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르의 대가들이 뭉쳤다, '더 러닝 맨' 에드가 라이트 감독X스티븐 킹

〈더 러닝 맨〉 포스터
〈더 러닝 맨〉 포스터

장르의 대가들이 손을 맞잡았다. 12월 10일 개봉하는 〈더 러닝 맨〉은 그 이름은 몰라도 작품을 모를 수 없는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새벽의 황당한 저주〉, 〈베이비 드라이버〉 등을 연출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겼다. 미래 사회에 유행하는 '더 러닝 맨' 쇼에 참가하게 된 건설 노동자 벤 리처드. 쇼의 목적은 간단하다. 30일 동안 자신을 쫓는 이들로부터 살아남을 것. 죽음, 아니면 거금. 그 극한의 상황에서 벤 리처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지만 조작된 쇼는 그를 쉽게 놔주지 않는다.

과거 1987년 영화화됐던 「러닝 맨」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원작에 가까운 이야기로 돌아왔다. 1987년 영화는 아놀드 슈왈제너거를 주인공 삼아 액션 활극에 가까운 형식으로 제작됐고, 스티븐 킹은 자신의 원작을 제멋대로 고친 이 영화를 아예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에드가 라이트 감독과 함께 인터뷰까지 진행하며 원작을 고스란히 재현한 〈더 러닝 맨〉에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두 대가는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고, 또 어떻게 보았을까. 영화사로부터 직접 전달받은 스티븐 킹과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인터뷰로 〈더 러닝 맨〉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보자.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SNS에 게시한 사진. 스티븐 킹(왼)과 에드가 라이트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SNS에 게시한 사진. 스티븐 킹(왼)과 에드가 라이트

원작 소설은 2025년을 배경으로 한다. 원작에서 설정한 연도에 이렇게 영화가 개봉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나.

스티븐 킹 전혀! 내가 원작을 썼을 때가 아마 1972년쯤이었을 거다. 당시엔 2025년이 너무나 먼 미래처럼 느껴져서,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을 때도 “우리는 디스토피아 소설을 출판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을 받았다.

에드가 라이트 영화에선 일부러 연도를 명시하지 않았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충분히 먼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봐도 현실은 그 수준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뉴욕 탈출〉도 1997년 배경이지만 이미 그 시절은 지나갔다. 그래서 차라리 머나먼 미래로 설정하지 못한다면 아예 연도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더 러닝 맨〉
〈더 러닝 맨〉

원작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스티븐 킹 솔직히 말하면, 잘 팔릴 만한 모험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때 형편이 워낙 어려웠다. 그래서 뭐라도 팔릴 만한 모험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건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잘 팔릴 책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게임 쇼’를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아주 잔혹한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처럼 느껴졌다. TV에서 실제로 사람이 사냥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가 라이트 소설에서 ‘더 러닝 맨’이 여러 게임 쇼 중 하나라는 것이 흥미롭다. 즉, 그보다 훨씬 큰 세계가 존재함을 암시한다. '더 러닝 맨' 쇼가 가장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열지옥 챌린지(How Hot Can You Take It?)'나 '러닝머신 머니 레이스(Treadmills for Bucks)' 같은 프로그램들도 있다.

스티븐 킹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악어와 함께 수영을(Swim the Alligators)'이었다.

〈더 러닝 맨〉 촬영 현장의 에드가 라이트 감독. 왼쪽은 배우 조쉬 브롤린.
〈더 러닝 맨〉 촬영 현장의 에드가 라이트 감독. 왼쪽은 배우 조쉬 브롤린.

이번 영화화는 어떻게 성사된 건가? 결과물에는 만족하는지?

스티븐 킹 아주 잘 된 것 같다. 비유하자면, 가끔 인생에서 천사를 만날 때가 있잖나. 내게 그 천사는 바로 에드가 라이트였다.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에드가 라이트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새벽의 황당한 저주〉 이후였다. 그때 작가님이 영화 광고를 위해 멋진 추천 문구를 써주셨는데, 정말 감사했다. 80년대 중반에 원작 소설을 접했는데, 작가님의 필명인 '리처드 바크먼'으로 출간한 것이었다. 작품집에 네 작품이 있었는데 전부 다 읽었다. 1987년에 나온 영화를 10대 때 봤다. 처음으로 '원작을 이렇게까지 느슨하게 각색할 수도 있구나' 느꼈다. 일부 설정만 차용했을 뿐, 이야기의 대부분은 거의 옮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늘 원작 속에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느꼈다. 15년 전쯤, 《더 러닝 맨》의 소설 판권을 알아봤는데 권리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아무 진전도 없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결국 내게로 온 건, 어떻게 보면 정말 운명 같은 일이었다. 사이먼 킨버그 프로듀서가 내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더 러닝 맨 》 각색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하더라.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일이에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2025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2025년에 영화로 나온다는 점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정말 놀라운 우연이다.

