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최근 4K 화질로 재개봉한 〈아비정전〉에서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미지는 아비(장국영)가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사실 “내 시계를 1분만 같이 보지 않을래요?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린 1분 동안 함께 했어요”라고 잘 생긴 얼굴을 들이밀던 도입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수리첸(장만옥)을 뚫어지듯 쳐다보며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된다. 기념비적인 저 대사를 내뱉기 며칠 전 처음 만난 그때, 아비는 수리첸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꿈에 만나게 될 거예요.” 그 다음 날 “꿈에서 당신을 보지 못했다”고 하자, 아비가 대뜸 하는 말이 걸작이다. “물론이지 내 생각을 하느라 당신은 못 잤으니까.”

이런 느끼하기 이를 데 없는 대사를 자연스레 소화하는 배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저 대사는 오직 장국영이라는 비주얼에서만 생명력을 얻는 대사일 것이다. 이후 장국영은 “또 봐요”라는 말만 남기고 매일 오후 3시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것만 무려 3번을 반복한다. “오늘은 좀 달라 보이는데? 왜 귀는 빨갛죠?”같은 플러팅 멘트들도 쏘아댄다. 대체 원하는 게 뭐냐는 수리첸의 물음에 그저 씨익 웃으며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요”라는 말뿐이다. 당시 라틴 문학에 흠뻑 빠져있던 왕가위 감독이 그로부터 가져온 특유의 난봉꾼 혹은 카사노바 캐릭터가 바로 거기 있다.


〈아비정전〉에서 아비의 또 다른 여자, 계모(반적화)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술 취한 그녀를 업고 방에다 뉘어주는 장면이다. 심지어 계모는 트림을 하고 아비는 그 입가의 토사물을 닦아준다. ‘정말 지긋지긋해’라는 신경질적인 표정에 가슴이 쓰리다. 사실 〈아비정전〉에서 어머니의 부재는 아비의 기행(奇行)을 설명하는 그 모든 것이다. 그저 어려움 없이 자라온 그에게 어느 날, 평생 아무런 의심도 없이 살아왔던 어머니가 스스로 자신이 친어머니가 아님을 고백하고 진짜 친어머니의 존재를 얘기해준다. “병원에서 나오던 그날 난 자유로움을 느꼈단다. 더 이상 굶을 필요가 없었어. 아이가 18살이 될 때까지 난 매달 미화 50불씩을 받을 테니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친어머니는 아비를 낳자마자 계모에게 맡겼다. 그녀는 매달 꼬박꼬박 돈을 부쳐 준다는 조건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제 지긋지긋한 유흥가 생활을 청산해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계모와 아비는 늘 서로의 감정만 소모하며 싸우기만 했을 뿐, 정작 진짜 헤어지는 것은 두려워했다. 계모는 늘 자신에게 딴마음을 품고 접근해오는 남자들을 흠씬 두들겨 패 줄 ‘싫지만 든든한’ 아들이 필요했고, 아비 또한 홍콩을 떠나 친엄마를 찾으러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정작 살면서 제 손으로 뭔가를 챙기고 집 떠나 생활해 본 경험이 없다. 서로가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지만 또한 가장 없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계모는 언제 아들이 떠날지도 모르는데 “내가 늙으면 네가 날 돌볼 테야? 무슨 재주로?”라고 말하고, 아들은 “안 되면 같이 죽으면 되잖아요. 항상 원하던 거 아니에요!”라며 헤어지자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한다.

1961년 4월 12일, 아비는 마침내 친어머니의 필리핀 집에 왔지만, 정작 만나주지 않는다. “가정부는 없다고 했지만 집을 나설 무렵 뒤에서 지켜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친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싫다면, 나도 내 얼굴을 볼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라며 단호하게 저택을 떠나간다. 그 장면에서 아비의 뒷모습은 고속촬영한 스테디캠의 뒷모습으로 천천히 드러난다. 왕가위가 말하길 “날고 싶어 하지만 너무나 지쳐버린 새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때 왕가위가 기어이 친엄마의 얼굴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홍콩 유흥가에 종사하는 필리핀 여자였다가, 홍콩을 떠나며 아들을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랬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어쨌건 그 순간 〈아비정전〉의 아비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왕가위가 생각하는 홍콩의 모습일 것이다.


문득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영화 초반 아비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던 계모의 연하 남자친구, 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상 계모의 돈을 보고 접근한 것 같은 ‘제비’다. 화가 난 아비는 그를 망치로 위협하며 “그렇게 쉬워 보여? 뭐라고? 크게 말해! 더 크게! 다시는 우리 엄마 만나지 마!”라고 윽박지르며 결국 망치로 세면기를 부셔버린다. 그 또한 혼혈로 보이는데, 엄마가 하필이면 혼혈 제비와 어울리는 게 그토록 싫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엄마는 “네가 날 한 번이라도 행복하게 해준 적 있니? 그 사람은 아무리 제비라도 나를 행복하게 해줘”라며 아비에게 화를 낸다. 결국 아비가 망치를 들어 때려 없애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아무런 경제생활도 하지 않는 아비도 언젠가 그 혼혈 제비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아비는 그에게서 온몸으로 부정하고 싶은 그의 미래를 본 것이다. 그리고는 거울을 쳐다보고 머리를 빗어넘긴다. 저건 내가 아니야!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아비정전〉의 유명한 맘보춤 장면을 다시 보면, 춤 그 자체가 아니라 거울에 주목하게 된다. 아비 캐릭터가 가진 태생적 결핍의 운명, 그것을 위로하는 것은 아비의 나르시시즘이다. ‘이게 다 내가 잘 나서 그래’ 하고 생각하는 마음인 걸까. 거울을 보던 중 문득 그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다시 한 바퀴 돌아와 거울 앞으로 가서 춤이 마무리된다. 원래 장국영 주연의 1부와 양조위 주연의 2부로 시작한 〈아비정전〉이 사실상 1부만으로 완성된 이유가 거기 있다(하지만 양조위 분량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계약 조건 때문에, 양조위가 말 없이 외출을 준비하는 마지막 장면이 지금의 모습처럼 완성됐다).


