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이 불러낸 밥 포시 ② : 전무후무 토니상 안무 부문 8회 수상자의 변신 '레니'

〈레니〉는 실제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1960년대 스탠딩 코미디언 레니 브루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레니〉 촬영현장의 밥 포시(왼)와 더스틴 호프먼
〈레니〉 촬영현장의 밥 포시(왼)와 더스틴 호프먼

밥 포시는 토니상 안무 부문 8회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안무가이자 연출가다.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후보에 3번 올라 단 하나의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특히 그의 3번째 영화 〈레니〉는 1975년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빈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같은 해 처음으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여우주연상(발레리 페린)을 수상하며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당시 〈졸업〉(1967),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작은 거인〉(1970) 등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발돋움하고 있던 더스틴 호프먼이 〈빠삐용〉(1973)에 이은 차기작으로 택한 영화가 바로 〈레니〉였다. 게다가 TV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1966)의 한 에피소드를 쓰기도 했던 줄리언 배리가 원작자이자 각본가로 참여한 〈레니〉는 뮤지컬 장르가 아닌 드라마 장르의 흑백영화였다. 여러모로 밥 포시의 작가적 야심으로 충만한 작품이었다.

〈레니〉
〈레니〉

레니 브루스(더스틴 호프만)는 1960년대에 활동했던 스탠딩 코미디언이다. 경계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까지 언급하는 그의 코미디 스타일은, 종종 대중에게 천박하고 외설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해서 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그를 알던 사람들은 하나둘 그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늘 외롭다고 느껴왔던 레니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아내 허니(발레리 페린)와 어머니 샐리(얀 마이너), 그리고 매니저 아티 실버(스탠리 벡)였다. 레니는 종종 자신의 코미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실제로 가족들 앞에서 실연해 보였다. 바지 지퍼를 내리고 성기를 비유하는 코미디를 선보일 때도 가족들은 웃음에 자지러질 정도로 그의 그런 괴팍함과 활동성을 좋아했다. 애초에 레니는 전통적인 형식의 스탠딩 코미디를 선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감히 전통을 버리고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주제로 하는 코미디언으로 변모해간다. 그러면서 그의 레퍼토리엔 성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도 들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법적인 제제를 받기도 한다.

〈레니〉
〈레니〉

특히 아내 허니는 스트리퍼 출신으로, 이후 자제력을 잃어가면서 마약과 변태적인 성생활을 하는 레니를 늘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또한 그의 측근들은 그의 일을 돕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그와 대립하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면서 간섭을 싫어했던 레니는 매니저와의 약속을 종종 일방적으로 파기하기까지 했고, 그가 허니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깝게 접근한다는 생각에 더욱 그러했다. 한마디로 레니는 언제나 주변과의 타협 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러다 보니 레니와 관련된 법적 분쟁이 늘어나게 됐고 그들은 레니의 사생활 깊숙이 간섭하려 들었다. 자신의 코미디가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는 없었고, 코미디 외적인 비즈니스의 문제까지 얽혀들면서 레니는 심각한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결국 그의 코미디는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관객들 역시 그에게 실망하기 시작했다. 사망하기 전 몇 달 동안 그는 실제로 미쳐가고 있었다.

실제 레니 브루스
실제 레니 브루스

〈레니〉는 실제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1960년대 스탠딩 코미디언 레니 브루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는 레니를 알던 사람들이 그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에 관한 좋은 얘기, 나쁜 얘기 모두 ‘레니’라고 하는 실체를 만들어 가는 조그만 조각들이 된다. 그러한 회상이 진행되면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하는 레니의 이야기가 차가운 흑백 영상으로 전개된다. 그 자체로 아련한 향수와 회상의 느낌을 풍기는 흑백 영상은 레니라는 인물에 정서적으로 접근하고, 주제를 강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밥 포시는 특별히 자기만의 시각을 불어넣으려 애쓰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의 회상과, 마치 흑백 다큐멘터리처럼 담겨진 레니의 일상을 통해 그 메시지가 자연스레 우러나오도록 만든다. 그것은 자기만의 색깔과 머리로 살아가려했던 한 자유분방한 코미디언이 세상과의 타협, 그리고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한 게임의 법칙 속에서 어떻게 마모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레니〉
〈레니〉

더구나 레니가 추구했던 코미디가 각종 성역과 금기를 뛰어넘고 노골적인 성에 대한 담론을 끌어들였기에 그 상처는 더욱 깊었고 세상의 벽은 높기만 했다. 이처럼 코미디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꽤 있다. 코미디언 지망생 루퍼트 펍킨(로버트 드니로)의 고생담을 그린 마틴 스코세이지의 〈코미디의 왕〉(1983), 레니 만큼이나 외설적인 토크쇼를 진행했던 코미디언 하워드 스턴의 이야기를 담은 베티 토마스의 〈언터쳐블 가이〉(원제: Private Parts, 1997), 그리고 짐 캐리 주연으로 작고한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일대기를 그린 밀로스 포먼의 〈맨 온 더 문〉(1999)이 있다. 논란 속의 주인공을 좇으며 담담하게 그 일대기를 반추하고 있다는 점에서 〈레니〉는 〈맨 온 더 문〉과 가장 비슷하다 할 것이다.

〈레니〉
〈레니〉

비극적인 코미디언 레니 브루스로 분한 더스틴 호프만의 표정과 연기는 발군의 모습이다. 실제 〈졸업〉(1967)으로 스타덤에 오르면서부터 유머러스한 면과 비애 가득한 면 모두를 안고 있어 각광을 받았던 그였기에 레니 역은 적역이다. ‘80년대의 슈퍼스타 중 ET 다음으로 작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만큼 그의 존재는 빛난다. 특히 〈졸업〉 이후 〈레니〉를 포함 1970년대의 작품들이 압권이다. 〈레니〉는 197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포함 총 6개 부문 후보로 올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스틴 호프만은 자기 연기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상식에 불참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좀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레니〉는 6개 부문 중 단 하나의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니〉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레니의 아내를 연기한 발레리 페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이듬해 내놓은 뮤지컬 〈시카고〉(1975)도 브로드웨이에서 장기 공연되며 큰 성공을 거둔다. 무척 다행스런 일이었다. 밥 포시는 뮤지컬 〈시카고〉를 준비하고 〈레니〉를 편집하는 동안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심장마비로 인해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심장수술을 받았고, 1979년 다시 뮤지컬 장르로 돌아온 영화 〈올 댓 재즈〉로 5년 만에 영화계에 복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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