님과 유머 코드가 잘 맞다고 생각해서 감독님이 주시는 아이디어는 다 좋았어요.

최근에 지수씨랑 혜리씨랑 같이 여행을 갔던 사진이 화제였어요. 세 분은 어떻게 친해지게 되셨나요?
일단 나이가 동갑이에요. 혜리는 예전부터 알았는데 필라테스를 하면서 셋이 모이게 됐어요. 원래는 제주도를 가자! 2년 전부터 얘기했는데 각자 스케줄이 안 맞아서 이제야 가게 됐죠. 그런데 제주도를 예약하려니까 자리가 없어서 무주 산골에 멋져보이는 숙소를 갔다 오게 됐습니다.
칸영화제와 언론배급시사를 거치면서 나온 반응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과감한 영화다? 대담한 영화다? 제가 한국영화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한국영화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이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자랑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과감하고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건 나홍진 감독님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참여한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들어요. 저에 대한 평가는 다 감사해요. 긍정적인 반응이든 부정적인 반응이든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엄청난 축복이거든요.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모델로 활동하시다가 연기를 시작하시고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시잖아요. 그 전의 삶과는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전에도 해외 출장을 많이 가서 생활은 비슷한 것 같고요. 근데 정말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요. 일의 성격은 기술적인 얘기를 하자면 차이가 분명 있지만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신체적 방식이나 표현력이 다양하게 사용하게 된 것 같은데, 그런 기술적 차이는 존재하죠. 배워가고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제 주변 지인이나 제가 지내고 있는 공간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되게 열심히 일을 하는 나 자신은 꾸준히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철저히 하겠다는 자세를 지켜가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래서 감독님이 성애하고도 닮았다고 하신건가?(웃음)
그래도 많은 대작을 하면서 표현하는 것, 경험하는 것이 엄청 커졌을 텐데 감정적으론 어떠세요?
제가 최근에 F1 그랑프리를 가서 트로피 트렁크를 오픈하는 행사를 했어요. 그걸 크게 의미를 부여하면 너무 떨리더라고요. 이렇게 중요한 것을 내가 하다니. 너무 떨려서 일부러 일적으로 접근했어요. ‘몇 걸음 가서 이렇게 하고 손 모양은 이렇게 하고’. 그렇게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고민했어요. 감정적으로 빠지면 마음이 들쭉날쭉해지고 좋다가도 무겁고 그래서요… 현실적으로 가져와서 제가 수행할 일들이라고 생각하니까 편해지는 게 있었어요. 요즘은 그렇게 접근하려고 해요. 〈오징어 게임〉 직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반응에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두렵고 내 삶이 바뀌는 건가 싶었는데, 미지의 변화니까 사로잡혀서 감정적으로 불안했던 시기도 있었죠. 영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해외 기자님들이랑 인터뷰 할 때 제 생각을 전달하기에 부족했다. 그런 환경에 있다 보니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에 저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결정하려기보다 나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해결 방안을 찾다 보니 잠이 안 오면 더 뛰고 영어가 부족하면 공부하고 체력이 안 되면 운동하고 그렇게 현실적인 방안을 찾다 보니 모르는 것에 대한 감정에서 두려움이 좀 줄어들었어요. 그런 유연함에 내 삶에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호프〉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세요?
촬영할 때는 성애로서 접근하기에 성애의 입장을 집중해서 작품을 대했어요. 작품 전체로 보면 감독님이 처음 한 얘기가 ‘입장 차이에서 시작된 일들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비극적으로 결론이 지어질 때가 삶에서 많다’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인간의 사회가 아니라 만물들의 입장 차이를 얘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비극적이라는 순간에도 유머가 있듯 이 영화에도 그런 것이 잘 녹아들어 있어요.
배우 정호연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요?
사실은 연극을 너무 해보고 싶어요. 빠른 시일내에 제 스케줄이 허용되면… 연극은 준비도 필요하고 무대에 있는 기간에 다른 업무를 하지 못하니까 스케줄을 잘 조정해서 연극을 해보고 싶어요. 롱테이크 가는 연출자분들을 만나보니 이걸 더 긴 호흡으로 하면 재밌겠다, 배우로서 더 상장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무대에서 인물로) 살아내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 작품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요. 제가 현장에서 만난 케이트 블란쳇 선배님(웃음)이나 황정민 선배님 모두 연극을 하시잖아요. 해외배우들도 연극으로 시작한 분이 많고. 누구 말인지 모르겠지만 ‘배우의 퍼포먼스의 끝은 연극이다’란 말도 있고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오로지 배우 몫이 되니까. 그런 아주 무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웃음) 진선규 선배님의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그것도 재밌게 봤어요. 최근에 〈더 베어〉에 나온, 제 미국 친구 아요 에데비리가 ‘프루프’(Proof)를 하는 걸 봤는데 너무 부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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