서사의 전후 맥락과 무관해 보이는 맘보춤 장면이 홀리듯 들어가 있는 것. 장국영도 거울 속 자기 모습에 도취됐고, 그를 바라보는 왕가위 감독도 장국영에게 매혹됐다. 한편으로 그 장면은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발 없는 새가 땅에 내려왔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거울 속 장국영이 잠시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거울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장국영처럼 영화에서 거울 장면이 많은 배우가 없는 것 같다. 장국영에게 매혹된 수많은 영화감독들의 자기 고백이 그 무수한 거울 장면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끝으로, 올해 장국영 탄생 70주년을 기념하며 거울 앞에 선 장국영의 모습들만 따로 모아봤다.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주성철의 사물함] '시라트'의 검은 스피커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모노리스](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2-25/e9acaf62-7d7f-4383-a8d7-a47974776585.jpg)
![[주성철의 사물함] 세계영화의 역사를 바꾼 '누벨바그'의 깡통 수레 카메라](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3-30/43c1e68b-ef02-4a12-9876-47fefb93920e.jpg)
![[주성철의 사물함] 안성기가 나다, 내가 안성기다](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3-30/d1b630f3-d872-416f-964f-cb0564bfb1b5.jpg)
![[주성철의 사물함] '오디세이'의 외눈 거인 사이클롭스와 레이 해리하우젠의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8-13/8a3347ef-072a-4943-9bc4-ead8333fc683.jpg)
![[주성철의 사물함] '호프' 성기대교를 질주하는 성기의 트러커캡을 통해 '황해' '곡성' 다시 보기](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8-13/1e4ff747-dfa5-43f3-a5ff-7eb7c676c10a.jpg)
![[주성철의 사물함] '마티 슈프림'을 보며 유남규의 펜홀더 탁구 라켓을 떠올리다](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8-13/ce1738f2-f87e-4a5b-b200-4d1a2335f6bd.jpg)
![[주성철의 사물함] 무협거장의 거장 호금전부터 오우삼, 성룡, 홍금보 모두 매혹된 종묘의 미학](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8-13/84a66d67-d043-4c9b-9e0e-452fc4d4f2dd.jpg)
![[주성철의 사물함] 한국과 일본의 리어왕, 이순재와 나카다이 타츠야, 두 거장 잠들다](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8-13/27028e58-055b-4ec1-8dfa-a7577a210c66.jpg)
![[주성철의 사물함] 나무가 나무를 위로할 때, '종이 울리는 순간'과 '어쩔수가없다'의 첼로](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8-13/b93e882e-90f1-42c4-bdce-1d2b0b8053c0.jpg)
![[주성철의 사물함]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세르지오 센세가 달고 살던 맥주는?](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8-13/691fbb17-d16d-41d8-aa75-f116bdf6db84.jpg)
![[주성철의 사물함] '토이 스토리' 우디의 원조를 아시나요](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6-16/eb2c5055-d2de-4464-b9e2-eceeca8c7759.jpg)
![[주성철의 사물함] 양조위도 가끔 재떨이를 들고 싶을 때가 있다.](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2-13/120d0094-5b4b-4be5-8d21-b19e32f5ec25.jpg)
![[주성철의 사물함] '패왕별희' 누가 장국영에게 침을 뱉았나](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4-06/7b608cd9-af6c-4c1d-8e87-38c2d2619d55.jpg)
![[주성철의 사물함] '워페어'와 '허트 로커'의 ‘급조폭발물’(IED)이란?](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8-24/ae200e60-2be9-478e-8ab4-72a860903979.jpg)
![[주성철의 사물함] 총 맞아도 끄떡없는 사물 좀비,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괴시'(1981)](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6-02/273257c6-d9b8-4e5e-a5cf-2209a72e0022.jpg)
![[주성철의 사물함] '암살자(들)', 사라진 탄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10-06/bd2dbcfa-db50-4928-8fd9-bfe5d802c848.jpg)
![[주성철의 사물함]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의 돌, 내돌내산 '다윗'](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7-13/524bb041-0e4e-4f59-824b-21d2f7df60a9.jpg)
![[주성철의 사물함] '왕과 사는 남자' 단종의 청령포 가기 힘들면 금성대군의 금성당으로!](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4-06/385ea9cc-6a0a-4d11-8b61-ee805b4f89a4.jpg)
![[주성철의 사물함] 영화감독이 된 위대한 댄서, '마이클'이 불러낸 밥 포시](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5-19/31bd65be-b1fe-4862-8642-b0812c14e000.jpg)
![[주성철의 사물함] 임원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인턴, '인턴' 가죽 서류 가방의 역설](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9-08/9848d312-5056-40d7-836b-49e79b74cc49.jpg)
![[주성철의 사물함] '리 크로닌의 미이라'와 '성난 사람들' 시즌2를 보다 떠오른 '드라이브'의 전갈 재킷](https://cdn.www.cineplay.co.kr/w400/q75/article-images/2026-04-20/8361d388-dc73-404e-9099-37e54637770d.jpg)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