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 만든 '팝의 거물' 클라이브 데이비스 별세

휘트니 휴스턴부터 얼리샤 키스까지 발굴한 전설적 프로듀서. 변호사에서 글로벌 음악계의 거물이 된 그의 94년 생애.

클라이브 데이비스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클라이브 데이비스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팝의 나침반이 멈추다: 세기의 '황금 귀'가 남긴 불멸의 유산

'휘트니 휴스턴', '얼리샤 키스' 등 시대의 아이콘을 빚어낸 팝 음악계의 절대적 지배자이자 전설적인 프로듀서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22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주요 외신은 그가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호흡기 질환 투병 끝에 영면에 들었다고 일제히 타전했다.

1932년 뉴욕 브루클린 태생인 그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 변호사에서 음악 제국의 수장으로 변모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60년 '콜롬비아 레코드' 사내 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딘 후,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인정받아 1967년 사장직에 올랐다. 이후 '브루스 스프링스틴''산타나'를 발굴하며 록 음악의 폭발적 부흥기를 주도했다.

1974년 '아리스타 레코드' 설립은 그의 천재적 프로듀싱 능력이 만개한 기점이다. 그는 침체기에 빠진 '디온 워릭''어리사 프랭클린'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맞춤형 기획을 제공, 그들을 다시금 빌보드 정상에 올려놓는 마법을 선보였다.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경이로운 궤적은 단연 '휘트니 휴스턴'과의 조우다. 10대 소녀의 목소리에서 세기의 울림을 직감한 그는 전례 없는 파격적 지원을 쏟아부었다. 특히 영화 보디가드 OST '아이 윌 얼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제작 당시,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40초간의 무반주 아카펠라 도입부를 관철시켜 빌보드 14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창조한 일화는 대중음악사의 전설로 회자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그의 감각은 노년에도 녹슬지 않았다. 1999년 산타나의 마스터피스 '슈퍼내추럴(Supernatural)'로 그래미를 평정했고, 2001년 'J레코드'를 세워 '얼리샤 키스'라는 새로운 디바를 세상에 내놓으며 트렌드를 선도했다. 70대를 넘긴 고령에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글로벌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로 군림하며 평생을 팝의 최전선에서 호흡했다.

2013년 자서전을 통해 양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히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던 그는, 두 번의 결혼으로 네 자녀를 남겼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그려온 거장의 퇴장에 전 세계 아티스트와 팬들의 애도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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