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 박찬욱 감독 [EPA=연합뉴스]](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5-24/c4c3bcb5-4627-49bf-b77b-da92e0d05c7a.jpg)
스크린의 뼈대를 활자로 해부하다: 거장의 미장센, 텍스트로 부활하다
"너 착한 놈인 거 알아.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맘 이해하지?" ('복수는 나의 것')
"너나 잘 하세요." ('친절한 금자씨')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아가씨')
단 세 줄의 대사만으로도 스크린의 서늘한 공기와 압도적인 색채가 눈앞에 펼쳐진다. 한국 영화를 넘어 세계 영화사의 지형도를 바꾼 거장,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이 마침내 종이 위에 완벽히 이식됐다. 독보적인 시각적 미장센 이면에 자리한 치밀한 언어의 건축술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박찬욱 각본 컬렉션'이 정식 출간되며 영화계와 출판계의 이목을 동시에 집중시키고 있다.
이번에 기획된 총 9권의 선집은 단순한 대본집을 넘어선다. 이는 한 예술가의 진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는 사료에 가깝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포문을 연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시작으로, 복수극의 신기원을 이룩한 '복수는 나의 것'(2002)과 '올드보이'(2003), 매혹적인 서사의 정점 '친절한 금자씨'(2005)가 포함됐다. 이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쥐'(2009), '아가씨'(2016), 수많은 팬덤을 양산한 '헤어질 결심'(2022)을 거쳐, 개봉을 앞둔 기대작 '어쩔수가없다'(2025)까지 거장의 25년 필모그래피를 총망라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한국 영화사의 모뉴먼트로 평가받는 초기작 3편('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의 각본이 최초로 단행본 형태를 갖춰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파편화되어 떠돌던 거장의 초기 텍스트들이 비로소 정본의 지위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이 방대한 컬렉션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주되는 '박찬욱' 특유의 서사 구조를 해부할 수 있는 완벽한 메스를 제공한다. 복수와 구원이라는 일관된 테마가 각기 다른 작품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확장되는지, 다양한 각본가들과의 시너지가 텍스트의 결을 어떻게 다듬어냈는지 활자의 호흡으로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다.
총 1천364쪽에 달하는 묵직한 물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다. 출판을 맡은 '을유문화사'는 이번 출간에 대해 감독의 정교한 뇌구조를 탐닉하는 가장 지적이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스크린에서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미세한 지문 하나, 대사의 행간에 숨겨진 의도까지 해독할 수 있는 이 컬렉션은 시네필들에게 주어지는 뜻깊은 선물이자 귀중한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