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AI P.A.N. 인터뷰 ②] “AI 영화에도 ‘서정’은 있다.” 단편 부문 최우수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강응빈 감독

강응빈 감독(사진=양시모)
강응빈 감독(사진=양시모)

눈 오는 시장, 붉은 목도리를 두른 아이는 이름이 없다. 어느 날 아침, 장승이 쓰러지고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이는 장승을 일으키려 하고, 장승의 입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 했다. “너는 누구니?” 그렇게 아이와 장승의 교감이 시작되고, 어느덧 ‘말’이 사라진 마을에 ‘말’이 돌아온다. 그처럼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는 언어를 잃은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존재의 본질이 ‘이름’과 ‘부름’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종합대상 수상작 〈악탈〉이 AI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액션과 스펙터클을 쉼 없이 밀어붙인 작품이라면,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는 AI 영화로 추구할 수 있는 서정(抒情)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극작 전공자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 AI 영화에 ‘기술’에 앞서 풍부한 ‘말’의 정서를 불어 넣은 강응빈 감독을 만났다. 한편, 올해의 수상작들은 KT 지니 TV 유튜브 채널 ‘지니어스 컷’과 지니 TV VOD로 감상할 수 있다.


KT AI 영상 공모전에 어떤 계기로 출품하게 됐나.

극영화를 준비하던 중 생각처럼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AI 영상을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 보니 어떤 소재나 주제를 떠올리기 이전에 일단 AI 영상은 제약이 많았다. AI 배우의 얼굴에서 연속성을 유지하기 힘들고 목소리도 어색했다. 단순한 제약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데 한계가 컸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다 보니,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하는 선택과 집중에 애썼다. 어머니 가게에 대타로 일하러 간 날이었는데, 하도 손님이 없어서 하루 정도 이야기를 구상했다.(웃음)

올해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들의 상당수가 일레븐랩스(Eleven Labs)의 음성 변환 서비스를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를 이용하지 않고 내레이션을 직접 녹음했다.

아무래도 글의 양이 많다 보니, AI 음성으로는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가 잘 살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설하 배우에게 도움을 요청해 내레이션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그 내레이션이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언어를 잃은 아이의 시선을 따라간다. AI 음성의 부자연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한 훌륭한 캐릭터 설정인 것 같다.

인간 음성으로 내레이션을 처리하고, 캐릭터에게서 언어를 지운 데는 분명 그런 의도가 있었다. 그런데 구글 정책을 고려하지 못하고 아동 주인공을 선택한 것이 가장 큰 실수이긴 했다. 반복적으로 출력해도 대부분 프롬프트에서 이상하게 작동한다. 가령 때리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바로 오류가 난다. 아이가 물에 들어가는 장면이 중요한데, 그걸 사고가 나서 빠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100번 정도 시도하면 겨우 한두 번 정도 출력이 됐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아이가 수영하는 장면으로 설정해 역시 반복적으로 시도해 얻어낸 장면이다.

그 외 또 작업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장면이 있다면.

또 다른 변수는 장승이었다. AI가 한국 장승에 대한 디자인 학습이 되어있지 않아서 잉카 혹은 인디언 문명의 석상이나 독수리, 혹은 일본의 오니나 중국의 대장군 느낌으로 출력되어 애를 먹었다. 물속의 아이와 장승이 마주하는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었기에, 될 때까지 작업하느라 힘들었다.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앞서 작업한 극영화 단편 〈철인〉(2023)의 주인공도 무인도에 표류 중인 ‘아름’이라는 한 여성이다. 여성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와 닮아있다.

〈철인〉이 첫 단편이고 1인 주인공이었다. 이후 어쩌다 보니 두 번째 작품은 2명, 세 번째 작품은 3명이어서 이번에는 4명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웃음) 그런데 AI 영화로는 첫 도전이기도 해서 다시 1명으로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직은 AI 영화를 배우고 있는 입장이라, 여러 명을 등장시킬 때 유려하게 커트를 이어붙일 자신이 없었다. 여러모로 내 현재 실력과 단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 작품이다.

AI 영화의 미래는 어떨까.

소설, 연극, 미술 등 여러 예술이 여전히 공존한다. 이른바 영상 예술이라 불리는 영역도 마찬가지다. 필름이 비주류가 되고 디지털이 대세를 이룬 것처럼, AI 영화도 그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디지털 수준으로 지금의 현장이나 작업실을 완전히 대체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몇 년 지나면 거의 모든 영화인들이 AI 툴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처럼 도구 이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KT AI P.A.N. 영화제 컨퍼런스에서 패널로 참여한 조우진 배우가 했던 “예술은 인간에서 출발해서 인간에게 가야한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예술을 언어라고 한다면, 그 언어로 무엇을 쓰고 말할지는 여전히 철저히 인간의 몫이다.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이번 작업을 끝내고 단편부문 최우수상까지 받은 소회는 어떤가.

계속 극영화를 준비하면서 여러 제작지원 사업에도 떨어져 속상하고 다소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AI 영화는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이를 통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하는 호기심으로 접근한 거였다. 그런데 AI 프로그램이나 서비스 이용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계속 결제해야 하는 것도 재정적 부담이 되기에, 호기심만으로 재미 삼아 체험하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극작 전공이기도 하고 시도 쓴다. 그래서 기승전결의 꽉 짜인 스토리를 썼다기보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작업했고, 생각보다 잘 나왔다. AI 영상도 충분히 배우고 습득했다기보다 그냥 공부하는 중에 얻어낸 결과물이라 생각하기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AI 영상에 재능이 있나? 여기서 더 배우고 키워봐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마음을 비우고 흘러가는 대로 무엇을 남겨야 할지 심사숙고 중이다.

강응빈 감독(사진=양시모)
강응빈 감독(사진=양시모)

평소 어떤 감독을 좋아했나.

하마구치 류스케를 가장 좋아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좋아한다. 항일 소재의 작품을 만들고 일본 감독들만 꼽아서 좀 그렇긴 한데,(웃음) 아무래도 나 스스로 ‘극작’ 중심으로 사고하고 확장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 충실한 극작술에 기반한 연출에 매료되어 그런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어떤 작업을 하게 되건 변하지 않는 부분일 것 같다.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눈이 내리면 장승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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