〈더 러닝 맨〉
〈더 러닝 맨〉

영화 속 딥페이크 장면들은 정말 섬뜩하다.

스티븐 킹 집필 당시 나는 영화 장면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2025년쯤이면 그런 딥페이크 기술이 거의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아이디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또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떤 남자가 “그나저나, 당신 지금 프리비에 나오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영화 카메라나 TV 카메라 역할을 하는 드론들이 공중에 떠다니며 사람들을 어디든 따라다닌다. 그런 일은 이미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이제는 그것을 대중에 맞게 어떻게 변형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지금은 모두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고, 무엇이든 영상으로 찍는다.

에드가 라이트 영화에서 “당신, 지금 프리비에 나오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공동 각본가로 참여한 마이클 바콜이다. 그는 그 장면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지난 25년간 리얼리티 TV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편집’이라는 과정이 어떻게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지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요즘 리얼리티 TV에는 이를 가리키는 ‘빌런 편집(villain edit)’ 표현도 있다. 제작진이 누군가를 극단적인 악역처럼 보이게 만드는 편집 방식이다.

스티븐 킹 와, 정말 그런 게 있어? 놀랍다! 빌런 편집이라니!

에드가 라이트 나도 며칠 전에서야 처음 알았다. 영화를 다 만들 때까지 그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베벌리힐스의 진짜 주부들〉(Real Housewives) 같은 리얼리티 쇼를 떠올려 봐도, 그런 프로그램에는 언제나 빌런 역할이 꼭 있다. 이런 현상을 노래 경연 프로그램들에서도 봤다. 특정 참가자에게 서사를 만들고, 의도적인 편집을 통해 누군가를 희생양이나 악역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런 일은 리얼리티 TV에서 아주 흔하다. 촬영하기 전 넷플릭스에서 유명 토크쇼 진행자 제리 스프링어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는데 영화와 원작 소설이 다루는 주제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 입증했다. 참가자 조작, 제작진의 과도한 선동, 그리고 진행자인 제리 스프링어 자신이 그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 제리 스프링어는 카메라 앞에서는 “나는 그저 진행자일 뿐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몰라요”라고 말하곤 했지만,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그가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스티븐 킹 또 다른 문제는 리얼리티 쇼 참가자도 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마치 배우처럼, 스크린 속 캐릭터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벤 리처즈는 실제 인물이며, 실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그는 직장에서 문제가 있었고, 아이는 병에 걸려 아프다. 그러나 쇼의 세계 안에서 그는 그저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장기 말일뿐이다. 시청률 경쟁의 일부로 소비되는 존재인 것이다.

〈더 러닝 맨〉 글렌 파월
〈더 러닝 맨〉 글렌 파월

글렌 파월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에드가 라이트 직접 만나보기 전부터 글렌 파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에서 처음 그를 봤는데, 결정적으로 그가 공동 각본을 맡은 〈히트맨〉을 보고 그가 진지한 연기와 코믹한 연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건, 그에게서 보통 사람, 즉 소시민의 분위기가 풍긴다는 점이었다. 모든 액션 스타가 그런 면을 지닌 건 아닌데, 내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스튜디오가 준 주연 배우 후보 리스트에 그가 있었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그에게 눈길이 갔다. 첫째, 그는 기존 영화에서 수많은 악당을 물리쳐온 전형적인 액션 스타가 아니었다. 둘째, 길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평범한 남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건 해리슨 포드의 특징과도 닮아 있다. 해리슨 포드가 맡았던 초창기 배역들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액션 영화에는 대개 자기 분야에서 최고인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존 윅은 최고의 킬러이고, 제이슨 본은 기억을 잃었지만 초특급 스파이였다. 하지만 적어도 원작 속의 벤 리처즈는 그런 완성된 액션 영웅이 아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등장한다. 육체적으로는 강인하지만, 고도의 훈련을 받은 킬러도 아니고, 슈퍼히어로는 더더욱 아니다. 관객들이 그를 보며 ‘이 사람, 진짜 이길 수 있을까?’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액션 히어로에게는 반드시 취약함이 필요하다. 이번에 글렌 파월의 연기가 특히 훌륭했던 이유는,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에 그가 실시간으로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스티븐 킹 벤 리처즈는 정말 호감 가는 인물이다. 주인공에게 호감이 느껴져야 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글렌 파월이 연기한 이 캐릭터는 실제로 그런 느낌을 준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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